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시즌 극심한 인종차별을 겪었지만 타율 0.297, 도루 29개, 뛰어난 수비 등으로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차지했다.
로빈슨은 자신의 플레이를 통해 인종차별을 받는 흑인을 대변했다.
그 결과 1954년 미국 대법원의 인종차별 위헌 결정과 인종차별을 금지한 민권법 제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렇다면 골프계 로빈슨은 누구일까.
바로 미국의 찰리 시포드다. 시포드는 1922년 6월 2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샬럿에서 태어났다.
골프를 접한 것은 13세 때 캐디 일을 하면서다. 대회에 처음 출전한 것은 17세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다. 필라델피아에는 인종·성별·민족을 차별하지 않는 골프장(콥스 크리크 골프코스)이 있었다.
프로 무대에 오른 것은 1948년이다. 당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는 흑인에 대해 출전을 막았다.
갈 곳이 없던 흑인들은 연합골프협회(UGA)를 만들어 골프대회를 개최했다. 시포드는 1952년부터 1956년까지 5년 연속 UGA 내셔널 니그로 오픈에서 우승했다.
시포드는 헤비급 복싱 챔피언 조 루이스를 통해 1952년 PGA 투어 대회(피닉스 오픈) 출전을 시도했다.
이때부터 위협과 심한 인종차별을 받았다.
처음 우승컵을 든 것은 PGA 투어가 공동으로 후원한 이벤트 대회인 롱비치 오픈이다.
1959년에는 미국골프협회(USGA)가 주관하는 남자골프 4대 메이저 대회인 US 오픈에 출전해 32위에 올랐다.
PGA 투어 회원이 된 것은 1961년이다. 투어에서 뛰는 유일한 아프리카계 흑인이었다.
PGA 투어 우승은 1967년 그레이터 하트포드 오픈 인비테이셔널, 1969년 로스앤젤레스 오픈에서 기록했다.
50세를 넘긴 시포드는 1975년 시니어 메이저 대회인 PGA 시니어 챔피언십 우승컵을 들었다.
미국의 리 트레비노는 "시포드를 로빈슨과 같은 범주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자기 아들 이름을 찰리로 지었다. 시포드를 위해서다.
이에 대해 우즈는 "시포드가 없었다면 나도 이 자리에 없었다"고 말했다.
시포드는 2004년 세계골프명예의전당에 헌액됐다. 2007년에는 올드 톰 모리스 상을, 2014년에는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았다.
대통령 자유 훈장 수여자는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였다.
시포드는 2015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92세를 일기로 유명을 달리했다. 당시 시포드는 한 달 전부터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미국 플로리다주 세계골프명예의전당 한쪽에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활약을 담은 섹션이 있었다.
섹션의 시작은 시포드다. 가장 마지막은 PGA 투어 최다승 동률 기록(82승)을 세운 우즈의 환한 미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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