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올해 상장사가 공시하는 증권신고서 내용을 꼼꼼히 들여다보며 기업들 사이에서 불편한 한숨이 터져 나온다. 합병, 신규 상장 등에 더 상세한 정보를 담으라는 주문에 기업들은 어렵다고 호소하지만 투자자 보호 관점에선 필요한 조치라는 평가가 나온다.
5일 금감원이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기업이 제출한 증권신고서 가운데 금감원이 명시적으로 정정을 요구한 비율은 4.7%로 작년 한 해 정정요구 비율(3.8%)보다 0.9%포인트 증가했다. 정정요구 비율은 2020년부터 매년 감소해 왔는데 올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정정요구는 금감원이 기업에 '제출된 증권신고서를 정정해 다시 내라'고 요구하는 공식 절차로, '형식 미비' 또는 '중요사항 등 미기재'와 같은 사유와 근거 법령을 포함해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다.
금감원은 정정요구를 통해 최대주주 주식 변동을 수반한 합병이나 신규 상장을 추진하는 기업의 증권신고서에 대해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라고 요구한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공식적인 정정요구가 아니라 당국의 '암묵적 수정요구'에 따른 기업의 자체 정정신고 사례도 늘고 있다.
김광중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는 "증권신고서를 통해 기업의 정보가 충분히 제공되지 않으면 투자자가 잘못된 투자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며 "그렇게 판단되는 사안에 명시적으로 정정요구를 하고 있다는 점은 바람직하다"고 했다.
이준서 한국증권학회장(동국대 경영학과 교수)은 "증권신고서 수리를 위한 심사는 규정으로 주어진 항목을 충족했느냐라는 정량적 판단 비중이 큰데, 과거 증선위 비상임위원으로서 대주주 변경과 같은 증권신고서를 검토했던 경험에 비춰보면 규정만으로는 모니터링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다"며 "(금감원이)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 현행 규정, 형식으로 걸러내지 못하는 요소를 더 체크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작년 코스닥 특례상장 후 고평가 논란을 야기한 '파두 사태' 이후, 상장 증권신고서는 제출 직전월의 실적 기재 등으로 정량적 기준도 강화됐다. 이에 더해 당국의 검토 업무가 질적으로도 강화되면서 올해 상장 추진 기업들 사이에서 일정을 연기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IPO를 준비하는 기업 중 상장 시점을 미룬 기업은 45곳(스팩·리츠 제외)에 달한다. 이 중 민테크, 씨어스테크놀로지, 디앤디파마텍, 에스오에스 랩 등 절반 이상이 당초 예정한 일정보다 상장 시기를 늦췄다.
증권신고 후 상장 철회나 정정신고는 비용적으로 부담이 크다는 판단에 처음부터 공을 들여 한 번에 상장을 성공시키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금감원이 증권신고서 통과 기준을 높였다는 인식에 따라 기업들이 기업 가치를 더 높이기 위해 보스턴컨설팅그룹 등 굴지의 컨설팅 회사를 찾거나 아예 공모가를 낮춰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투업계에선 증권신고서 제출 전 단계부터 상장 지원 서비스를 강화하는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 EY한영은 IPO를 준비하는 스타트업, 상장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대상으로 전문 서비스를 확대한다고 밝혔다. 한 증권사 관계자도 "증권신고서에 투자자가 오인할 내용이 없는지 꼼꼼히 보게 됐다"며 "강화된 신규상장 기준은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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