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방산기업들이 글로벌 금융기관의 ESG 평가 지표에서 저조한 성적을 받을 경우 투자자금 조달, 신용등급 강등, 주식 저평가 등 상시적인 위협에 노출될 수 있고, 이럴 경우 수출 금융지원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한국 방산업계가 ESG 리스크 대응 역량을 적극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7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중공업, KAI, 현대로템 등 국내 방산기업들은 친환경 제품 다각화 및 공급망 구축, 대체 에너지 활용, 대량 살상무기 사업 매각, 살상력이 낮은 대체 소재 사용, 분쟁광물 사용 근절 등 ESG 리스크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아울러 계열사와의 상생협력, 지배구조 개선, ESG 지표 및 위원회 등 전담 조직 신설을 통해 거버넌스 구축에도 힘쓰고 있다.
현대로템은 경기 의왕연구소 내에 수소추출기 공장을 준공하는가 하면 제품 포트폴리오에 수소전기트램을 추가하며 지난해 직접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 대비 26.3% 줄였다. 한화그룹은 비인도적 무기인 집속탄(분산탄) 사업을 매각했고 신재생에너지 기술 개발을 통해 우주항공은 레이더 등 군사용 통신사업과 연계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LIG넥스원도 수소연료전지 드론 등 친환경 제품 생산에 집중하고 있고 풍산의 경우 분쟁 지역에서 생산된 광물 수입을 중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집속탄, 대인 지뢰 등 살상력이 높은 무기를 생산하는 기업들이 해외 연기금 투자기관의 블랙리스트에 등재되면서 매년 ESG 평가에서도 불리한 결과를 받고 있다. 실제 한화를 비롯해 대부분의 국내 기업들은 대인지뢰, 민간 무기류 생산 등으로 네덜란드, 스웨덴 등의 연기금 투자 배제 대상 리스트에도 올랐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은 분단국가로, 특히 수도권까지의 종심이 짧고 휴전선 근처에 북한군이 집결해 있기 때문에 환경적으로 지뢰 등 내수 무기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 "특히 국내 생산된 집속탄은 모두 수출용이 아닌 내수용인 만큼 타국 살상 행위에 관여할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정부가 적극 나서서 ESG 리스크로부터 한국 기업을 보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의 ESG 공시 정보 부족 역시 ESG 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글로벌 기업들은 매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고, 환경오염 물질 배출량 세분화, 생태계 다양성 강화 활동, ESG 이사회 및 고용인력의 다양성 확보 등 ESG 강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지만 한국은 이 부분에 취약하다.
향후 기후변화에 따른 지정학적 갈등과 위기를 악화시키지 않기 위해 방위산업의 ESG 리스크 대응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제 미국, EU 등 주요국은 기후변화를 자국 안보의 위협 요인으로 인식하고 적극 대응하고 있다.
특히 국방부는 정부 조직 가운데 가장 에너지 소비가 많은 부처인 만큼 향후 환경 리스크가 가장 중요한 사안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은 오는 2030년까지 모든 비전투 차량을 하이브리드로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고, 유럽은 국방 부문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탄소발자국 감축 등에 적극 나서고 있다. 반면 한국은 군 보안 문제로 국방 부문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공개되고 있지 않아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정확한 목표 설정도 어려운 상황이다.
심순형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부 경영 평가에서 방산 부문에 대한 수출금융 지원 실적이 ESG 관련 평가 지표에서 제외되도록 조치하는 등 정책금융 기관의 ESG 리스크 대응의 부담을 덜어주는 조치들이 필요하다"며 "방위산업의 ESG 리스크는 개별 기업이나 부처 단독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만큼 기업과 범부처 간 협력 거버넌스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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