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표 가전 브랜드 메이디(美的·Midea)가 상장 심사를 통과하며 홍콩 증시 입성에 청신호를 켰다. 계획대로 기업공개(IPO)가 성사된다면 올해 홍콩 증시 최대어가 될 전망이다. 중국 경제 둔화 여파로 홍콩 증시가 대형 IPO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메이디가 단비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글로벌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메이디로서는 해외 사업 확장 자금 마련은 물론 글로벌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자금 조달 최대 4조원...'대어 가뭄' 홍콩 증시에 '단비'
3일 중국 매체 매일경제신문 등에 따르면 메이디는 이날 홍콩증권거래소 상장 심사를 통과했다. 앞서 메이디는 지난해 10월과 올해 4월 두 차례에 걸쳐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 청구서를 제출했다. 상장 주관사는 중국국제금융공사(CICC)와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맡았으며 9월 중 IPO가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IPO를 통해 메이디는 최대 233억 홍콩달러(약 4조원)를 조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역대 홍콩 증시 IPO에 성공한 기업 중 200억 홍콩달러 이상을 조달한 기업은 38곳에 불과하다. 가장 최근에는 2021년 상장한 바이두와 빌리빌리, 징둥물류 등 3곳이 전부이다.올해 들어 지금까지 홍콩 증시 IPO 자금 조달 최대 규모는 중국 밀크티 브랜드 차바이다오(차백도)가 끌어모은 25억8600만 홍콩달러였다. 메이디의 자금 조달 목표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참고로 현재 중국 증시에서 메이디 시가총액은 약 4600억 위안(약 86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번 IPO에 성공하게 되면 메이디는 하이얼에 이어 두 번째로 홍콩 증시에 입성한 중국 가전업체가 된다.
메이디 상장 소식은 홍콩 증시 IPO 가뭄 속에 나온 것으로 홍콩 증시가 국제 금융 허브로서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올해 상반기 홍콩 증시 신규 상장 기업은 27곳, 자금 조달 규모는 116억 홍콩달러에 불과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5%, 35% 쪼그라든 수준이다. 특히 자금 조달 규모는 20년 만에 최저치다. 지속된 ‘대어 가뭄’으로 중소형주들이 IPO 시장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당초 뉴욕 증시 상장을 계획했던 중국 패스트패션기업인 쉬인이 홍콩 대신 ‘런던행’을 택하면서 홍콩 금융시장이 빛을 잃은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낳은 바 있다.
메이디는 매출과 순이익, 이익률이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재무 건전성이 매우 양호한 상태다. IPO를 통한 자금 조달이 시급하지 않다는 뜻이다. 이미 중국 증시에 상장되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메이디가 이번에 홍콩행을 선택한 이유는 글로벌 사업이 향후 성장 동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어서다. 메이디는 국제 금융 허브로 평가받는 홍콩 증시 상장을 통해 국제적 노출도를 높여 글로벌 기업 이미지를 구축하고, 글로벌 투자자도 적극적으로 유치한다는 전략이다.
공격적 M&A 통해 해외 진출 초석 다져...세계 3위 도약
메이디 창업자인 허샹젠 전 메이디그룹 회장은 1968년 고향인 순더(順德)시에서 주민 23명과 함께 5000위안(약 94만원)을 가지고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유리병과 플라스틱병 등을 주로 생산했다. 가전 시장에 발을 들인 것은 1980년 선풍기를 생산하면서부터다. 이듬해 메이디라는 상표를 등록하면서 현재의 메이디 브랜드가 공식적으로 탄생하게 됐다. 이후 냉장고, 세탁기 등으로 제품을 넓히며 하이얼, 거리와 함께 중국 3대 가전업체로 성장했다. 2013년 9월에는 중국 선전증권거래소에 성공적으로 상장하기도 했다.이후 전환기를 맞이한 것은 해외 사업을 확대하면서다. 중국 가전업계가 내수 부진에 따라 해외 진출을 돌파구로 삼으면서 메이디도 글로벌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저가를 무기로 인도와 브라질, 중동 등 신흥국에서 입지를 다진 것은 물론 북미·유럽 시장까지 공략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에도 정식으로 진출했다.
사실 메이디는 10여 년 전부터 해외 기업을 적극 인수하면서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초석을 닦았다. 2010년 자회사를 통해 이집트 에어컨 업체인 미라코(Miraco) 인수를 시작으로 공격적인 인수합병(M&A) 행보에 나섰다. 이듬해에는 글로벌 에어컨 업체 캐리어(Carrier)의 라틴아메리카 사업 지분 51%를 인수했다. 2016년에는 일본 도시바의 백색가전 사업, 독일 대표 로봇 업체 쿠카(Kuka), 이탈리아 에어컨 제조업체 클레빗(Clive) 등 지분을 사들였다. 특히 쿠카 인수 당시 지분 가치보다 60% 높은 인수 금액을 제안하는 등 큰 공을 들였다. 쿠카가 산업용 로봇 시장을 일본과 양분했던 독일 대표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메이디는 곧바로 2017년 2월 이스라엘 로봇 솔루션 업체인 서보토닉스를 사들이기도 했다.
메이디는 해외 생산기지도 적극적으로 구축해 왔다. 현재 메이디는 생산기지와 R&D(연구개발)센터를 각각 43곳, 33곳 두고 있는데 이 중 생산기지 22곳, R&D센터 16곳은 해외에 있다. 또한 메이디 전체 직원 19만명 중 전 세계 16개국에 있는 직원만 3만5000여 명에 달한다. 이에 지난해 메이디의 세계 가전 시장 점유율은 7.9%에 달해 3위에 안착했다. 제품별로 보면 가정용 에어컨(23.7%), 세탁기(14.2%), 냉장고(10.5%), 주방 가전 및 기타(6.0%) 순이다.
상업용 시장에서도 굳건한 입지를 자랑한다. 중국 국내 시장 점유율은 14.3%에 달하며 세계 시장 점유율도 6.6%로 세계 5위다. 2016년 인수한 쿠카는 현재 세계 4대 산업용 로봇업체 중 한 곳으로, 지난해 글로벌 대형 로봇 시장에서 점유율 18.6%에 매출 2위를 기록했다.
IPO 통해 해외 사업 확장 가속화 전망
해외 사업 호황에 힘입어 메이디는 올해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메이디가 지난달 19일 공개한 실적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매출은 2172억7000만 위안(약 40조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3%나 증가했다. 이 기간 해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1% 늘어난 910억8000만 위안에 달했다. 해외 매출 비중은 전년 동기 대비 1%포인트 증가한 42%다. 상반기 메이디의 스마트홈 앱 신규 등록 해외 사용자 수는 100만명을 돌파했고, 현재 해외 사용자 수는 310만여 명에 달한다. 메이디는 2027년까지 해외 매출을 350억~400억 달러(약 47조~54조원)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메이디는 "가전 수요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서 성장의 기회를 찾을 것"이라며 "동시에 해외 공장도 지속적으로 건설하고 브랜드 인지도도 높여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홍콩 증시 IPO가 성사되면 메이디의 글로벌 시장 공략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중국 증권시보는 “홍콩 증시 상장이 이뤄지면 해외 사업 투자에 유리하기 때문에 메이디의 해외 사업 확장이 가속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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