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과 영풍·MBK 사이의 경영권 분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고려아연이 자기주식 공개매수를 통해 경영권을 방어하려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자기주식 취득은 현행법 하에서 적대적 M&A에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수단이다. 자기주식 취득은 신호효과와 유통주식 감소를 통해 주가를 상승시키고, 기존 주주의 의결권 비율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이는 적대적 M&A에 의한 경영권 찬탈을 직접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다. 자기주식 취득은 엄격한 절차를 따라야 하기 때문에 단순한 경영권 방어 목적만으로 선택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럼에도 고려아연이 자기주식 공개매수를 선택한 배경을 보면 그들의 위기감이 엿보인다.
고려아연의 자기주식 취득은 시작부터 난항을 겪었다. MBK 측은 지난달 19일 최윤범 회장 등을 상대로 자기주식 취득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쟁점은 두 가지였다. 첫째, 영풍과 고려아연이 특별관계자에 해당해 자본시장법 제140조의 적용을 받는지, 둘째, 자기주식 취득가가 주식의 실질 가치보다 높아 이사들이 의무를 위반했는지가 쟁점이었다. 지난 2일 법원은 MBK 측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고려아연의 자기주식 취득에 대한 걸림돌이 일단락된 듯했다.
하지만 MBK 측은 같은 날 고려아연의 자기주식 취득 목적의 공개매수를 금지해 달라는 별도의 가처분 신청을 추가로 제기했다. 이번에도 MBK 측은 고려아연 이사회가 회사와 주주 이익을 해치며 배임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종전의 가처분 신청이 기각된 이유와 유사하게, 이번 신청도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 배임 여부를 판단할 때 자기주식을 실질 가치보다 높은 가격으로 취득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될 수 있으나, 이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MBK 스스로 공개매수 가격을 상향 조정한 사실만 보더라도, 현시점에서 고려아연의 적정 주가를 산정하기 어려움을 보여준다.
고려아연의 자기주식 취득을 단순히 부정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경영권 방어가 특정인을 위한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 고려아연이 자기주식을 취득한 후 전량 소각하겠다는 계획은 궁극적으로 주주환원 정책으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이를 경영권 방어라는 관점에만 한정해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고려아연과 MBK 간의 경영권 분쟁에는 이례적으로 국회의원, 지자체, 대학, 시민단체 등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는 고려아연의 현 경영진이 MBK 측에 비해 회사와 주주의 이익에 더 부합하는 평가를 받고 있음을 시사한다. 만약 현 경영진이 지역경제나 국가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국민들이 경영권 방어에 힘을 보태지 않았을 것이다. 회사와 주주의 이익이라는 측면에서 MBK로의 경영권 이양을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확실히 형성돼 있다. 따라서 고려아연의 자기주식 취득은 단순히 경영권 방어가 아닌, 회사와 주주의 이익을 지키고, 더 나아가 지역경제와 국가 경제의 관점에서 시간을 벌고 정보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2021년 아시아개발이 도쿄기계제작소를 대상으로 한 공개매수 사건에서 흥미로운 법적 판결이 나왔다. 도쿄기계제작소는 아시아개발과 그 관계자를 제외한 주주들의 의결권 과반수로 경영권 방어책 도입을 결의한 주주의사확인총회를 개최했고, 법원은 이를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아시아개발의 배후에 중국 자본이 있었다는 점과 도쿄기계제작소가 언론 관련 기업이라는 점이 고려된 결과였다.
고려아연과 MBK 간의 경영권 분쟁도 단순한 회사 이익 문제를 넘어 기술유출과 지역경제 침체 등 다양한 요소들이 얽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려아연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회사와 주주의 이익뿐만 아니라 지역사회의 이해관계도 고려한 최선의 조치라 할 수 있다. 소각을 예정한 자기주식 공개매수를 배임 문제로만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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