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 칼럼] '말잔치' 대국민 담화 …떠난 민심 잡기엔 역부족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유창선 시사평론가
입력 2024-11-10 14:15
    도구모음
  • 글자크기 설정
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사과는 했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지난 7일 있었던 윤석열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렇다. 그렇지 않아도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한 여론의 악화가 피부로 느껴지고, 명태균발 ‘윤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이 불거져 민심이 흉흉하던 상황이었다. 이런 악재들이 쌓이고 방치되면서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마의 10%대’ 구간으로 추락한 여론조사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윤 대통령은 당초 일정을 앞당겨 뒤늦은 소통의 자리를 가졌다. 윤 대통령의 입에서 과연 민심을 진정시키고 되돌릴 만한 담대한 국정쇄신책이 나올지 여부가 관심사였다.

윤 대통령은 이날 담화를 시작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모든 게 제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라며 사과하고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보였다. 외견상으로는 그동안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내에서도 요구해온 대국민사과를 수용한 것이었지만, 윤 대통령은 막상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기자들로부터 “무엇에 대한 사과인가”라는 질문이 나오자 비로소 "국민들에게 걱정을 끼친 것은 저와 제 아내의 처신과 모든 것에 문제가 있기 때문으로, 이런 일이 안 생기도록 더 조심하겠다는 말"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이날 사과가 어떤 것에 대한 사과인지 구체적으로 특정해달라는 지적에는 "사과의 대상을 구체적으로 말하기에는 지금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다", "명태균씨와 관련한 내용 등 일부는 사실과 달라 인정할 수도 없고 모략이라 그것은 사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사실 잘못 알려진 것도 많은데 대통령이 맞다 아니다 다퉈야 하겠는가"라며 사과의 대상을 건건이 특정하지 못하는 것을 양해해달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김건희 특검법’에 대해서도 분명한 거부 입장을 다시 확인했다. 윤 대통령은 특검법이 "명백하게 자유 민주주의 국가들의 삼권분립 체계를 위반한다"고 지적하며 김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들에는 "소문이고 자기(야당)들이 만들어낸 것이지, 객관적 근거 없다"고 반박했다. 대신 윤 대통령은 "아내가 의도적인 악마화나 가짜뉴스, 침소봉대로 억울함도 본인은 갖고 있을 것이지만 그보다는 국민에게 걱정 끼쳐드리고 속상해하시는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훨씬 더 많이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전과는 달리 시간의 제한 없이 자유롭게 질문을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짜여진 각본에 따라 요식 행위처럼 진행되던 이전의 기자회견을 생각하면 진일보한 회견이었다. 윤 대통령으로서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들을 많이 하고 제기된 여러 의문들에 대해서도 나름 해명의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윤 대통령의 말들을 받아들이는 반응과 평가는 엇갈리지만 이전에 비하면 비교적 진솔한 얘기들이 담겼던 것은 긍정적인 면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런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이 미흡하고 공허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윤 대통령이 사과도 했고 그동안 제기된 의혹에 대한 해명도 구구하게 했지만 국민의 성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선이 끝나고 휴대전화를 바꾸지 않은 것’을 잘못의 원인으로 여기는 윤 대통령의 인식으로는 그동안 제기된 여러 논란들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날 윤 대통령 본인도 말했듯, 대통령은 변명하는 자리가 아니다.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는 자리이고, 잘못되었다면 변화하고 쇄신해야 하는 자리가 대통령이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이날 자리에서 등 돌린 민심을 되돌릴 만한 획기적인 국정쇄신의 구상을 밝혔어야 했다. 

여기에는 국정노선의 전환,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의 인적 쇄신, 윤 대통령 자신의 변화 등이 포함된다. 물론 윤 대통령은 "국민 여러분의 뜻을 겸허히 받들어 국정 쇄신에 나서겠다"고 했다. “적절한 시기에 인사를 통한 쇄신의 면모를 보여드리기 위해서 벌써부터 인재풀에 대한 물색과 검증에 들어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말한 그런 국정 쇄신과 인사가 어떤 철학과 반성의 기조 위에서 계획되는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러니 윤 대통령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의 근거를 찾기 어려웠다. 

윤 대통령은 무엇이 달라져야 했던가. 문재인 정부 시절의 진영 대결 정치, 편가르기 정치를 그렇게도 비판하며 정권을 잡은 윤 대통령이었지만, 정작 자신이 집권하고서는 그보다 더한 진영 대결의 국정노선을 고집해왔다. 과거 실패했던 보수 정부 시절의 ‘그때 그 사람들’만이 중용되었지 진영의 담을 넘어 새로운 인재들을 발굴하고 껴안으려는 탕평의 노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국민통합을 추구해야 할 대통령은 자신이 ‘보수 우파’의 선봉이 되어 ‘강성 우파’ 인사들을 주변에 포진시킴으로써 분열의 통치를 고집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저와 정부의 부족한 부분을 잘 알고 있다. 고쳐야 할 부분들을 고쳐 나가겠다"고 했다. 그러나 과연 윤 대통령이 그런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 아무런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아무리 쇄신을 하겠다고 말하고 인사를 한들, 윤 대통령의 사고가 바뀌지 않는다면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윤 대통령의 이날 담화와 회견에 대해서는 반응과 평가가 엇갈린다. 야당은 “반성은 없고 국민 앞에 솔직하지 못했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며 일제히 비판하고 나선 반면, 국민의힘에서는 친윤계와 친한계의 평가가 엇갈린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 회견으로 윤 대통령에게서 떠나간 민심이 되돌아오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예상이다. 당장 달라지고 쇄신하려는 윤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은 말의 성찬으로 끝난 담화와 회견이었다. 애당초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할 상황을 자초했던 것은 윤 대통령이었다. 그런데 그 가래조차 나오지 않은 회견이었다. 정치와 역사의 시계는 계속 돌아가고 있는데,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것이 현실이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대학원 사회학 박사 ▷전 경희대 사이버대학교 NGO학과 외래교수 ▷전 한림대 사회학과 외래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실시간 인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