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일본 교토에서 열리는 한일 문화 장관 양자회의 직전에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갑작스럽게 불참을 선언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국회의 몽니에 오래전부터 계획됐던 중요 외교무대에서 장관이 급히 귀국하는 외교 결례를 범하게 된 것이다. 특히 이날 양자회의에서는 사도광산이 주요 의제 중 하나였다.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기도 전에 장관이 예정에도 없던 한국행 비행기를 타면서, 민망해진 우리 정부는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문체부에 따르면 한일 양자회의 참석을 위해 일본에 머물던 유 장관은 이날 오전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같은 날 오전 9시 45분 한일 문화 장관 양자회의를 시작으로 한중 문화 장관 양자회의, 한중일 문화장관 회의가 연이어 예정됐던 만큼, 이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장관이 중요 고위급 회의를 앞두고 급작스럽게 불참을 선언하는 것은 외교무대에서는 극히 드문 일이다. 또한 장관이 국제회의 도중 귀국하는 일은 문체부 사상 처음이다.
유 장관의 갑작스러운 귀국 배경에는 국회가 있다. 국회가 이날 예정된 대정부질문에 유 장관의 참석을 강력히 요구했기 때문이다. 앞서 민주당을 포함한 야당은 지난 10일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국회 대정부질문에 불참하자, 행정부가 국회를 무시하고 있다며 강력히 반발한 바 있다. 이 같은 불똥이 문체부로 튀면서, 유 장관이 서둘러 귀국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장관이 대정부질문에 불참하려면 양당 모두의 동의가 필요한데 야당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실제 문체부는 "한중일 문화장관 회의에 참석하려 했던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12일 오후 2시부터 개최되는 국회대정부질문 4일차 교육·사회·문화 분야 참석차, 귀국한다"며 "문체부는 한중일 문화 장관 회의 참석을 위한 이석 협의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아침 비행기로 귀국하게 됐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날에는 굵직한 외교 현안이 줄줄이 다뤄진다는 점이다. 한일 양자회의의 주요 의제 중 하나는 사도광산이다. 유 장관은 카운터 파트너인 모리야마 마사히토 일본 문부과학성 대신과 직접 만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한 후속 조치 이행을 요구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일본 현지 매체들은 양자회의를 앞두고 유 장관이 현재 아이카와 향토박물관에 전시된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 관련 기록물을 방문객이 많이 몰리는 키라리움 사도 등으로 옮기는 방안을 일본 측에 요구할 방침이라고 잇달아 보도한 바 있다.
또한 한중 문화장관 양자회의에서는 상호 비자 면제 등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었다.
용호성 문체부 제1차관이 부랴부랴 일본으로 달려와 일정을 대신 소화하기는 하나, 협상 파트너가 달라진 만큼 무게감 자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외교적 결례 논란이 불거질 가능성도 크다. 수개월 전부터 일본과 중국이 우리나라와 일정을 조율했던 만큼, 이번 사태로 인해 한국 정부는 국제무대에서 신뢰를 잃을 수밖에 없다. 이번 국제회의는 대정부질문보다 한참 이전에 이미 일정이 잡혀있었던 데다가 일정을 잡는 데도 상당한 난항을 겪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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