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0월 22일 부산 범어사를 찾아갔을 때 했던 말이다. 윤 대통령은 "여러 힘든 상황이 있지만 업보로 생각하고 나라와 국민을 위해 좌고우면하지 않고 일하겠다"면서 이 같은 말을 꺼냈다. 이 말은 자신의 낮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국정 기조를 바꾸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윤 대통령, 아니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부부를 향한 비판이 무성한 시점에 윤 대통령의 고집스러운 태도가 다시 드러나는 듯했다. 나라를 책임진 대통령이라면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는 식의 말을 할 일이 아니었다. 국민과 언론들이 대통령을 향해 돌을 던지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대통령의 책임이다. 그러니 윤 대통령의 그런 말은 과거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한 대통령들이 “오직 국민만 보고 가겠다” “역사의 평가에 맡기겠다”는 상투적인 어법으로 국민의 비판을 모면하려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는 정작 지난 4일에 있었던 2025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에 불참했다. 시정연설은 정부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한 뒤 국회에 나와 예산안의 주요 내용을 설명하고 국회에 처리 협조를 요청하는 일로, 대통령이 하는 것이 관례였다. 현직 대통령의 시정연설 불참은 박근혜 정부 이후 처음으로 11년 만이다. 아마도 최근 명태균씨와의 통화 녹취 내용이 공개되면서 윤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논란이 불거진 데다 야당 의원들의 야유와 조롱이 예상되어 불참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던 말과도 달라 보인다. 돌을 던지지 않아도 되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그저 돌을 피해가려는 모습일 뿐이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윤 대통령의 불참 소식에 대해 “아쉽다’는 불만을 드러냈다. 한 대표는 사전에 대통령실에 "윤 대통령이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 직접 참석해야 한다"는 취지의 뜻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의힘 소속인 배현진 의원도 "이해할 수 없는 정무 판단"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각종 논란이 불편하고 혹여 본회의장 내 야당의 조롱이나 야유가 걱정되더라도 새해 나라 살림 계획을 밝히는 시정연설에 당당히 참여했어야 했다"는 얘기였다. 여당 내에서도 이러니 야당의 비판은 말할 것도 없다. "삼권분립 민주공화국에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당연히 해야 할 책임인데, 이 책임을 저버리는 것에 대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다."(이재명 민주당 대표) “민주화 이후 노골적으로 국회와 국민을 무시한 대통령은 없었다. 민주공화국 대통령 자격이 없다."(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
그러나 막상 ‘4대 개혁’에 대한 의지만 반복했을 뿐 막상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추진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국민 불편의 장기화를 낳고 있는 의·정 갈등과 의료 공백 사태의 해법에 대해서도 별다른 말이 없었다. 무엇보다 이번 시정연설에서는 명태균발 ‘윤 대통령 부부 공천 개입’ 의혹이나 ‘김건희 여사 특검법’ 같은 현안에 대한 언급은 없었는데 7일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을 할 것이라고 하니 일단 지켜볼 일이다.
문제는 윤 대통령은 입만 열면 ‘4대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하고 있는데, 정작 그것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이다. 근래 들어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더욱 하락하여 ‘마의 10%대’ 구간으로 추락한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그렇지 않아도 윤 대통령과 한동훈 대표의 갈등, 친윤계와 친한계의 분열로 집권세력이 어수선한 데다 명태균발 공천 개입 의혹이 윤 대통령 부부를 강타한 이후로 윤 대통령이 회생 불능 상황에 처한 것 아니냐는 시선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니 아무리 ‘4대 개혁 완수’를 반복해서 외쳐도 현실성 없는 공허한 구호로 들리게 된다. 국민의 지지가 바닥인 상황에서 무슨 수로 그 험난한 ‘4대 개혁’을 완수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특히 이해관계자들 간 입장 차이가 선명한 ‘4대 개혁’은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설득하는 리더십이 절실히 요구되는데, 이제까지 윤 대통령이 보여준 독선적 리더십이 그런 조정과 설득의 과정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신뢰가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4대 개혁’이라는 구호는 현실성이 있어서가 아니라 위기에 처한 윤 대통령이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명분이기에 반복적으로 외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윤 대통령이 자신의 과업으로 강조해온 ‘4대 개혁’은 어느 정권이 하느냐에 상관없이 우리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국가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과제다. 그런 과제를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윤석열 정부가 국민의 지지를 얻고 있어야 동력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런데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고 있으니 그런 어려운 길을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의료 공백 사태에서 보여준 조정과 설득의 리더십 부재라는 한계를 알기에 과연 그 힘든 ‘4대 개혁’을 완수할 수 있을지도 의심 가는 것이 사실이다. 7일 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와 기자회견이 있다고 하니 국민의 마음을 다시 얻어 ‘4대 개혁’을 위한 최소한의 동력을 만들 계기가 가능해질지 지켜보기로 한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사이버대학교 NGO학과 외래교수 ▷전 한림대 사회학과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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