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춘 칼럼] 노동력 부족, 일본은 어떻게 대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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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입력 2024-10-07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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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방의 한 산업단지 주택가의 휴일 풍경이 한가롭고 평화롭다. 수많은 제조공장이 밀집한 산업단지임에도 불구하고 근처 주택가에서는 사람들의 왕래에 활기가 없다. 왕래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내국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다. 희한한 일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고 외국인들만이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깔아 놓고 이야기꽃을 피운다. 공업단지에서 약간 벗어난 시골 마을로 들어가면 이러한 현상은 더 심해진다. 오가는 왕래객은 드문데 가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젊은 사람들이 눈에 띈다. 대부분은 외국인이다. 농촌 마을의 일손, 또는 산업단지 일손의 많은 부분이 외국인에 의해 메꾸어져 있음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필자는 읍내의 한 가게에 찾아가 가게 주인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필요로 하는 제품이 없어서 수제로 이를 제작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주인의 대답은 간단명료하였다. 이제는 그럴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주인을 포함하여 그 업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모두 재봉틀을 끼고 이리저리 돌려대며 손님이 원하던 제품을 이렇게도 만들고 저렇게도 만들며 이른바 수제품 제작 서비스를 제공했었다 한다. 그러나 이제는 눈도 침침하고 손놀림도 예전 같지 않다. 공장에서 대량으로 나오는 제품 이외에는 이제 제작도 판매도 하지 않는다. 그럴 사람들이 이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노동력 부족 현상은 우리나라의 앞으로 모습을 보여주는 좋은 재료이다. 일본 내각부가 2024년 8월에 발표한 '연차경제재정보고'에서는 노동력 부족 문제를 별도의 장에서 상세하게 다루었다. 이 별도 장의 제목에는 '노동력 부족에 의한 성장제약'이라는 표현이 들어 있다. 후생노동성이 2024년 9월에 발간한 '노동경제분석' 보고서에서도 '노동력 부족에 대한 대응'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 보고서는 별도의 장이 아니라 금년 보고서 전체를 노동력 부족 문제를 다루는 데 할애하고 있다. 일본 경제사회에서 노동력 부족이 단순히 특정 지역이나 특정 섹터의 문제를 넘어서 일본 경제의 거시적 성과를 제약할 만큼 거대한 문제가 되었음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현재 노동력 부족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가? 내각부 보고서에서는 현재 “역사적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 이 진단의 근거로 일본은행 단칸 고용인원판단 DI가 제시되었다. 이 지표는 고용인원이 과잉, 적정, 부족인지를 묻고 과잉이라 응답한 비율에서 부족이라 응답한 비율을 차감한 수치이다. 2024년 6월 현재 전규모/전산업 지표는 –35%포인트로 부족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매우 높았다. 그리고 이 수치는 마이너스 폭이 확대되어 과거 노동력 부족이 가장 심각했던 1991년 2월의 –46%포인트에 근접해지고 있다. 특히 비제조업의 해당 수치는 –45%포인트로 1991년 2월의 –47%에 거의 근접했다. 비제조업 노동력 부족은 이미 과거 가장 심각했던 역사적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과거 추세에 비추어볼 때 조만간 이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1991년의 노동력 부족이 노동수요가 너무 왕성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면 최근의 노동력 부족은 이와 달리 노동 공급이 부족하여 발생한다는 차이가 있다.

노동력 부족은 대기업/중견기업(-28%포인트)보다는 중소기업(-37%포인트)에서 더 심하며 제조업(-21%포인트)보다는 비제조업(-45%포인트)에서 더 심하다. 특히 건설/부동산, 소매, 숙박/음식 서비스, 도매, 대 사업 서비스, 정보통신 업종에서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종별로는 전문/기술직, 영업/판매직, 사무직 순으로 노동력 부족이 심하다. 연령별로는 청년층(~34), 중년층(35~54), 고령층(55~)의 순으로 노동력 부족이 심하다. 5년 전에 비해 중년층의 부족감이 가장 높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기업의 규모나 업종, 그리고 직종이나 연령대를 불문하고 노동력 부족은 더 심해지고 있다. 그 결과 일본 기업의 인력 채용에는 많은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는데 무엇보다도 채용공고를 내도 아예 응모자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애로였다. 응모자가 있어도 원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거나 어렵게 채용해도 단기간에 퇴사하는 사례가 늘었다고 한다. 이는 기업 간 인재 획득 경쟁이 격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상황에 직면한 일본 기업들은 과연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좋은 인재를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사원에 대한 대우를 개선해야만 한다. 실제로 내각부가 실시한 설문조사(노동력 부족 대응에 관한 기업의식 조사)에서는 기존 종업원 대우 개선이 기업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책으로 밝혀졌다. 임금인상은 그 결과이다. 2024년에는 지난 33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임금인상이 이루어졌는데 그 배경에는 인재 확보를 위한 기업들의 격심한 경쟁이 있음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정년 연장이나 정년 후 재고용 확대도 인재 확보의 중요한 수단으로 제시되었다. 한편 대기업은 신규졸업자나 경력자 채용을 인재 확보의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하는 반면 중소기업은 기존 종업원에 대한 처우 개선을 중시하고 있어서 인재 확보를 위한 기업 간 경쟁력이 확연히 차이가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2024년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의 임금인상폭이 더 높게 나타났는데 이는 중소기업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임금을 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려 있음을 시사한다.

일본 정부 차원에서는 어떤 정책을 밀고 있는가? 대책의 방향은 첫째, 기존의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 둘째, 노동생산성을 높여 최소의 노동 투입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두는 것, 셋째, 노동을 절약할 수 있는 자본이나 기술을 도입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 수단으로 해외에서 노동력을 조달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일본은 이미 기존 노동력의 활용을 확대해 왔다. 고령자와 여성의 노동 참여를 높이는 정책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정책은 점차 한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여성과 고령자의 노동 참여율이 높아지면서 노동력 풀이 고갈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아직 노동시장에 참가하고 있지 않은 여성은 노동시장에 참가하여 일하고 있는 여성에 비해 나이가 많고 배우자의 급여 등 소득수준이 더 높은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여성들을 노동시장에 끌어들여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더 높은 임금을 주어야 한다. 즉 유보임금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다. 고령자의 재고용 연령은 이미 70세까지 연장하였다. 이를 더 연장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려울 수 있다.

일본은 이제 노동의 양적 투입보다는 질적 수준의 개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이 이러한 정책에서 획기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는 아직 볼 수 없다.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한 노동시장 개혁은 여전히 미흡하며 노동력 절감을 위한 기술개발이나 자본투자 또한 본격화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이 최근 공을 들이고 있는 분야는 외국인 노동력의 활용 촉진이다. 우리나라는 노동력 부족의 초입 단계에 와 있다. 기존 노동력의 양적 활용 확대라는 정책 수단도 남아 있다. 그렇다고 여유가 있지는 않다. 이미 들이닥친 노동력 부족 문제, 이제는 본격적으로 대책을 세워야 할 때이다. 일본의 성공과 실패 사례를 철저히 분석해야 하는 이유이다.


정성춘 선임연구위원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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