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은행들이 대출 기간을 줄이거나 한도를 제한하는 강력한 가계대출 관리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인위적인 가산금리 상향 조정에도 가계부채가 역대 최대 증가 폭을 나타내면서다. 예컨대 국민은행은 주택담보대출 기간을 수도권 소재 주택 한정 최장 50년에서 30년으로 일괄 축소했다. 우리은행은 주택 소유자에 대해선 모든 주담대, 전세자금대출을 취급 중단하기로 했다.
은행권이 이렇듯 강력한 대출 제한에 나선 건 금융당국의 가계부채를 줄이라는 압박이 작용한 결과다. 대출 가산금리를 올려도 가계부채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보다 다양한 측면에서 은행에 대출을 제한하라고 압박한 것이다.
앞서 주요 은행들은 지난 7월부터 20여 차례에 걸쳐 가산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이에 올해 들어 내려가고 있는 시장금리와 반대로 주담대 금리는 오히려 높아졌다. 2금융권인 보험사보다 1금융권인 은행 금리가 더 높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당국의 가계부채 관리 중점 대상이 은행이 되면서 보험사는 인위적으로 가산금리를 인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계부채는 오히려 역대 최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달 말 가계대출 잔액은 725조3642억원으로 전월 말(715조7383억원)보다 9조6259억원 늘었다. 이는 2016년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최대 증가 폭이다.
주담대 역시 마찬가지다. 5대 은행의 같은 기간 주담대 잔액은 559조7501억원에서 568조6616억원으로 8조9115억원 늘어 역대 최대 증가액을 나타냈다.
그럼에도 당국은 가계부채 증가, 가산금리 인상 등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앞선 은행의 가산금리 인상과 관련해서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주담대 금리 인상은 당국이 바란 것이 아니다”며 “은행 자율성 측면에서 개입을 적게 했지만 앞으로는 부동산 시장 상황 등에 비춰 개입을 더 세게 해야 할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은행의 가산금리 인상 조치는 당국 방침과 관계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은행이 당국의 강력한 제재하에서 단독으로 여러 차례 가산금리를 인상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이 원장의 가산금리 인상에 대한 질책성 발언이 나오자 은행들이 곧바로 대출 제한 조치를 발표한 것 또한 당국의 은행에 대한 영향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사실상 가계부채가 급증하게 된 원인도 당국에 있다. 앞서 지난 7월부터 시행하려던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를 두 달 연기해 9월로 미루면서 ‘막차 수요’가 몰렸다. 개인 대출 한도를 줄이는 스트레스 DSR 규제가 더 확대하기 전에 최대로 대출을 받으려는 이들이 많아진 결과다.
급격히 불어나고 있는 가계부채를 관리하기 위해 조처를 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은행권에 책임을 돌리는 한편 당국이 정책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지 않는다면 가계부채 급증세를 막기는 쉽지 않다. 부동산 시장마저 수요가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당국의 보다 직접적인 해결책 마련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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