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변화에 따라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흔들리면서 최근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등에서 현대 가족 형태를 반영한 새로운 가족법 관련 판례가 나오고 있다.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가사사건 법률시장도 덩달아 커지는 추세다.
18일 아주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올 상반기 이혼, 위자료, 재산 분할 등 가사사건에 대한 새로운 판결이 나오는 이유는 제정된 당시 가족관에 머물고 있는 현행법과 제도가 저출산, 고령화, 1인 가구 증가 등 변화한 사회상을 담고 있지 않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헌재는 지난 4월 망자의 형제·자매에게 일정 비율 이상 유산을 보장하는 '유류분' 제도에 대해 위헌 결정했다. 유류분은 과거 장남 위주로 유산이 상속되면서 부인이나 딸이 불합리하게 상속에서 배제되자 이들을 보호할 필요성이 인정되면서 1977년 도입됐다. 조웅규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핵가족화·여성 지위의 향상과 남녀평등 실현 등으로 과거 처음 유류분이 도입됐던 당시와 법 현실 간에 괴리가 크기 때문에 헌재가 위헌 등을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6월에는 친족 사이에 일어난 재산 범죄는 처벌할 수 없도록 하는 형법의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 조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친족상도례는 1953년 형법 제정과 함께 도입됐지만 가족의 형태가 달라졌고 친족 간 유대가 옅어져 규정이 시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함에 따라 국회에서는 친족상도례를 폐지하는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향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친족 간 재산범죄도 원칙적으로 피해자 의사에 따라 형사처벌할 수 있게 된다.
지난 7월에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사실혼 관계인 동성 동반자에 대해 국민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한 전향적인 판결을 내놨다. 그동안 동성 부부의 권리는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는데 대법원이 최초로 동성 간 결합관계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 헌법상 기본권을 인정한 것이다.
잇따른 가족법 관련 새 법리와 판결에 법원은 지난 7월 '가족법연구회 커뮤니티'를 새로 만들었다. 판사 50여 명이 커뮤니티에 가입하며 뜨거운 인기를 입증했다. 가족 관련 법적 문제가 증가하고 또 광범위한 영역에서 제기되고 있어 법관들이 꾸준히 가족제도와 관련법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2년 전국 법원에서 접수한 가사 사건은 총 17만7310건으로 14만3874건이었던 2013년과 비교하면 10년 만에 무려 23.2% 증가했다.
로펌도 전문가를 활발하게 영입해 팀을 강화하고 사건을 수임하는 등 커져가는 가사사건 법률시장에 적극 뛰어드는 모습이다. 법무법인 원은 지난 4월 상속 관련 종합 법률·세무 컨설팅 서비스인 '헤리티지 원'을 출시했다. YK는 최근 최태원 회장의 이혼 소송 1심 대리인을 맡았던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 출신 배인구 변호사를 영입하고 가사상속가업승계센터를 발족했다. 신은규 YK 서초지사장은 "요즘 가사사건 상담이 전보다 훨씬 늘어났는데 명절 이후에는 평소보다 3~4배까지 늘 것으로 보인다"며 "이 기간 동안 YK에서는 새 판례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가사사건 상담에 더욱 집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형 로펌 소속인 또 다른 변호사는 "이전과 비교했을 때 최근 1~2년 사이 특히 가족 관련 주요 판결들이 눈에 띄게 나오고 있다"며 "가족과 관련된 사회적 인식 등이 변화해 기존 법리를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법원이)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새 판례나 헌재 결정이 나오면 이와 관련한 자문도 많이 들어오기 때문에 법원의 이러한 흐름에 맞춰 로펌 등 법조계에서도 가사사건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