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지원을 받는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1인자 하산 나스랄라가 이스라엘 측 공습으로 사망했다. 이란을 중심으로 한 ‘저항의 축’은 일제히 보복을 다짐했고, 이스라엘은 레바논에서 지상전 태세까지 갖추며 공격 의지를 꺾지 않았다. 국제사회가 확전을 막기 위한 외교적 해결책을 촉구하는 가운데 미국은 중동에 병력 증파를 검토하고 있다.
28일(현지시간) 로이터,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이날 성명을 통해 “전날 헤즈볼라 지휘부 회의가 열린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를 공습해 헤즈볼라 최고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의 사망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헤즈볼라도 성명에서 “약 30년간 이끌었던 헤즈볼라의 수장 나스랄라가 위대한 불멸의 순교자 동지들에게 합류했다”며 그의 사망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면서 “가자지구와 팔레스타인을 지원하고 레바논과 레바논인들을 지키기 위해 적을 상대로 성전을 계속하겠다”고 보복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는 “레바논과 자랑스러운 헤즈볼라 지원에 나서는 것은 모든 무슬림의 의무”라며 “나스랄라의 피는 복수 없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7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최고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 암살과 이스라엘-헤즈볼라 교전 격화에도 이스라엘과 충돌 시 미국 측 개입을 우려해 직접 대응을 꺼리던 이란이 헤즈볼라에 대한 전면 지원을 선언한 것이다.
이스라엘군의 ‘나스랄라 제거’ 작전에는 공군 69비행대대 전투기들이 투입돼 2000파운드(907㎏)급 BLU-109 등 폭탄 약 100개가 쏟아진 것으로 알려졌다. BLU-109는 약 2m 두께 콘크리트 벽도 뚫을 수 있는 초대형 폭탄으로, 일명 ‘벙커버스터’로 불린다. 이번 공습으로 헤즈볼라 남부전선 사령관 알리 카르키 등 일부 지휘부도 사망했다고 이스라엘군은 발표했다. 압바스 닐포루샨 이란혁명수비대(IRGC) 작전부사령관도 나스랄라와 함께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레바논 보건부는 밤사이 공습으로 민간인을 포함해 모두 33명이 사망하고 195명이 부상했다고 확인했다. 이스라엘 공습 이후 현재까지 레바논의 누적 사망자는 모두 1030명, 부상자는 6352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공습을 벌인 이스라엘은 레바논 북부에서 지상전 태세에 돌입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현지 소식통을 인용해 “이스라엘군이 지상전에 대비해 레바논과 국경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영상 성명을 통해 “아직 과업은 끝나지 않았다”며 레바논의 잔존 헤즈볼라 세력을 향한 군사적 공세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재차 확인했다.
서방 “충돌 자제·즉각 휴전” 촉구···미국, 중동 병력 증파 검토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공방전에 이란이 끼어들면 확전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미 국방부가 중동에 미군 배치를 증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NBC는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나스랄라 사후 이란 및 헤즈볼라의 가능한 움직임에 대비해 역내에 미군 배치를 늘리는 방안에 대한 보고를 청취했다고 전했다. 오스틴 장관은 이들 복수의 방안 가운데 일부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및 안보 당국자들과 논의했지만 최종 결정은 내려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은 중동에 4만명의 병력을 배치 중이다.
서방국들은 이스라엘-헤즈볼라의 충돌 자제와 즉각 휴전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탈리아 정부는 성명에서 “분쟁 당사자 간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 모든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필요성을 확인한다”고 했고, 프랑스 외무부도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을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하며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적 행동을 규탄한다”고 밝혔다.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도 ARD 방송과 인터뷰에서 나스랄라 사망 이후 “매우 위험한 상황이 레바논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며 “이는 이스라엘 안보 이익에도 절대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빌랄 사브 연구원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무력 충돌 격화는 그 뿌리에 이스라엘과 이란의 의지 대결이 자리 잡고 있다"며 이스라엘이 하마스, 헤즈볼라 등 이란의 대리 세력 등을 하나씩 제거한다 하더라도 둘 다 모두 이 싸움에서 승리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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