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서(白書). 사전에서는 '정부가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의 문제에 대해 그 현상을 분석하고, 장래의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 발표하는 보고서'란 의미로 설명하고 있다.
지난주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는 4·15 총선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고, 개혁 과제를 제시하는 내용을 담은 '제22대 총선백서'를 발간했다. 이번 국회를 '여소야대'로 만든 결과 때문에 총선백서 특별위원회 활동부터 여러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해당 백서는 통상 포함하는 분석과 정책을 넘어 절박함의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조정훈 총선백서 특위 위원장은 발간사를 통해 "다시는 패배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로 이 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백서의 제목은 '마지막 기회'로 명명됐다.
여당이 패배한 요인을 분석한 내용을 보면 총선 이후 제기된, 누구나 예측할 수 있었던 결과가 확인됐다. 백서는 가장 먼저 낮은 국정 운영 평가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짚었다. 특히 선거에 영향을 미친 주요 이슈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 △이종섭·황상무 이슈 △대파 논란 △김건희 여사 이슈 △해병대 채 상병 이슈 △의대 정원 확대 등 상위 5개가 모두 대통령실에서부터 비롯된 항목이었다. 이러한 이슈에 당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도 정확히 지적하면서 총선이 '정권심판론'으로 치러졌다고 인정하기에 이른다.
이에 따라 이 백서는 '정권백서'란 이름에 맞는 내용으로 쓰였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백서가 지목한 정권을 둘러싼 여러 논란과 의혹은 대다수 국민에게 피로감으로 다가왔고, 이는 정권의 반환점이 아니라 도착점인 것 같은 느낌마저 들게 했다. 급기야 최근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20%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정부가 그토록 목소리를 높여 추진하는 4대 분야 개혁의 동력을 이어가야 할 상황에서 국민 10명 중 2명만이 지지하는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한 총선백서 특위 위원은 소회를 통해 "이 책은 4년 뒤에 보라고 쓴 것이 아니다. 변화는 지금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백서가 발표된 지 사흘 만에 야당에서 공개한 한 녹취록은 여당의 다짐과 결의를 무참하게 뒤엎고 말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과거 정부의 몰락을 끌어왔던 한 태블릿 PC의 기억을 떠올리곤 한다. 분위기만으로 굴욕의 역사가 되풀이될 리는 없지만, 그만큼 여권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전제는 부인하기 어렵다.
이전의 탄핵 정국과 현재 상황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점 중 하나를 말하자면 당시 헌정사 최초로 파면이 인용된 피청구인은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할 때부터 유죄가 확정되고, 특별사면 대상자에 포함된 이후까지도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지금은 기회가 있다. 여당의 대표가 공식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는가. 계속된 문제 제기에 대통령은 7일 입장을 낼 것이라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소통 방식으로는 현 국면을 뒤집기 어려운 것은 자명하다. 국민이 국정 성과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은 곤란하다. 국민은 성과 달성을 이해하지 못해 돌아서는 것이 아니다. 국정 운영의 주체는 실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경영자가 아니고, 수사로 보여줘야 하는 검찰은 더더욱 아니다. 이제 임기 반환점에 다다른 만큼 남은 기간 성과를 보여줘도 충분하다. 야권이 제기하는 의혹을 정쟁일 뿐이라고 몰아붙일 상황이 아니다. 주어진 물음에 원론적으로 대응할 상황도 절대 아니다.
순방 전 기회를 얻는 것이 좋겠다는 참모진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이에 더해 국민이 요구하는 점도 제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상당수 국민은 물론 여당에서조차 정권에 묻고 있다. 혁신과 쇄신을 할 것인가, 그렇지 않고 그동안의 입장을 유지할 것인가. 법정시한 내 예산안을 처리해 달라는 요구를 대독하게 한 불분명한 입장이 아닌 명확하고 명쾌한 입장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어떠한 답변이 나오느냐에 따라 정권에는 '마지막 기회'를 잡거나 그렇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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