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용의 비욘드 ESG] 초고속 스피드로 지구를 공격하는 울트라패스트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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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입력 2024-10-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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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미국의 제47대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왔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와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중에서 어느 쪽도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혼전을 거듭하고 있다. 다음달 5일 백악관의 주인이 가려지는 이번 미 대선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지난 7월 1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일어난 트럼프 암살 시도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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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티셔츠] 


■2시간 9분=이 사건이 트럼프 승리의 발판이 됐는지는 조금 더 기다리면 확인이 되겠지만, 저격범이 발사한 총알이 엉뚱한 사람을 거꾸러뜨린 건 확인됐다. 재선을 노리던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트럼프 피격 이후 대선 후보를 사퇴했으니 말이다. 당시 잠시 잦아든 상태인 후보 사퇴 요구는 이 사건으로 민주당이 대선 패배를 예감하면서 다시 본격화했고, 부통령 후보 해리스가 바통을 넘겨받는 것으로 귀결했다.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트럼프가 총격을 받은 사건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트럼프에게 매우 소중한 사진을 남겼다. 가장 유명한 피격 현장 사진은, 귀에 피를 흘리며 경호원들과 대피하는 와중에 트럼프가 주먹을 치켜든 사진. 퓰리처상을 수상한 베테랑 사진기자 AP 에반 부치가 트럼프가 성조기를 배경으로 주먹을 불끈 쥔 손을 치켜든 모습을 포착해 카메라 담았다.
사진이 너무 극적이었다. 창해일속에 맞먹는 확률로 생명을 건진 데다 준비한 듯 세기의 사진까지 건졌으니 자작극이라는 등 음모론이 터져 나올 만했다. 당시 쏟아진 많은 기사 가운데 ‘2시간 9분’이 제목에 포함된 기사가 개인적으로는 관심을 끌었다.
‘2시간 9분’은 트럼프 피격 사진이 공개되고 이 사진이 들어간 ‘트럼프 티셔츠’가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를 시작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현지시간으로 AP가 사진을 전 세계에 타전한 시간은 이날 오후 6시 31분. 중국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에 ‘트럼프 티셔츠’가 올라온 시간은 같은 날 오후 8시 40분이었다.
티셔츠 판매자는 “총격 사건을 보자마자 광고를 올렸고 아직 티셔츠를 인쇄하지도 않았는데 3시간 만에 미국과 중국에서 2000개 이상 주문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의 공장은 베이징 근교인 허베이성에 있다. 새로운 티셔츠를 만들려면 이미지를 내려받아 인쇄하기만 하면 된다.
가장 빠른 곳은 중국이었지만 이후 봇물 터지듯 피격 기념품이 쏟아졌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7월 15일(현지시간) 수공예품 전문 온라인 쇼핑몰 엣시(Etsy)에서 ‘도널드 트럼프 암살’로 검색하자 포스터, 티셔츠, 모자 등 1000개 이상 상품이 나왔다. 한 판매자는 엣시에서 파는 16달러짜리 티셔츠를 엑스(X·옛 트위터)에서 홍보하면서 “탄핵은 실패했고, 그를 감옥에 넣는 것도 실패했으며, 살해 시도도 실패했다. 그를 이길 수 없다. 이 상품의 가격처럼!”이라고 적었다. 판매자들은 ‘방탄 트럼프 2024’, ‘총격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들뿐’, ‘스쳤지만 당황하지 않는다’ 등의 문구를 넣은 ‘트럼프 티셔츠’를 판매 중이다.
일부 상품은 이 사건을 계기로 트럼프의 재선을 도우려는 지지자들이 판매한다. 보수 유튜버인 호지 쌍둥이는 엑스에 티셔츠 판매처를 공유하며 “이 티셔츠 판매 수익의 100%를 트럼프 선거운동에 기부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다수는 중국 판매업자들의 돈벌이 기회로 활용되는 듯하다.

■빨라도 너무 빠른=‘2시간 9분’에서 언론이나 정치권이 전혀 신경 쓰지 않은 것은 패스트패션의 폐해다. 요즘은 빨라도 너무 빠르다 보니 울트라패스트패션이란 말을 쓴다. 전세계에 걸친 폐해 또한 울트라급으로 커지고 있다.
신상품을 빠르게 만들어 싼값에 팔고 소비자에게 즉시 보내주는 패션업계 트렌드 울트라패스트패션의 문제는 쉽게 산 만큼 쉽게 버린다는 것이다. 울트라패스트패션의 뒤편엔 저임금과 환경오염, 온실가스 배출이 도사리고, 소비자를 거치며 쓰레기 문제로 이어진다.
초고속 패션을 무기로 글로벌 의류 시장을 위협하는 브랜드는 아소스(ASOS), 부후(Boohoo), 미스가이드(Missguided) 등으로 초고속 인터넷으로 하나가 된 세상을 공략하고 있다, 디자인에서 매장에 놓이기까지 오프라인 공정이 2~4주 이내에 이루어진다. 패스트패션의 기존 강자 자라와 H&M에서는 이 과정이 통상 5주였다. 의류업계의 전통적인 제품 생산 주기는 6~9개월이었다. 부후와 아소스는 일주일 단위로 수백 개에서 수천 개 제품을 웹사이트에 선보인다. 울트라패스트패션이란 용어는 아소스, 부후 등이 패스트패션보다 더 빨리 옷을 출시하는 현상을 설명하며 등장했다.
울트라패스트패션의 최강자는 중국의 ‘쉬인(SHEIN)’이다. 쉬인은 2021년 16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한 데 이어 파죽지세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그전까지 8년 연속 매년 100% 이상 성장했다. 쉬인이 글로벌 실적을 공개하진 않지만, 업계나 분석 기관은 올해 매출이 5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때 ‘짝퉁 자라’로 불린 쉬인은 경쟁사인 미스가이드를 인수하는 등 이제 이 업계의 공룡으로 성장하는 중이다.
쉬인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시장에 출시된 의류 패턴을 분석하고 분석 결과를 신속하게 디자인에 반영한다. 디자인에서 생산까지 기간을 5~7일로 줄여 다른 울트라패스트패션 기업들을 눌렀다. 하루에 내놓는 신상품이 1000~6000개로, 물량으로 압도한다. SNS 플랫폼을 공략한 마케팅이 세계 신세대를 파고든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인플루언서에게 옷을 입혀서, 인스타그램ㆍ틱톡 등에 노출하면 일정액을 주는 식으로 젊은 세대에 다가갔다. 기존 오프라인 매장이나 온라인 쇼핑몰보다 인플루언서ㆍ블로거 등과의 관계를 기반으로 하는 뉴 미디어 채널을 선호하는 소비자 경향을 쉬인이 파악해서 잘 활용한 사례다.
코로나19 유행 시기에 전세계적으로 소비가 위축됐으나 온라인 쇼핑거래액은 기존 수준을 유지하거나 전보다 늘었다. 울트라패스트패션 브랜드가 급성장한 계기로 코로나19가 꼽힌다. 팬데믹 시기에 오프라인 접근성이 떨어지자 온라인 비즈니스 기반이 부족한 패스트패션 기업들이 타격을 입은 반면 신흥 울트라패스트패션 기업들은 날개를 달았다.

■울트라패스트패션의 짙은 그늘=쉬인이 지난해 영국에서 올린 매출은 우리 돈으로 3조원에 육박하는 15억5000만파운드였다. 쉬인이 영국에서 상장을 준비하면서 제출한 서류를 통해 밝혀졌다. 쉬인은 지난 6월 영국 증권당국에 기업공개(IPO)를 신청했다. 당초 미국 뉴욕 증시에서 상장을 추진했지만, 여의치 않다고 보고 런던 증시로 방향을 튼 것으로 분석된다.
쉬인은 앞서 2022년 뉴욕증시에 상장하려다 실패했다. 당시에 IPO에 필요한 ESG 기준을 쉬인이 충족하지 못한다는 점이 지적됐다.
온실가스만 해도 2021년 한 해에만 울트라패스트패션을 작동하며 연간 약 630만 톤을 배출했다. 상장을 준비하며 쉬인은 2030년까지 직간접적인 탄소 배출량을 각각 42%, 25% 감축하겠다고 했지만 증권당국은 실현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보았다. 저임금 노동과 상표권 침해, 디자인 표절 등 상장을 앞두고 여러 비판이 봇물 터지듯 나왔고 상장은 실패했다.
패스트패션 브랜드보다 더 저렴하게 옷을 공급하는 울트라패스트패션의 등장은 소비자의 의류 과소비를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티셔츠’만 해도 지금 인터넷에서 2000원대를 포함하여 대부분 1만원 미만에서 구매할 수 있다. 많은 울트라패스트패션 쇼핑몰의 사정이 대동소이하다. 소비자가 싼 가격에 혹해 옷을 쉽게 사고 또 쉽게 버리는 풍조를 만연하게 할 수 있다.
중국에서 유행한 ‘쉬인 하울’이 이런 풍조를 반영한다. ‘쉬인 하울’은 싼 옷을 사서 상품평을 올리는 일종의 인증사진 놀이였다. 실제로 착용할 의도에서가 아니라 SNS에 올릴 목적으로 옷을 구매하는 행태는 자원을 낭비하고 온실가스와 환경 오염 문제를 일으킨다. 싼값에 옷을 만들려다 보니 울트라패스트패션 원단은 대부분 ‘폴리에스터’다. 공급가는 싸지만 사실상 플라스틱인 폴리에스터는 제조 과정에서 면섬유의 세 배에 달하는 탄소를 배출한다.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의류를 세탁할 때 미세플라스틱 조각이 떨어져 나와 바다로 흘러 들어가서는 해양을 오염하고 종국에 인간에게 다시 돌아온다는 점이다.
세탁기를 통한 미세플라스틱 생성과 바다 유입이 심각한 문제이긴 하지만, 버려진 폴리에스터 의류를 통해 바다로 직접 유입되는 미세플라스틱도 어마어마하다. 의류 쓰레기를 수입하는 가나의 수도 아크라 인근 해안은 쓰레기 해안으로 변했다. 아크라 비슷한 곳이 세계적으로 많다.
한국폐기물자원순환학회의 연구(최연석 외, 2022)에 따르면 지구 전체에서 생산되는 의류는 매년 약 1억 톤으로 그 중 약 15%만 재활용된다. 나머지 75%는 소각 또는 매립 말고 처리할 방법이 없다.
버려지는 옷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판매되지 않는 옷이 존재해, 전 세계에서 만들어진 의류의 약 30%가 판매되지 않는다는 분석이 있다. 무게를 벌로 환산하여 쉬인 같은 울프라패스트패션을 포함하여 세계에서 매년 생산되는 1000억 벌의 옷 중 약 3분의 1이 같은 해에 버려진다. 한 명이 1년에 버리는 옷이 30kg 정도라는 추정치가 존재한다.
미판매 재고는 업사이클링이나 기부로 활용되지 않고 앞서 살펴보았듯 광범위하게 소각된다. 멀쩡한 옷을 태우는 이유는 돈 때문이다. 소각으로 회계상 손실로 처리하여 세금을 줄이고 창고에 보관하는 비용을 아낄 수 있다. 과거 미국 곡물 메이저가 과잉생산한 밀과 옥수수를 바다에다 그대로 버린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제3세계에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주려면 보관과 운송 등 추가 비용이 발생하기에 그대로 해양에 투기한 모습과 겹쳐진다.
심각한 자원낭비와 함께 과거엔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걱정거리가 등장했는데, 온실가스이다. 생산하는 데에 막대한 물을 쓰고 온실가스를 발생시킨 다음 태우고 묻으며 추가로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며 나아가 미세플라스틱을 지구에 방출한다. 의류산업의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최대 10%까지 추정되며 전세계 항공기, 선박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보다 많다. 미세플라스틱 발생원으로는 최대 3분의1로 보고 있어 인간이 입는 옷이 시간차로 부서져 몸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지난 3월 14일(현지시간) 프랑스 하원은 쉬인 등을 겨냥해 만장일치로 ‘패스트패션 제한법’을 가결했다. 내년에 패스트패션 업체에 환경 부담금으로 의류 제품당 5유로를 부과하고, 2030년까지 판매 가격의 절반을 넘지 않는 선에서 부담금을 10유로까지 인상할 수 있다. 이 업체들의 초저가 의류 판매 광고도 금지한다. ‘트럼프 티셔츠’로 기세를 올린 불량산업 (울트라)패스트패션에 어떤 식으로든 강력한 조정이 있어야 할 시점이다. 가치소비를 권장하는 소비자 의식만으로는 역부족인듯하다.
 
안치용 필자 주요 이력
△ESG연구소 소장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전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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