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법학과 관련되는 학위는 ‘LLB’와 ‘JD’로 구분된다. ‘LLB’는 법학사(Bachelor of Law)를 의미하며, 라틴어 ‘Legum Baccalaureus’에서 비롯되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Law School’, 즉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면 번역상으로는 ‘법학박사’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법무박사’로 알려진 ‘Judicial Doctor’, 일명 ‘JD 학위’가 주어진다. JD에서 ‘Doctor’라는 타이틀 때문에 사람들이 통상 박사라고 생각하지만 정상적인 학사와 석사, 위의 단계인 그 박사는 아니다. 의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면 의학박사라고 불리는 ‘Medical Doctor’, 일명 ‘MD 학위’가 주어진다. 이것도 우리가 보통 부르는 그 박사가 아니다. 사람들이 박사라고 부르는 전통적인 박사는 ‘Ph.D.’, 즉 ‘Philosophy of Doctor’이다. 그러면 또 한국어로 옮기면 ‘Philosophy’가 철학이니 철학박사가 되는가? 그것이 아니라 여기서 ‘Philosophy’는 학문을 의미하며, 따라서 ‘Ph.D.’는 학문에 있어 총아로서 박사를 뜻한다. 미국에서 법학전문대학원이나 의학전문대학원은 4년제 학부의 학사 학위를 마치고 나서 진학하는 곳이며, 학문을 논하는 장이 아니라 직업교육의 장이다.
매년 2월과 7월 마지막 주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미국 50개 중에서 UBE(Uniform Bar Exam)에 가입한 주들에서는 동시에 변호사시험이 치러진다. 미국의 변호사 시험과목은 MBE(객관식), MEE(주관식), MPT(법률문서 작성) 등 세 파트로 구성되며 이틀에 걸쳐 진행되고 절대평가 방식이다. 절대평가 방식은 일정한 점수만 취득하면 합격자 수는 고려하지 않고 합격하는 평가 방식이다. 그리고 로스쿨을 졸업하고 나서 변호사시험에 응시하는 시험 횟수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몇 번을 응시하든 개인의 자유이다. 일생을 통틀어 무제한이다.
미국의 자격증 시험은 대체로 절대평가 방식이다. 각 시험에서 요구하는 일정한 수준의 전문지식을 갖춘다면 시험에 합격하도록 한다. 한국의 자격증 시험처럼 ‘너 죽고 나 살자’ 방식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일단 해당 분야 전문지식을 구비했는지 자격시험을 통해 기본적인 검증을 거친 다음에는 자격증의 정글에 뛰어들어 적자생존의 무한 경쟁에 돌입한다. 미국에서는 최고 수준의 로펌에서 연봉 수백만 달러 이상을 버는 변호사가 있는가 하면, 아르바이트로 우버 택시를 모는 변호사도 있다. ‘베터 콜 사울(Better Call Saul!)’이라는 미국의 법정 드라마가 있다. 그 주인공 이름은 ‘사울(Saul)’인데, 뉴맥시코주 앨버커크시의 변호사이다. 사울은 변호사 사무실 임대료를 낼 형편이 못 되어서 베트남 여사장이 운영하는 네일숍 뒤쪽에 있는 한 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일한다. 구석진 변호사 사무실에서 악전고투하는 변호사의 일상을 잘 보여준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법대가 지닌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도입한 대안이 로스쿨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로스쿨도 과거 법대 시절보다는 상황이 개선되었다고는 하지만, 역시 변호사시험에 치중하는 모습을 지울 수가 없다. 시험은 시험인 것이다. 이런들 저런들 결국 시험은 쳐야 하는 것이고 그러면 수험생활이 필수적으로 뒤따른다. 1970년대 예비고사는 1980년대 학력고사가 되고, 다시 1990년대 이후 수학능력시험이 되었다. 어떤 형식의 시험이 되더라도 사실 ‘꿩 잡는 게 매’라는 말이 있듯이 시험은 붙어야 하는 것이다. 사법고시든 변호사시험이든 어차피 누군가는 합격하고 누군가는 떨어지는 것이 시험이다. 한국적 현실에서는 반드시 누군가가 합격하면 누군가는 불합격이 필연적이다.
미국 변호사시험은 가장 개방적이고, 전향적인 지역은 ‘워싱턴 컬럼비아특별구(District of Columbia)’이다. 우리가 흔히 ‘Washington D.C.’라고 부르는 미국의 수도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연방국가로서 각 주마다 독자적인 법역(Jurisdiction)을 가진다. 수도인 ‘Washington D.C.’는 연방법이 지배하는 법역임에 따라 미국 변호사시험에 있어서도 시범적인 제도를 많이 운용하며, 이에 따라 다른 연방의 주들이 이를 수용하기도 한다. 미국은 로스쿨의 법학박사(JD) 과정을 거친 응시자들에 대해 대체로 변호사시험 응시 횟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간혹 응시 횟수에 제한이 있는 주가 있다 할지라도 응시 기간에는 제한이 없다.
한국의 변호사시험법 제7조에 따르면 로스쿨 졸업생들이 로스쿨의 석사 학위를 취득한 달의 말일부터 ‘5년 이내에 5회’에 한하여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한국이 미국의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면서 한국 변호사시험에 응시 기간의 제한과 이에 따른 횟수를 제한한 이유가 ‘고시낭인’의 방지라고는 하지만 로스쿨 졸업 후 ‘5년 이내’라는 응시 기간의 제한은 불합리한 점이 많다. 무릇 국가든 개인이든 예기치 못한 사건이나 사고는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병역의무의 예외를 인정한다지만 시험 준비가 미흡한 상태인 제대 직후, 출산, 육아, 질병이나 경제 사정의 악화와 같은 인간사와 가정사, 자연재해와 천재지변 등 우리 삶에는 각자에게 예측이 가능한 일도 있고 예측 불허의 사건이 있다. 홍수로 집이 떠내려간다면 가재도구는 챙기러 가야지 육법전서를 끌어안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교통사고와 같은 불운한 사건이 생긴다면 변호사시험 응시의 기회와 자격증은 허공에 날려야 하는가?
획일적으로 5년이라는 시간의 선을 긋고 비싼 학비와 소중한 시간, 그리고 이것들의 기회비용을 무시하는 것은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의 침대’가 아닐 수 없다.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아테네의 언덕에 사는 강도였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사람을 붙잡아서 자신의 침대에 눕히고는 키가 침대보다 크면 그만큼 잘라내고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억지로 침대 길이에 맞추어 다리를 늘여 죽였다. 그래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는 독단적인 인간을 가리키는 심리학 용어이기도 하지만, 융통성이나 배려가 없는 행정 편의주의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Washington D.C.’는 정식 로스쿨을 졸업한 법학박사(JD)가 아닌 법학 관련 학점 이수를 통한 응시 자격 취득자들에게 응시 기간에는 제한이 없고 응시 횟수로는 총 4회의 응시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한국의 변호사시험 응시 자격에 있어 적어도 로스쿨 졸업 후 5년 이내에서 일생 5회로 바꾸는 것이 어떨까 한다. 시험의 순발력이 떨어지고 암기력이 부족하지만 엉덩이가 무거운 진득한 수험생이라면 6년 만에 변호사시험에 합격할 수도 있는데 5회 응시 제한에 걸려 응시할 수 없다면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6회 차에 응시해 보지도 않는다면 아무도 합격 여부를 예측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것이 아니다. 결국 각자의 선택의 문제를 존중하여야 할 것이다. 로스쿨의 원조인 미국 로스쿨 제도를 도입하면서 반드시 미국처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원조에도 없는 5년 이내 5회 응시 횟수의 제한은 그 유래와 근거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곧 가을이 되면 국내 각 법학전문대학원에서는 입학원서를 접수한다. 내년 로스쿨 입학생들은 3년 뒤 변시를 치르고, 이들 중 누군가는 반드시 ‘5탈자’ 대열에 들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필자 주요 이력
△부산대 번역학 박사 △미국 University of Dayton School of Law 졸업 △대구가톨릭대 영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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