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섭 칼럼] 기술패권·대전환의 시대에 맞는 'R&D 대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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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섭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입력 2024-09-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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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섭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주영섭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세계는 지금 기술패권 시대다. 국가와 기업의 명운이 기술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 사회를 총체적으로 혁신하고 있는 디지털·그린·문명 대전환도 기술 혁신이 핵심이다. AI(인공지능), 데이터, 로봇을 비롯한 디지털 기술이 디지털 대전환으로 세상을 바꾸고 있다. 동시에 온난화를 넘어 열대화 위기로 치닫고 있는 지구 환경 문제, 심화되고 있는 사회 양극화 문제 등 환경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는 가운데, 궁극적으로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그린 및 문명 대전환도 시대정신으로 부각되며 해결책을 기술 혁신에서 찾고 있다.
 
기술패권 시대에 살아남고 발전하기 위한 기술 개발 및 혁신을 위해 미국, 중국, EU(유럽연합), 일본 등 세계 주요국의 R&D(연구개발) 노력은 더욱 가속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지난 20여 년간 R&D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하여 2022년 국가 총 R&D 투자가 정부 R&D 26조원과 민간 R&D 97조원을 합쳐 123조원으로 2013년 59조원 대비 100% 증가하였다. 이를 GDP(국내총생산) 대비 비율로 환산하면 2013년 4.0%에서 2022년 5.2%로 증가했고 OECD 국가 중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이다.
 
우리나라 R&D 투자가 지난 10여 년간 GDP 대비 R&D 투자 비율 면에서 세계 1~2위를 다투다 보니 우리 정부와 국민들 사이에 우리나라가 R&D를 많이 하는 나라라는 인식이 많아지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우리가 R&D 투자는 많이 하는데 사업화 등 성과는 적어 비효율적이라는 인식도 확산되었다. 이러한 우리 R&D에 대한 일반적 인식이 중대한 오해를 초래하고 있어 기술패권 시대라는 중차대한 시기에 필수적인 국가적 R&D 혁신을 위해서는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분석이 시급하다.
 
먼저 R&D 투자의 성격을 살펴보면, 설비 투자 등 고정 자산 투자와 많은 차이가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설비 투자는 대체로 투자 효과가 단기간에 나오지만 R&D 투자는 축적이 필요하여 효과가 나오는 데 오래 걸린다. 우리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선도국들은 R&D 투자의 규모도 우리보다 훨씬 크고 기간도 길다. 미국, EU, 일본은 백년 이상 지속적 투자로 이미 80년 전 2차 세계대전 당시 비행기, 항공모함, 탱크 등 첨단 무기를 개발할 만큼 축적이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세계 1~2위를 다투는 GDP 대비 R&D 투자 비율이나 순위에 대해 많은 의미를 부여해서는 안된다. R&D 투자 비율보다 절대 금액이 더 중요한 것이다. 우리나라 R&D 투자 절대 금액은 미국의 11%, 중국의 22%, 일본의 48%, 독일의 67%에 불과하다. 더욱이 그간 축적된 R&D 투자 누적액을 감안하면 차이는 훨씬 더 벌어진다. 우리 경제가 일부 산업 분야나 시장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전 분야 및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R&D 투자 절대 금액이다. 예를 들어, 같은 제품 및 시장에서 경쟁하는 매출 10조원의 A사와 매출 100조원의 B사가 있다고 하자. A사가 R&D 투자를 매출액의 10%를 한다면 1조원의 R&D 투자를 하게 되고, B사가 매출액의 5%를 R&D에 투자한다면 5조원을 하게 된다. 이 사례에서 A사는 경쟁사인 B사 대비 R&D 투자 비율은 두 배 높으나 절대 금액에서 5분의 1밖에 안되어 경쟁에서 이기기 어려운 이치다.
 
R&D 투자 절대금액의 중요성만 감안해도 R&D 투자의 상대적 열세 속에서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기적 같은 성공 사례를 이루어낸 우리 R&D 생태계가 결정적 기여자로 칭찬을 받아야지 투자 대비 성과가 없다는 지탄을 받아서는 안된다. 정부 R&D 예산 나눠먹기 등 일부 잘못된 관행이나 비효율 사례가 있다고 해서 우리 산학연관 R&D 생태계 전체를 매도하거나 오판해서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우를 범하게 된다. 우리 R&D 생태계가 의미 있는 규모의 R&D 투자를 시작한 지 이삼십년에 불과하기에 국가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기술 축적을 이루어가면 머지않아 기대하는 큰 성과가 나올 것으로 확신한다.
 
기술패권 시대와 함께 대전환 시대가 진전되면서 우리가 경쟁하고 있는 선도국들의 R&D 투자가 최근 급증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경각심을 가지고 대비해야 한다. 최근 10년간의 주요국 정부 R&D 투자가 모두 비약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일본의 정부 R&D 투자가 괄목할 만한 급증세로 지난 10년간 2.6배 증가하여 같은 기간 83% 증가한 우리 정부 R&D 투자 증가율을 압도했다. 미국도 지난 10년간 과거 대비 훨씬 높은 55% 증가율을 기록했다. 독일은 70% 증가하여 EU 회원국 중 증가율이 가장 높다. 세계 선도국이자 경쟁국들이 다시 R&D 투자를 확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R&D 투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정확한 분석으로 전열을 재정비하여 다시 뛸 때다. 우리와 경제 구조나 수출상품 구성이 유사하고 주요 경쟁국인 일본의 R&D 투자 절대금액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올리는 것이 시급하다. 국가 총 R&D 투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현재 투자의 두 배 수준이다.
 
R&D 투자의 양적 확대와 함께 질적 혁신도 시급하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R&D 정책 혁신이 필요하나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무엇보다 R&D 환경의 변화에 따른 R&D의 목적 및 전략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 성장 및 발전의 성공요소로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을 꼽을 수 있다. 현재 우리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반도체, 자동차, ICT(정보통신), 철강, 화학 등 주력 산업 모두 우리가 만든 혁신 기술을 모태로 한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혁신 기술을 경제적으로 빨리 사업화한 ‘빠른 추격자’ 전략이 주효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 발전과 함께 선도국의 견제도 커지고 ‘빠른 추격자’ 전략을 가능하게 했던 생산성, 원가·품질·시간 경쟁력 등 효율성이 급속도로 퇴보하여 새로운 전략으로 선도자를 의미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전략으로의 전환이 시급해졌다. 우리 정부도 ‘퍼스트 무버’ 전략을 강조하고 있으나 많은 보완이 필요하다.
 
먼저 ‘퍼스트 무버’에 걸맞은 R&D 목표, 전략, 프로세스, 평가체제 등 R&D 체제의 총체적 혁신이 필요하다. ‘빠른 추격자’ 전략에서는 R&D 투자 대비 성과 등 R&D 생산성 및 효율성이 중요하나, ‘퍼스트 무버’ 전략에서는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새로운 혁신을 만드는 효과성 및 전략적 방향성이 핵심이 되어야 한다. ‘빠른 추격자’ 전략에서는 10개의 R&D 과제 중 몇 개가 성공했는지가 중요했으나, ‘퍼스트 무버’ 전략에서는 10개 과제 중 한 개라도 세계적 혁신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R&D를 통한 기술 혁신의 목적에 획기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퍼스트 무버’라 해서 초격차 기술 등 기술의 선도성에만 너무 집착해서는 안된다. ‘빠른 추격자’ 전략에서는 이미 선도자들이 제품 및 기술의 목적을 정의하고 시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R&D가 추격해야 할 기술 및 제품 중심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퍼스트 무버’ 전략은 기술이 지향해야 할 목적 및 미션을 새로이 정의하여 시장에 제시하고 선도해야 하므로 R&D가 목적 및 미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미션 중심 R&D가 급부상하고 있는 이유다. 우리 R&D 정책도 현재의 기술 중심에서 미션(Mission)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미션이란 기술 관점의 미션이 아니라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인류 비전을 실현하는 사회적 도전과제 관점의 미션을 의미한다. 현재 ‘빠른 추격자’ 전략에 맞춰져 있는 R&D 체제를 ‘퍼스트 무버’ 전략에 맞도록 전면적으로 쇄신해야 한다. 기본이 중요하다.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전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서울대학교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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