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8일 법무부 국감에서 노태우 비자금 관련 명목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 배우자인 김옥숙 여사와 딸 노소영 관장, 아들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노 관장은 최 회장과 이혼 및 재산분할 소송 중 '선경(SK 전신) 300억' 등 구체적 실명과 액수가 적힌 904억원 상당 비자금 조성 내역인 '김옥숙 메모'를 제출한 바 있다.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 5월 이를 주요 근거로 재산 형성 과정에서 노 관장 기여도를 인정하며 최 회장이 재산분할로 1조3808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에 정치권에선 김옥숙 메모에 담긴 자금들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노태우 비자금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국감에서 관련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정치권에선 김옥숙 메모를 놓고 30여 년 만에 노태우 비자금에 대한 전모를 밝힐 '스모킹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메모에는 1998년 4월과 1999년 2월 김 여사가 자필로 작성한 '맡긴 돈' 리스트가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동생인 노재우씨 251억원, 선경 300억원 등 구체적인 실명과 액수도 거론되고 있다.
노 관장은 이 메모를 근거로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이 선경에 흘러들었다고 주장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신빙성 있다고 보고 재산분할 액수를 1심 655억원에서 20배가량 크게 늘렸다. 다만 SK그룹이 해당 자금이 유입된 적 없다고 반박하면서 사실관계에 대한 양측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노태우 비자금은 그동안 대법 판결로 확정된 추징금을 모두 완납한 것으로 세간에 인식되어 왔다. 노 전 대통령은 46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1997년 대법원에서 징역 17년과 함께 추징금 2628억9600만원을 선고받았고, 16년이 지난 2013년 이를 완납했다. 이 과정에서 추징금으로 낼 돈이 없다며 동생인 노씨 및 사돈인 신동방그룹 측과도 소송전을 벌인 바 있다.
국감에선 904억원 메모 내용에 대한 진위와 자금 출처에 대한 질문이 집중적으로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2021년 노 전 대통령 사망 후 이를 상속 신고하지 않았으면 탈세가 될 수 있고 공소시효도 아직 남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재산 공개를 하면서 연희동 집과 예금 등이 전부라고 말한 바 있다. 1995년 비자금 수사 당시 '안방비자금' 의혹이 국회·언론을 중심으로 제기됐으나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추징 과정에서 대검 중앙수사부는 12억원이 입금된 김 여사 예금계좌 2개를 추가로 발견했는데, 김 여사가 마지못해 추징에 동의하면서 검찰도 자금 출처를 따로 조사하지는 않았다.
공시 등에 따르면 동아시아문화센터 자산 대부분은 김 여사 기부금으로 형성됐다. 김 여사가 노 전 대통령 사망 전인 2020년 95억원을 기부하고 사후 추가 출연이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재단을 상속·증여세 회피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만약 재단을 활용해 비자금을 세탁했다면 당사자들이 법죄수익은닉규제법으로도 처벌받을 수 있다.
이 밖에 국감에선 페이퍼 컴퍼니 설립 등 노 원장 역외자금 의혹에 대한 질의도 함께 이뤄질 전망이다.
한편 노 관장과 노 원장이 국감 출석 요구를 고의로 회피한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법사위는 이들에 대한 동행명령을 검토 중이다. 법사위 관계자에 따르면 노 관장 남매는 국감을 하루 앞둔 7일까지 휴대전화를 꺼두는 등 국회 연락을 피하고 있다. 국회 조사관이 증인 출석 요구서를 들고 이들 자택과 회사를 방문했지만 결국 전달하지 못했고, 우편으로 보낸 출석 요구서는 반송됐다. 김 여사는 건강상 이유를 들며 불출석 사유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법사위는 이들이 아무 회신 없이 국감에 불출석하면 의결을 통해 동행명령장을 발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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