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돌아온 사명대사 친필 유묵…4일부터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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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제 기자
입력 2024-10-03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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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간 일본에 있었던 사명대사(1544~1610)의 친필 유묵이 국내로 돌아와 4일부터 대중에 공개된다.

    성보박물관은 "사명대사께서 1605년 임란 직후 대일(對日) 강화 사절로 일본 교토에 갔을 때 일본 승려에게 써 준 글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토대로 이 유묵이 사명대사의 친필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나 아직 국가기관 등이나 공적인 위원회의 판단을 받은 상태는 아니며 향후에 국가문화 유산 등록을 신청해 필요한 절차를 거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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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정사 성보박물관 소장…가로 30㎝, 세로 120㎝ 정도 크기

월정사 성보박물관이 사명대사 유묵이라며 공개한 사진 사진연합뉴스
월정사 성보박물관이 사명대사 유묵이라며 공개한 사진 [사진=연합뉴스]


그간 일본에 있었던 사명대사(1544~1610)의 친필 유묵이 국내로 돌아와 4일부터 대중에 공개된다.

월정사 성보박물관은 3일 한 독지가의 기증으로 사명대사의 유묵을 소장하게 됐다고 전했다.

유묵은 가로 30㎝, 세로 120㎝ 정도의 크기로, 세로 방향으로 길게 표구된 종이 중앙에 '불심종조달마원각대사'(佛心宗祖達麽圓覺大師)라고 적혀 있다.

성보박물관은 불심종은 선종을, 조(祖)는 조사(祖師)를 가리키며 원각대사는 당(唐) 대종(代宗)이 달마대사에게 올린 추존(推尊) 시호(諡號)를 의미한다고 풀이했다.

오른쪽에는 작게 흘려 쓴 글자가 있다. 성보박물관은 '만력을사춘 이보제 남유일본 이시구해사 부득사 감이서지'(萬曆乙巳春以普濟南遊日本以是求楷寫不得辭敢以書之)라고 기재한 것이며 '만력 을사년(1605년) 봄 널리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남쪽 일본에 와 있을 때 해서(楷書)로 써달라고 요구하길래 사양할 수 없어서 감히 쓴다'는 취지로 글을 쓴 경위를 설명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왼쪽에는 '경산 37대손 사명사문 송운운운'(徑山三十七代孫泗溟沙門松雲云云)이라고 적혀 있으며 이는 붉은 도장과 함께 낙관에 해당한다고 박물관 측은 덧붙였다.

성보박물관은 "사명대사께서 1605년 임란 직후 대일(對日) 강화 사절로 일본 교토에 갔을 때 일본 승려에게 써 준 글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박물관 관계자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토대로 이 유묵이 사명대사의 친필이라고 판단하고 있으나 아직 국가기관 등이나 공적인 위원회의 판단을 받은 상태는 아니며 향후에 국가문화 유산 등록을 신청해 필요한 절차를 거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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