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전세 수요자들의 주거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가계대출 관리와 더불어 수도권 아파트 가격 안정을 위해 금융당국이 주택담보대출 규제 등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오히려 전세 매물을 구하기 어렵다는 하소연도 나온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불장’에 아파트 매매 가격이 뛴 데다 가을 입주 물량 감소로 전세 매물마저 부족해지면서 전세가격도 심상치 않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전세 물량은 적고 빌라 등 비아파트 선호도는 떨어진 상황에서 이사철이 도래하면 전셋값 상승이 불가피하다며 세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8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9월 둘째 주(9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대비 0.17% 오르며 69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수도권(0.14%→0.17%)도 전셋값 상승 폭이 커졌고, 지방(0.00%→0.00%)은 보합 국면을 유지하면서 전국 기준 전셋값 상승률도 전주 0.07%에서 0.08%로 높아졌다.
실거래 가격도 상승세가 확연하다. 서울 송파구 잠실엘스 전용면적 84㎡는 지난 12일 11억8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다. 지난해 9월만 해도 전셋값 8억원에 거래되던 것이 1년 만에 3억원이나 상승한 것이다. 서대문구 홍제동의 ‘대장 아파트’로 여겨지는 서대문푸르지오센트럴파크 전용면적 75㎡도 이달 7억5000만원에 전세계약을 체결해 최고가를 기록했다.
전셋값이 1년 넘게 오르고 최근 가격 급등세를 보이는 데는 전세 수요가 아파트로만 몰리는 등 수급 균형이 깨진 영향이 크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서울 지역 아파트 전세 매물은 3월 중순만 해도 3만2000건 규모였으나 이날 기준으로는 2만7182건으로 반년 만에 15% 이상 감소했다.
수급 지표를 보여주는 전세수급지수도 지속해서 오르고 있다. KB부동산이 집계한 지난달 서울 전세수급지수는 142.9로 지난 2021년 10월(162.2) 이후 3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세수급지수는 100보다 크면 수요가 공급보다 많고, 100보다 작으면 그 반대를 의미한다.
업계에서는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와 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전세 수요가 아파트로 이동하면서 매물이 빠르게 감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이달부터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등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아파트 매매에 부담을 느낀 수요자들이 전세로 몰린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입주물량 감소 등 가을 이사철 전셋값 상승 압력이 계속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이달 전국 아파트 입주물량은 2만5036가구로 전년 동기와 비슷하지만, 수도권은 지난해와 비교해 9% 감소한 8906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이는 올해 월간 기준으로 3번째로 적은 수준으로, 지난달(1만8950가구)과 비교하면 절반이나 줄어드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신축 아파트 입주장이 열리면 전세 매물이 늘어나 주변 전셋값이 떨어지는 등 전세시장 열기를 식히게 되지만, 최근 아파트 입주 물량이 줄어들어 ‘입주장 효과’가 무색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관리 강화를 주문하면서 전세시장 수급 불균형은 더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금부담을 느끼는 수요자들이 매매 대신 전세시장에 머무르는 걸 택하게 되면 수급 불균형이 더욱 심화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전셋값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월세 시장도 같이 상승하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우려도 제기된다. 전세 물량 감소와 대출 규제 강화로 인해 전세 대신 월세로 눈을 돌리는 수요가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가을 이사철을 앞둔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미국 IAU 교수)은 "입주물량 부족은 계속되는데 비아파트 전세 시장이 사실상 무너진 상황"이라며 "매매시장의 대출규제가 강화될수록 전월세 수요가 상대적으로 늘어나게 되고 결국 임대차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의 주거문제는 매매나 전월세를 통해서만 해결되는 만큼 공급 측면뿐 아니라 금융 등 종합적인 정책 관리 역량이 어느 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