[황승연의 타임캡슐] 돈도 권한도 없는 지방정부 …'허울뿐인' 지방자치제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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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연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4-08-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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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승연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황승연 경희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


대부분의 세금은 중앙으로 가는데 지방자치 가능한가?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이라 불리는 ‘민생회복 지원금 지급 특별조치법’은 정부가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역화폐로 주도록 강제하는 내용으로, 국회가 월초에 의결한 후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법안이다. 서울시의회는 27일 국회가 재의결을 할 때 부결시켜 달라고 요청하는 부결촉구건의안을 통과시켰다. 지역화폐 발행 여부는 지자체가 할 일인데 왜 국회가 강제하냐는 반발이다. 13조원 이상의 돈이 풀리면 물가 상승으로 서민들이 또 다른 고통을 받게 된다는 이유도 있다.
 
1995년 기초와 광역자치단체 의원 및 단체장 선거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지방자치제가 실시되었다. 내년은 지자체가 실시된 지 30년 되는 해이다. 지방자치 역사가 30년이나 되었지만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에서 보듯이 국회는 지방자치의 정신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자치제도상 지방자치단체가 가지는 자치권은 자치조직권(기관구성 충원), 자치행정권(지방사무 처리), 자치입법권(조례규칙 제정), 자치재정권(재원확보 관리) 등이 있다. 우리나라 지자체의 재정 자립도가 극히 열악한 상황이어서 지방재정은 국가의 교부금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인데 여기서 무슨 자치가 가능하며 자립이 가능한가? 지방 화폐 발행도 중앙에서 강제적으로 지시하는 이런 법안이 통과되는 상황에서 지방자치는 없거나 극히 제한된 영역에서 실시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2023년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전국 평균이 39.7%이다.
 
가장 낫다는 서울의 재정자립도는 62.5%이고 다음은 경기 53.9%, 인천 50.5%이다. 전라남북도는 각각 21.1%와 21.2%이다. 재정자립도란 자치단체가 스스로 살림을 꾸릴 수 있는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서울, 경기, 인천을 제외하면 50% 넘는 곳은 없다. 가장 세수가 많을 것 같은 서울의 재정자립도가 62.5%라는 것은 대부분의 세금이 국세라서 낸 세금은 국가로 들어가고 지자체는 국가에서 예산을 타서 쓴다는 뜻이다. 국가의 예산은 국회가 심의하기 때문에 징세제도는 결국 국회가 그들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대부분의 세금은 국세이다. 소득세, 법인세, 종부세, 상속증여세 등 직접세와 부가가치세, 개별소비세, 주세, 인지세, 증권거래세 등 간접세 그리고 교육세, 교통에너지환경세, 농어촌특별세 등 목적세 외에 괸세도 국세에 속한다. 이런 환경에서 지자체의 장들은 해마다 국회에 그리고 기재부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면서 국가의 예산을 더 따내기 위해 읍소해야 한다. 또 국가의 예산안은 국회가 심의한다. 그래서 사실상 국회가 마음대로 지자체를 지휘·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지방자치 30년이라는 세월이 초라하게 보인다. 이러느니 차라리 지방자치제도를 없애고 그냥 중앙정부와 국회에서 다 하면 될 것인데 왜 허울뿐인 지방자치제를 실시하는가? 지방세라 하면 취득세, 등록면허세, 레저세, 지방소비세, 지방교육세, 지역자원시설세, 담배소비세, 주민세, 지방소득세, 재산세, 자동차세 등이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지방세 수입으로 서울의 재정자립도가 62.5%나 되는 것이 놀랍다.
 
재정자립도 결산 기준 2023년
[재정자립도 (결산 기준) 2023년]

지난 23일 부산에서 특별한 학술대회가 있었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이 함께한 자리에서 그들은 한국의 새로운 성장모델과 균형발전 해법을 제시했다. 서울이 중심인 현 체제를 혁신적으로 바꾸는 ‘지방거점 대한민국 개조론’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 서로 경쟁하며 진화를 촉진해야 균형발전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국을 수도권, 영남권, 충청권, 호남권 등 4대 권역으로 나누고 각각을 하나의 강소국가로 성장시켜야 한다”고 했다. 이를 위해 4대 권역의 초광역 지자체를 탄생시킨 후 중앙정부가 연방정부 수준의 권한만 남기고 인적자원과 행정권한을 모두 지방에 나눠줘야 한다는 것이다. 오 시장은 “중앙이 80%의 예산을 갖고 지방은 나머지로 발전하라고 하면 발전이 가능하겠느냐”고 말했다.
 
중앙정부, 즉 기재부에 의존하여 어떻게 지방 발전을 말할 수 있나? 왜 지방의 세금을 대부분 중앙정부에 납부하고 지방정부는 기재부와 국회가 베푸는 은혜에 의존해야 하는가? 중앙정부와 기재부의 입맛에 맞춘 정책만 입안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국회의원이 되면 예결산위원회에 위원으로 들어가 자신의 지역구에 예산을 더 배정하려고 혈안이 된다. 모두 지방자치와 거리가 먼 행태들이다. 그 결과 기업도 떠나고 사람도 떠나는 그런 지방이 되고 말았다. 지방에서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기업을 유치하려면 세제 혜택 등을 유인책으로 내걸어야 한다. 그러나 지방정부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기업이 지방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다. 기업들은 고급 인력을 위해, 빠른 정보를 위해, 좋은 기업 인프라를 위해 수도권으로 떠난다. 그래서 부산을 부르는 새로운 용어가 '노인과 바다'이다. 남은 것이 이것뿐이라는 말이다.
 
서울의 ‘재정자립도’는 62.5%이다. 자치단체가 자율적으로 편성·집행할 수 있는 재원의 비율을 나타내는 ‘재정자주도’는 64.9%이다. 전라남도의 ‘재정자립도’는 21.1%인데 ‘재정자주도’는 67.6%이다. 어느 지자체 단체장이 더 훌륭한가? 단연 전남지사이다. 수입은 211원인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예산은 676원이라는 뜻이다. 크게 남는 장사이다. 그러면 이 남은 예산은 어디에서 왔나? 그리고 이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지자체장은 국회와 기재부 로비 외에 어떤 노력을 했나? 지자체가 기업 유치를 위해,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과연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나? 심지어 기업 유치도 중앙에서 로비를 통해 배정받아야 하는 실정이다.
 
기업을 유치하고 일자리를 만들려면 지자체는 기업에 특별한 혜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방정부에 자치재정권을 주어야 한다. 즉 국세를 지방세로 대거 이양해야 한다. 재정분권이 없이는 지방자치는 헛소리다. 지방이 세금을 걷고, 그 세금을 그 지역 발전을 위해 쓸 수 있어야 한다. 중앙에서 세금을 걷어 지방에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지방에서 세금을 걷어 일정 부분을 중앙정부에 떼어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오세훈 시장은 이를 5:5로 하자고 제안했다. 6:4든 4:6이든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정부의 몫이 적을수록 좋다. 박형준 시장은 수도권과 지방이 경쟁 관계 속에서 진화해야 균형발전이 이뤄진다고 했다.
 
지난 10년간 국세 수입 중 상속세수와 법인세수를 비교하면 법인세수가 상속세수의 10~20배나 된다. 그러면 대표적인 국세인 상속세를 지방세로 바꾸고, 지자체는 주식을 상속한 뒤 처분할 때 차액에 과세하는 것으로 상속세를 바꾼다면 본사의 지방 이전의 유인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속세수를 유예한다면 그 대신 10배 이상 되는 법인세수가 늘어날 것이다. 현재 최고 60%나 되는 상속세 때문에 기업이 파산하거나 외국에 매각되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이연할 권한을 지방정부에 준다면 지자체들은 경쟁적으로 기업 유치에 앞장설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일자리도 늘어나고, 지방경제도 활성화되고, 세수도 높아지고, 균형발전도 가능해진다. 그러나 부자감세라는 사회주의적 늪에 빠져 기업과 지방이 모두 죽어가고 있다. 기업을 죽이고, 지방을 죽이고, 일자리를 죽이고, 결국 국가를 죽이는 꼴이 된다.
 
중앙에서 내려오는 교부금이 너무 달콤하기 때문에 우리는 ‘낮은 단계의 지방자치’면 족하다는 지자체가 나올 수 있다. 심지어 지방자치 같은 사치스러운 단어는 필요 없다는 지자체도 나올 수도 있다. 이것은 중앙정부에 의존하여 교부금으로 살아가는 ‘거지의 편안함’일 뿐이다. 그런 지방은 결국 소멸하게 될 것이다. 중앙정부의 권력을 이양하려는 대통령의 결심이 필요하다.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영달이나 알량한 권력이 아니라 무엇이 그들이 속한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 나은 길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런 의원들이 모인 국회의 결단이 필요하다.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이 통과되는 마당에 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회의적이다. 하지만 그 돈이 모두 국가의 부채로 남게 되고 그것은 우리의 자손들이 두고두고 갚아야 하며 물가 상승 등으로 서민들이 더 고통받는다는 것을 안다면 과연 이 법에 찬성할 수 있었을까?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을 국가가 아니라 지자체가 자체적인 판단으로 지원하고 부채를 갚아나가야 한다면 모두 어떻게 반응할까? 각자도생, 우리나라의 유일한 생존법이다. 오세훈 시장과 박형준 시장의 ’공진국가‘ ’4개 강소국‘ 균형발전은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황승연 필자 주요 이력

▷독일 자르브뤼켄 대학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데이콤 공동 정보사회연구소장 ▷전 한반도 정보화추진본부 지역정보화기획단장 ▷경희대 사회학과 명예교수 ▷굿소사이어티 조사연구소 대표 ▷상속세제 개혁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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