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벤처기업은 경제 성장의 매우 중요한 축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생태계 위축은 우려할 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의 벤처기업은 2020년부터 약 4만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데, 2022년 기준 벤처기업의 전체 종사자 수는 약 81만명으로 4대 그룹 전체 종사자 수보다 많다. 고용 측면의 역할도 큰데, 정규직의 비율이 96.8%에 달한다는 점에서 젊은 층의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벤처 생태계가 위축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발전하도록 하는 것은 단지 업계 관련자들뿐 아니라 국가적인 관심이 필요한 문제이다.
최근 창업자들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플랫폼에 관련된 규제 움직임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규제가 혁신적인 창업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은 지난 십여년간 수많은 연구와 분석을 통해 잘 알려진 일이다. 최근 몇 년간 크게 늘어나고 있는 스타트업의 해외이전(플립) 사례들 상당수가 우리나라의 단단하고 촘촘한 규제로 인한 것이다. 인공지능(AI) 분야에서도 국내 벤처기업들이 글로벌 기업들에 비해 비대칭적인 규제에 묶여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가 크다.
이런 가운데 공정거래위원회와 국회가 플랫폼에 대한 다양한 규제를 시도하고 있는 것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최근 공정위가 사전지정 제도를 포함한 플랫폼법의 입법을 중단하기로 했지만, 지난 9일 공정위가 발표한 사후 규제 방식 역시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피해 가기 어렵다. 공교롭게도 지금 발표된 방안에 따르면 구글,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배달의민족과 같은 플랫폼은 모두 규제 대상에서 빠지게 된다.
그러나 이런 반대의 목소리가 플랫폼 기업을 규제의 진공 상태에 두자는 주장으로 읽혀서는 안 된다. 이미 존재하는 규제의 틀을 충분히 활용하되, 그래도 해결되지 못하는 문제들에 대해 적절한 규율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세계 기준에 크게 벗어나는 규제가 국내 벤처기업들의 글로벌 경쟁을 제한하게 되거나, 최근 발생한 티몬·위메프 사태에 자극돼 현실과 동떨어진 강한 규제가 만들어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중국이 3년 전 도입한 디지털 플랫폼 규제가 중국의 플랫폼 기업과 이로부터 파생되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크게 위축시킨 사례도 있다. 우리나라는 중국에 비해 훨씬 더 글로벌 경쟁에 노출돼 있다. 따라서 국내 사업자들을 비대칭적으로 옭아매는 규제는 자칫 국내 플랫폼들과 이를 둘러싼 벤처 스타트업 생태계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국내 플랫폼 사업자들은 글로벌 경쟁자들에게 점유율을 크게 잠식당하는 추세다. 소비자의 권익과 우리 벤처 스타트업 생태계의 성장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추구하려면, 최근 작동하기 시작한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과 같은 플랫폼 규제가 과연 시장에 어떤 변화를 낳는지 살펴보고, 충분한 사회적 숙의 과정을 거치면서 규제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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