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로앤피] ‘안심보장(제) 보증서(보장증서)’란 게 있다. 지역주택조합 아파트에서 많이 사용한다. 지주택 조합에 들어가려는 가입자는 이후 아파트 사업 진행이 안 되면 납부 금액을 돌려받지 못한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조합원을 원활하게 모집하기 위해 조합 측에서 ‘사업이 진행되지 않더라도 조합원이 초기 납부한 일정 금액을 환불해준다’는 증서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최근 이 보증서를 써준 지주택 조합을 상대로 분담금을 환불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환불보증서 내용에 따라 돈을 돌려받는 게 아니라, 보증서가 무효여서 환불을 받는다. 총회 결의를 거치지 않은 이런 보증서는 무효라는 법원 판단이 잇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되면 조합원은 기존에 냈던 분담금을 돌려 받을 수 있어 법원의 전향적인 판단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환불 보증서가 다소 엉뚱한 방식으로 ‘환불 보증’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도 노출되고 있다. 이 증서가 자꾸 문제가 되자 지주택 조합 측에서 최근 아예 보증서를 발급하지 않는 쪽으로 급선회하고 있는 것이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7-3부(재판장 김형작 부장판사)는 지난달 29일 지역주택조합원 A씨가 지주택 분담금 전액 반환을 주장하며 조합을 상대로 낸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1심과 같이 A씨의 손을 들어줬다.
A씨는 지난 2021년 5월 서울 관악구 봉천동 일대 공동주택 신축을 위한 지역주택조합의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아파트 분양을 받기 위해 조합과 조합가입계약을 맺었다. A씨는 조합에 분담금으로 총 4000만원을 지급하고 조합은 '천재지변 또는 사업계획 미승인 확정 시 조합원이 납부한 분담금 전액 환불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안심보장제 보증서를 교부했다.
이 보증서를 믿고 A씨는 조합에 가입했지만 몇 년이 지나도록 주택조합 사업이 진척을 보이지 않았다. 가입 계약 체결 당시 사업부지의 사용권원 확보 현황도 조합 측이 사실과 다르게 알려줬다는 사실을 알고 A씨는 조합 탈퇴와 함께 납입한 분담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
A씨는 지난 2022년 대법원 판례를 활용한 전략을 썼다. 대법원은 안심보장증서가 계약에 첨부돼 환불 약정이 체결된 경우, 이같은 약정은 비법인사단인 조합의 총유재산의 처분 행위로서 총회 결의를 필요로 하는데도 이런 결의가 없을 경우 그 계약은 무효라고 봤다.
A씨는 자신이 받은 보증서에 대해서도 총회 결의가 없었으며 보증서 자체가 A씨를 기망한 것이라는 점을 주장했다. 대법 판례대로 조합이 A씨에게 분담금을 전액 반환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자 조합 측에서는 대법원 판결의 법리를 피해가기 위해 조합이 비법인사단이 아닌 민법상 조합에 해당하고 따라서 분담금은 총유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쳤다. 또 안심보장제 보증서의 환불보장약정은 단순히 채무를 만드는 행위로, 총유물의 처분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총회의 결의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에 이어 항소심 재판부도 A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지역주택조합은 비법인사단에 해당하고 사업 추진은 조합원들이 납부한 분담금을 통해 이뤄지므로 조합이 조합원들로부터 수령해 보유하고 있는 분담금은 조합원들이 집합체로서 소유하는 총유물에 해당한다"며 "분담금 환불보장약정을 담은 보증서는 단순한 채무부담 행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총유물인 조합원들이 납부한 분담금 자체의 감소를 발생시키는 내용으로 이 약정이 유효하기 위해서는 총회결의를 거쳐야 하는데, 이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아 무효"라고 설명했다.
이어 "환불보장약정에 따라 분담금 전액을 그대로 반환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조합가입 계약을 체결하는 데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됐을 것으로 보인다"며 "법률행위의 일부분이 무효인 때에는 그 전부를 원칙적으로 무효로 하는 법률행위의 일부 무효의 법리에 따라 조합가입 계약도 무효가 되므로, 조합은 A씨에게 분담금 4000만원을 돌려줘야 한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그동안 조합과 조합원들 사이의 '상호 계약'에 대해 보수적 입장을 유지했다. 조합가입 계약의 효력 자체를 부정하는 판결을 거의 내놓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 대법원이 안심보장제 보증서와 관련해서는 ‘총회 결의가 없을 경우 무효’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조합원들이 납입한 분담금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는 법리적 ‘루트’가 됐다.
A씨를 대리한 윤성준 변호사(법무법인 YK)는 “아예 사업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는데 조합이 이를 속이고 조합원을 모집한 수준이 아니면, 법원이 지금까지는 기망에 의한 조합계약 취소나 무효를 거의 인정하지 않았다”며 “대법원 판례 후 안심보장약정이 무효여서 조합가입 계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판결이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를 회피하는 방법은 간단해 또 다른 우려를 낳고 있다. 윤 변호사는 "이런 판결이 계속 나오자 이제 조합 측이 조합계약 무효 판결을 받지 않기 위해 안심보장제 보증서 자체를 교부하지 않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며 "이 경우 조합원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납입한 분담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 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법률전문미디어 아주로앤피의 기사를 직접 보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