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길고 무더웠던 올여름이 지나고 어느새 차가운 공기가 우리들의 옷소매를 늘어뜨리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 덥기만 하던 날씨가 큰 일교차를 보이며 우리의 호흡기계를 어지럽게 자극하는 계절, 가을이 다가온 것이다.
요즘 들어 진료를 보다보면 일교차가 커지는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들어가는 시기에 걸린 감기로 인해 힘들어 하는 환자분들이 많아지고 있다. 가벼운 감기증상이 한 달, 두 달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며 지속돼 기침, 가래를 떨치지 못하고 심하게는 천명(喘鳴, 숨쉴 때 나는 색색거리는 소리)까지 달고 와서 괴로움을 호소하는 환자분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특히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이후 폐기관지의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있는 환자들이나, 노약자나 유아청소년기의 환자들은 쉽게 완전한 회복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증상만 보고 항히스타민제나 진해거담제들을 복용한다면 단기간의 호전만 보일 뿐 만성으로 진행되는 환자들은 이 약제들을 장기간 복용할지라도 큰 효과를 보기 힘든 경우가 많다.
먼저 감기는 다양한 바이러스에 의한 상부 호흡기계의 감염으로 인해 나타나는 급성 질환이다. 일반적으로 가을과 겨울철에 잘 나타나지만 냉방장치가 잘 되어있는 현대에 여름감기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감기의 증상은 재채기, 콧물, 가래, 미열, 두통 및 근육통 등 일반적인 증상들이 대부분이나 제때 올바른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에서는 2차 감염이나 만성질환으로 전변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감기 치료에는 기본적으로 항바이러스제와 해열제, 진해거담제 등 대증 치료를 통해 증상을 완화시켜 인체가 스스로 회복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치료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소청룡탕, 갈근탕, 은교산, 형개연교탕, 맥문동탕 등의 한약치료로 조금 더 근본적이고 효과적으로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도 있다.
감기나 인플루엔자 감염의 초기에는 오한(惡寒)과 오풍(惡風)이 있다면 체온을 상승시켜주는 약리를 가진 마황, 계지, 갈근 등의 약재가 들어간 소청룡탕, 갈근탕 등의 한약 복용을 통해 인체의 방어반응을 도와주며, 발한(發汗) 작용을 통해 감기 증상을 불러일으키는 풍한(風寒)의 사기를 제거 해주는 치료를 할 수 있다.
또 열성 전염병과 급성병 치료의 대표처방으로 알려져있는 은교산은 금은화와 연교 등 열을 내리고 염증을 해소해주는 약재들이 포함되어있어 청열해독(淸熱解毒)의 효능이 뛰어나 급성인후염, 편도선염에 효과적이다.
특히 올해 여름과 같이 강하고 오래 지속된 더위에 체력이 고갈된 환자들이 환절기 감기를 겪고 난 후 잘 낫지 않는 기침과 더불어 비위허약으로 인한 식욕부진, 소화불량, 설사나 변비 등의 증상을 보일 때, 필자는 보중익기탕춘방에 여름철 더위와 갈증, 발한, 해수 등의 증상을 해결해주는 생맥산(生脈散)이라는 처방을 합방해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중이다.
이 밖에도 감기로 인한 장기 지속형 건성기침에는 맥문동탕, 삼소음, 점조한 가래를 동반한 습성기침에 청폐탕 등 감기 후유증으로 인한 여러가지 폐, 기관지 증상에는 그에 맞는 다양한 한약처방이 마련돼 있다.
한의사는 증상만 보고 약을 처방하지 않는다. 한의학 진단의 네 가지 강령인 망문문절(望聞問切)을 통해 환자 개개인의 히스토리와 성상, 용모, 체형에 따른 체질 및 혀와 맥의 형태, 심지어는 계절과 기후까지 고려한 처방을 통해 가벼운 감기도 만성 질환으로 나아가지 않게 노력한다. 감기는 쉽게 낫는 질환일 수도 있으나 누군가에게는 치명적이고 오래 낫지 않는 어려운 질환이기도 하다. 한약치료는 환절기 감기 후유증의 효과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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