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업 19년 차. 어떤 분야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 1만시간이 필요하다고들 한다. 계산기를 두들겨보니 19년 동안 16만4000시간을 외식업에 쏟아부었다. 그렇다 보니 많은 이가 내게 F&B(식음료) 본질을 묻곤 한다.
과거 외식 시장을 돌아보면 대다수가 '먹고살기 위해'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 기술 기반 창업 형태보다는 보편적인 아이템으로 창업하는 이른바 생계형 창업이 일반적이었다. '남들보다 음식을 맛있게 하니까'라는 생각으로 외식업에 뛰어든 이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이에 과거에는 지금보다 진입 장벽이 낮은 장사 형태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요즘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를 계기로 미디어에 자주 오르내리는 셰프라는 직업도 대중에 알려진 지 얼마 안 됐다. 2005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시작으로 2007년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 2010년 드라마 파스타를 거치며 셰프, 바리스타라는 단어가 대중화됐으니 채 30년이 되지 않는 셈이다.
특히 F&B 사업이 단순히 음식만을 파는 행위가 아니라 여러 활동을 누리는 공간이자 문화로 받아들여진 것도 최근의 일이다. 1997년 한국에 진출한 스타벅스가 '공간' 마케팅을 앞세워 인테리어에 공을 들인 뒤로 소비자들은 'F&B=생계'가 아닌 그 이상의 가치를 부여했다. F&B 형태와 정의가 변화한 것이다.
그 뒤로 카페라는 공간은 여러 형태로 진화했다. 키즈 카페와 동물 체험 카페, 북 카페 등을 비롯해 스터디 카페 등 가짓수만 열 손가락을 넘을 정도다. 여기에 F&B 공간이 전시나 공연, 촬영과 같은 복합 문화 공간으로 사용되면서 F&B에서 '음식'이라는 글자는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 다시 말해 F&B가 꼭 음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장 환경이 커피·음식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게 바뀌면서 추가적인 기능들이 공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인테리어가 멋진 공간, 창밖 풍경이 좋은 곳, 음악이 좋은 장소 외에도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큰 면적을 가지고 있는 대형 매장,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공간까지 등장했다. F&B가 음식에서 하나의 문화로 확장한 셈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음료, 음식, 술을 비롯한 다양한 음식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사람들이 머무는 공간 안에 다양한 요소가 하나씩 채워지면서 메시지를 전달한다. 옅어진 음식이라는 글자 위로 '문화'가 새겨지는 셈이다.
이 같은 F&B 다양화는 개인 개성을 표현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매개체로 자리 잡고 있다.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표현할 수 있는 F&B 매장을 찾아 젊은 소비자들이 이동하고 또 소비한다는 뜻이다.
특히 젊은 소비층의 개성 표출은 소비재와 서비스 소비를 통해 이뤄지는 만큼 이 같은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즉 F&B 본질은 더 이상 음식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없다. 이제는 삶과 가치관을 표현하는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그만큼 과거 음식만을 떠올리던 F&B 사업의 의미도 가치도 예전과는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것을 넘어 오감을 만족시켜야 하는 수준으로까지 확대됐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일부 세대에만 나타나는 F&B 문화라고 표현하지만 현장에서 소비자들을 만나는 내게는 일부가 아닌 모든 세대의 트렌드로 보인다. 시니어 세대도 카페를 방문할 때 본인이 선호하는 맛부터 시작해 가게 인테리어와 분위기 등을 꼼꼼히 살펴 소비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F&B는 이제 음식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누군가 내게 F&B 본질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F&B가 단순히 음식만을 파는 사업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때 관련 산업이 더욱 성숙해지고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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