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으로 인해 생산활동과 일상생활이 급격히 변화하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조선과 반도체가 경쟁하는 기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분야가 전혀 다른 산업이 AI 개발 인력 확보를 두고 맞붙은 것이다.
이는 조선, 반도체에 국한되는 상황이 아니다. 완성차 기업과 이동통신사업자가, 물류기업과 중장비 기업이 AI를 미래 먹거리로 두고 전문인력 확보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조선·해운업계 최대 현안은 탄소중립과 자율주행이다. 특히 해운업계는 급격히 감소하는 선원 자원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일부 중소·중견 선사는 선원이 없어 배를 띄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자율주행 선박이 조선과 해운업계에 희망으로 떠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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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 중에서는 HD현대의 자율주행선박 자회사 ‘아비커스’가 이 분야에서 글로벌 정상급 위치에 있다. 2022년 보트 자율운항 시연에 성공한 아비커스는 최근에는 생성형 AI를 도입해 대형 선박이 암초, 빙하 등을 피하는 학습을 시키고 있다.
당장에도 상용화될 것 같은 아비커스의 자율주행 선박은 AI 인력 부족이라는 암초에 부딪혔다. 이도형 아비커스 대표는 지난 7일 온라인으로 진행된 ‘바다저자와의 대화’에서 경쟁 상대를 반도체 업계로 지목하기도 했다. AI 인력 쏠림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AI 인력 부족은 전 산업군에서 나타난다. SK텔레콤은 지난 2일부터 생성형 AI 기술에 있어 핵심인 LLM(거대언어모델) 전문가 모집에 나섰다. 1000억 파라미터 규모의 LLM을 개발하겠다는 목표인데, 한 달간 진행되는 채용이지만 전문 인력 확보가 쉽지는 않다는 게 내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의 자율주행 개발도 AI 인력 부족으로 목표보다 지연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19년 1110명 수준이었던 AI 인력 부족은 지난해 8579명으로 8배 가까이 뛰었다. AI 발전이 일자리를 뺏을 걱정을 하기 전에 AI 개발 자체 인력 확보가 문제라는 게 산업계의 시각이다.
정부는 최근 내년도 R&D(연구개발) 예산을 올해보다 16.7% 늘렸으며, 특히 3대 게임체인저(AI, 바이오, 양자)와 국가전략기술 예산은 25.5% 증가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마저도 바이오, 반도체, 양자에 집중 투자될 뿐 AI에 배정된 금액은 크지 않다. 또 가장 시급한 과제인 인재 양성 투입 금액은 50% 가까이 증액함에도 2142억원에 그쳤다,
젊은 개발자들은 차라리 중국에 가면 AI개발자에 대한 대우가 한국보다 낫다고 말한다. 전 산업군이 AI 인력에 목매는 현 상황에서 정부의 예산 선전용으로 쓰이기보다는 당장은 티 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국내 산업계에 숨통을 틔우는 데 사용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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