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일을 넘어 스스로가 브랜드가 되어 가고 있는 김규림 마케터. 그는 문구를 좋아해서 스스로를 문구인이라고 소개하지만 작가이자 제품 기획자, 두낫띵 클럽 창립 맴버, 파워블로거 등 그동안 해온 일들이 엄청나게 많다. 꾸준히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와 자신만의 일을 만들어 영역을 확장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배달의민족 마케터, 뉴믹스커피 디렉터, 작가, 제품 기획자, 두낫띵클럽 창립 멤버, 파워블로거까지 해온 일들이 많지만 문구인이라는 소개가 인상깊었다. 문구인은 뭔가
-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스스로를 소개할 수는 없을까 라는 생각을 하던 중에 근영사라는 굉장히 오래된 문구 브랜드 홈페이지를 보다가 대표님 소개에 "전국에 계신 문구인 여러분"이라고 써있는 걸 보면서 굉장히 흥미로웠다. 그때 당시에 처음 듣는 단어이기도 했는데 '문구인이란 뭘까'에 대해 궁금해졌고 흔하지는 않지만 나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단어같았다. 회사에 다니면서 '김규림 주임'이라는 직책으로 불릴 수도 있겠지만 회사를 그만두면 사라지는 직책이다 보니까 자연인 김규림을 나타낼 수 있는 단어를 고민하던 와중에 문구인이라는 단어를 만나게 됐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인스타그램 프로필을 '문구인'으로 바꿨다.
회사의 일이 아닌 나만의 것을 가지고 확장시켜 나간 방법이 궁금하다
-좋아하는 게 자잘하게 많은데 왜 좋아하는지를 꼭 알고 싶더라. 내가 좋아서 좋아하는 건지, 남에게 영향을 받아서 좋아하는 건지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다 보니까 좋아하는 계기가 있었다. '이게 내꺼라서 좋아하는구나'라는 결론이 내려졌을 때 확신을 갖는 편이고 그러면서 더욱 깊게 좋아하는 노력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문구도 혼자 좋아할 수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세상에 선언을 하면서 선언으로부터 새로운 일들이 파생되는 경험을 여러번 했다. 문구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문구인이라는 걸 선언으로 하고 나서는 주변 사람들이 문구를 보면 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앞으로도 좋아하는 것들을 시끄럽게 떠들고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좋아하는 것들을 더 좋아하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같은 걸 좋아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더라. 문구인을 통해서 그런 경험을 하고 나니까 더욱 시끄럽게 떠들고 다니게 됐다.
-가죽류를 좋아한다. 가죽류는 오래될수록 나의 삶에 착 붙는 물건인데 속지를 갈아 끼우면서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항상 가지고 다니는 것들은 클래식한 것들로 구비를 해놓는다.
취향이 경쟁력인 시대인데 취향의 힘을 언제 가장 크게 느끼나. 개인적인 취향이 일을 하는데 있어서 어떤 영향을 주는지 궁금하다
-취향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는 것 뿐인데 취향이 좋다고 평가되는 게 불편했다. 누구나 좋아하는 이유들이 있을텐데 취향이 좋다고 표현되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하게 여겨져야 되는데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사람들이 많이 얘기할수록 각자 좋아하는 게 있을 뿐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깊게 좋아하면서 저의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들을 많이 하고 있다. 물건을 사서 깊이 써보다 보니까 디깅을 하게 되고 결국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경험과 지식이 되는거다. 누군가 좋다고 해서 따라서 사는 게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마주하는 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게 일로도 적용된다. 각자의 좋아하는 것들이 다르지만 스며들면서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무엇이든 열렬하게 좋아한 경험이 있거나 좋아하고 있을 때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하기 위한 방법이 있나
- 최선을 다해서 좋아하려고 노력한다. 마음이 금방 식을 수 있기 때문에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흥미가 떨어질 때는 더 찾아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좋아하는 걸 왜 좋아하는지 같이 고민하고 깊이 좋아하는 법에 대해 찾아본다.
배달의민족에 이어 그란데클립에 합류를 해서 뉴믹스커피 개업을 했는데 팀 내 분위기가 궁금하다. 왜 믹스커피였나
-웃긴 걸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그런지 재밌게 일하고 있다. 믹스커피는 코리안 드링크 가게를 열면 어떤 아이템으로 할까 했을 때 내부적으로 창업캠프를 하다가 10개의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 중에 믹스커피가 너무 당연해서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아직까지 많이 소비되고 있지만 누구도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아이디어라서 흥미로게 느껴졌다.
배달의민족 퇴사를 하고 왜 그란데클립으로 들어갔나
-배달의민족이 첫 회사였는데 5년 정도 근무를 하다가 베트남으로 가서 일을 하게 됐다. 거기서 일을 하다가 퇴사를 한 후에 두낫띵클럽을 하면서 놀았는데 백수 생활을 하다가 재입사하는 게 목표였다. 재입사가 회사원으로 일을 하는 게 심리적으로 최고의 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단순히 잘하는 것을 넘어서 다시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을 다시 부르자고 했을 때 10명 중 9명이 찬성을 해도 한명이 반대를 못 오는 거니까. 가끔씩 재입사를 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보면서 너무 멋있다는 생각과 함께 같이 일했던 사람에게 보상을 받는 게 최고의 보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재입사를 꿈꿨었다. 5년 동안 일하면서도 "저는 퇴사하고 재입사 할 거예요"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을 했었다.
놀다가 재입사를 하고 싱가폴에서 일을 하다가 돌아오게 됐다.
어떻게 하면 평범한 일상에서 독특한 영감을 얻을 수 있을까
- 자극을 추구해서 많은 경험들을 하는데 반복된 일상을 지내다보면 익숙해지면서 특별함이 없어지는 게 고민이었다. 호기심이 즐거운 삶을 위한 축복이라고 생각하는데 무뎌지는 걸 보면서 어떻게 영감을 발견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됐다. 행복은 빈도수라고 생각해서 자주 발견하는 게 대박 영감을 발견하는 것보다 좋은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작은 것들에서 영감을 얻으려고 방식을 바꿔보기도 하면서 계속 실험해보고 있다.
팀에서, 개인적으로 영감이 현실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하다
-"아이디어는 태어날 때는 연약하다"라는 말이있다. 처음에는 아이디어도 갓 태어난 기린처럼 서있지 못한다. 갓 태어난다고 끝이 아니라 그때부터 시작인데 살을 붙이고 근육을 만들어서 세상에 나오게 해야된다. 영감을 떠올리는 것보다 중요한 작업인데 아이템을 잡으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서 발전시킨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생각들이 더해졌을 때 강력한 뭔가가 되기 때문에 계속 얘기를 나누면서 세상에 소개를 한다.
동료 이상의 친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회사의 동료들과 친구로 지낼 수 있을까
- 동료가 친구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퇴사 하고 나서 비로소 친구가 된 거다. 원래도 친했지만 퇴사 하고 나서 더욱 친해졌는데 각자의 업무 스타일이나 일할 때의 버릇들을 알고 있고 강점과 약점을 잘 알고 있다 보니까 친구가 되는데도 좋았다. 수다를 많이 떠는게 일하는데 도움되고 같이 할 때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을 다시 해야될지, 프리랜서로 일을 해야될지 고민이 됐을 때 여러명이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 같은 친구, 친구 같은 동료지만 동료는 동료이고 친구는 친구다. 퇴근 하고 나서 하는 얘기들이 완전히 달라진다.
일과 삶을 어떻게 분리하나
- 잘 못한다 (웃음). 일에 몰입을 넘어서 매몰되는 게 문제인데 너무 진심으로 하다 보면 거기에 빨려들어가서 나=뉴믹스가 되는 거다. 최근에 사진첩을 봤는데 전부 뉴믹스로 도배가 됐다. 개인적인 삶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없으면 일이 아닌 나의 삶은 없는 거다. 일이 잘못 됐을 때 내가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에 기를 쓰고 차집합의 영역을 넓혀가려고 나의 삶을 풍성하게 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매일의 감탄력’은 어떤 책인가. 작가님께서 책 소개부탁드린다
-15년 전부터 블로그를 했는데 8년 전부터 목요일마다 글을 쓰고 있다. 300편이 넘는 글이 쌓여서 책으로 출간하게 됐다. 매일매일 작게 감탄을 하는 것도 호들갑이 아니라 능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대인들의 일상이 매일매일 똑같지만 그 속에서 작은 놀라움을 발견하는게 필요한 능력인 것 같다.
김규림에게 출근의 의미는 뭔가
- 출근을 한다는 건 조직에 들어가서 일을 한다는 상징성을 갖는데 나 혼자의 세계를 넘어서 다른 사람의 세계와 섞이는 거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하면서 싫어지거나 질린다는 느낌이 든 적은 없나
- 너무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건 초반 5년에 배민문방구를 할 때 였다. 제품을 좋아해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다. 좋아한다고 해서 만들 수 있는 건 아닌데 알고 있는 것과 실력의 차이 때문에 힘들긴 했지만 동력이 됐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큼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처음에는 감을 잡지 못해서 패닉에 빠지기도 했는데 업체들을 만나고 계속 찾아보면서 나도 모르게 스며들었다. 삶에서도 이런 걸 만들 일이 있을 때 항상 써먹을 수 있다. 처음에는 괴리 때문에 괴롭긴 했지만 이루고 나서는 평생 써먹을 수 있다는 행복감이 있다.
마케터를 하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성격이어야 할까
- 좋은 자질이긴 하지만 저는 내향적이다. 숭님 같은 경우는 그런 걸 엄청 잘한다. 저는 누군가에게 메시지 하나 보내려고 해도 엄청 망설이는데 어떤 일이든 꼭 외향적이지 않아도 된다. 조용하면서 정말 기깔난 아이디어로 승부를 하는 친구도 있고 저는 사람들한테 먼저 다가가지는 않지만 저는 말보다 글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해서 블로그 등을 통해서 글로 승부를 한다. 100명한테 닿지 않아도 10명에게 진정성 있게 닿을 수 있다면 그것도 좋은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세상에 관심이 많은 건 중요하다.
SNS를 통해 일을 하는데 달라진 게 있나
-나를 고정적으로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자체로 힘이 된다. 반면에 중독이 될 수도 있는데 자극적인 방법을 찾는 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렇지만 누워서 세상에 가장 좋은 것들을 구경할 수 있는 걸 활용하려고 하고 있다.
놀듯이 알하고 일하듯 놀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 재밌어 하거나 관심있어 하는 영역의 일을 갖게 되면 행복하다. 저는 굉장히 운이 좋게도 빨리 발견했는데 감각을 잘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 질에도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는데 그걸 잊지말자는 생각을 한다. 항상 재미를 찾아가려고 하고 있다. 재입사를 할 때 자기소개 문구로 "재미있는 걸 좋아하고 일을 재밌게 만드는 것도 좋아합니다"라고 썼다. 늘 재밌는 일만 하려면 놀면 되는데 주어진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는 과정에서 어려운 일이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자잘한 것들의 재미를 발견하는게 일을 헤쳐나가고 재밌게 하는데 필요한 능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료들과 팝업스토어를 가서 얘기를 나누거나 to do list를 쓰면서 해나가는 과정에서도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재미가 없으면 재미를 찾고 그래도 못 찾겠으면 퇴근 후에 재미를 찾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문구인의 길을 걸었다고 들었다. 어떤 어린시절을 보냈는지 궁금하다
-문구를 너무 좋아면서 자랐는데 부모님의 직업이 영향이 된 것 같다. 어머니는 예술 쪽을 해서 붓이나 물감이 많았고 아버지는 설계 쪽을 하셔서 제도샤프나 방안지가 많았다. 어른의 문구와 어린이의 문구는 다르고 멋지다는 동경의 생각을 가지고 자랐다. 그래서 반에서도 얼리어답터였다. "쟤한테 가면 특이한게 엄청 많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은근한 자랑이기도 했어서 물건으로 저를 표현하는 것에 익숙해졌다는 걸 어른이 돼서 깨달았다.
주변에서 쓸데 없다고 했던 게 알고 보니 다 나름의 쓸모가 있지 않았나. 면접도 물건을 자랑하는 자리였다고 들었다
-인생의 모든 것이 그랬다. 재밌는 것만 쫓아서 살았다. 정식으로 입사하기 전에 인턴을 세번정도 했는데 3개월 동안 편지만 부치는 일도 했었다. 이게 도움이 될까 싶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모든게 도움이 되어 있더라.
요즘 김규림의 가슴을 뛰게 하는 건 뭔가
- 90년대 영화를 굉장히 좋아해서 퇴근 후에 영화를 보고, 90년대의 감성을 좋아해서 쉬는 날에 다방 투어를 다니고 있다. 한국의 오래된 다방들을 투어하는 게 좋다.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시간을 들이고 찾아가서 보는 게 내일이 기다려지게 한다.
문구인으로서 김규림, 마케터로서 김규림, 사람으로서 김규림은 어떤 사람인가
- 문구인으로의 김규림은 문구를 통해서 작은 것에도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고 마케터로서는 책임감 있게 내가 만든 물건의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것의 진심인 사람이다. 사람으로서의 김규림은 게으른 한량이다(웃음).
요즘에는 어떤 재밌는 것들을 만들어가고 있나
-브랜드를 오픈한지 얼마 안돼서 이걸 어떻게 하면 잘 키워볼까 하는 고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일상 속에서 일이 상당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책이나 작은 것들을 만들고 있다.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찾아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말씀 해달라
-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게 삶에 큰 축복 같은데 그 감각을 느꼈을 때 절대 그때를 놓치지 말고 더 깊게 좋아해보려는 노력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좋아하는 게 자신을 구할거다. 좋아하는 게 정말 힘든 날에 스스로를 구할 때가 온다. 미래의 나를 위해서라도 꼭 좋아하는 것을 만났을 때 놓치지 말고 그걸 잡아서 갖고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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