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칼럼] 대한민국의 미래, 통합의 리더십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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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입력 2024-09-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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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추석 민심이 정치권에 대한 국민 반응의 풍향계가 된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였다. 비록 최근에는 각종 정보통신기술 및 SNS의 발달에 따라 과거와 달리 실시간으로 소통이 쉽게 되고 있다고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결국 추석 민심이라는 정치 풍향계는 추석 연휴가 계속되는 한, 그리고 민족 대이동이 멈추지 않는 한, 계속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올해의 추석을 비롯한 최근의 명절 민심에서는 과거와 달리 민심의 변화를 읽어내기 힘든 상황이 되고 있다. 민족 대이동이 크게 줄어든 것도 아니고, 오랜만에 가족 친척들과 만나서 세상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것도 아닌데, 추석 민심이 정치 풍향계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정치적 이슈에 대한 국민의 반응이 지역마다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민심(民心)이 곧 천심(天心)이라며 옛적부터 민심의 동향에 촉각을 세우는 것이 정치의 중요한 과제였는데, 이제는 민심이 쫙 갈라져서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으로 나뉘고 있다. 그로 인해 고향에 가서 가족과 친척들을 만나도 정치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교환되면서 새로운 민심이 형성 또는 확인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갈등 구조를 재확인하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런 일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민주화 이전 영호남 갈등이 극심하던 시기에는 정부 정책의 변화에 따른 지역 민심의 변화라는 것이 뚜렷하지 않았고, 여야는 각기 영남과 호남이라는 확고한 지역 기반을 토대로 쉬운 정치, 하지만 한계가 뚜렷한 정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러한 지역갈등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계속되었다.

망국적이라고 일컬어지던 영호남 갈등 해소에 가장 큰 기여를 했던 것은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전두환, 노태우 사면에 적극 찬성하면서 영호남의 불신을 완화하였고, 소외되었던 호남의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전국의 균형발전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후 이른바 보혁 갈등이 심해지면서 다시금 영호남 갈등이 재연하는 양상이 벌어지더니, 이제는 전국이 진영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버렸다. 과거에는 수도권, 특히 서울의 민심이 균형추의 역할을 한다는 말이 있었지만, 지금은 서울도 강남과 강북이 마치 영호남처럼 점점 갈라지고 있는 모양새가 아닌가.
 
진영 갈등이 정치권의 갈등에 그치지 않고 국민적인 편 가르기로 이어지면서 이제는 정치적 성향이 다르면 연애도 못 하고,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면 결혼도 못 한다는 말이 공감을 얻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진영이란 말인가?

갈등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생산적 갈등과 소모적 갈등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다양한 대안들을 제시하는 것은 생산적 갈등일 수 있지만, 무조건 상대방을 부정하고, 나만이, 내 편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소모적 갈등, 파괴적 갈등이다.
내 의견이 관철되었다고 상대를 무시하거나 억누르려는 것은 소모적 갈등의 증폭으로 이어지며, 이와는 달리 내 의견의 미비점을 상대방의 의견에서 찾아서 보완하려는 것은 생산적 갈등의 선순환이 된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의 진영 갈등은 생산적 측면은 보이지 않고, 소모적인 모습만 더욱 심해지고 있지 않은가?
 
생산적 갈등은 새로운 통합의 밑거름이 되지만, 소모적 갈등은 끝내 감정 대립으로 이어지고, 결국 분열로 치닫게 한다.

권위주의 정권 시기에 주장되던 국론의 통일, 국력의 결집이 아니더라도, 대한민국이 글로벌 경쟁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서 국가 전체를 위한 문제에서는 통합과 협력이 필요하다. 세계 최강국 미국조차도 국익 앞에서는 여야와 국민이 뭉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던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하게 요청되고 있다. 갈등을 억압하고 묵살하는 권위주의적 통합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들과 비판들이 자유롭게 표출되는 가운데 합리적인 조화점을 추구하는 민주적 통합이 요청되는 것이다.

민주정치에도 넘어서는 안 될 한계가 존재하지만, 그 한계 내에서는 최대한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이고, 민주적 자유이다. 그러나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할 때는 이러한 다양성을 하나의 공감대로 묶어서 국가의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강력한 민주적 정치지도자는 독불장군일 수 없다. 주변과의 소통 없이 자기주장만을 관철하려는 독불장군은 권위주의적 리더일 수는 있어도 민주적 다양성 속에서 이를 수렴하여 국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민주적 정치지도자가 되기에는 부적절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남한 내부의 갈등조차 다스리지 못하면서 남북한의 통일을 준비하고, 성취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북한의 내부적 변화, 국제정세의 변화 등에 따라서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 통일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 1990년 동서독의 통일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사건에 의해 달성되었다.
그러나 통일은 통일조약에 서명하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통일은 이후 30년의 사회통합 과정을 거쳐서 이제야 비로소 통일국가로서 완성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같은 1990년 통일된 예멘은 내부적 갈등으로 내전까지 겪었고, 아직도 완전한 통일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남예멘과 북예멘 사이에는 첨예한 갈등이 있다.

남북한의 통일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먼저 남한 내에서의 통합에 노력해야 하고, 통합의 의미와 방식, 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할 점과 유의해야 할 점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이는 국민 모두에게 필요하지만, 최우선으로 정치지도자들이 먼저 배워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통합의 리더십에 달려 있다. 여야의 정권투쟁보다 더 큰 목표를 위해, 대한민국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고, 나아가 남북한의 통일 및 사회통합을 위해 여야의 정치지도자들이 통합의 리더십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이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추석에 고향을 다녀온 사람들의 얼굴이 밝지만은 않다고 느껴지는 것은 물가고의 팍팍한 경제상황 때문일까? 아니면 미래가 밝지 않게 느껴지는 대한민국의 정치상황 때문일까?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 △전 국회 개헌특위·정개특위 등 자문위원 △전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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