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400원에 육박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가 향후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강달러' 기조가 수출 실적에는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나, 장기적으로 보면 비용 부담 증가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11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 거래일 보다 8.3원 오른 1394.7원을 기록했다. 지난 6일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재집권 이후 급등했던 달러화 가치가 소폭 되돌려진 모습이다. 다만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미국 보호무역주의 확대와 감세 정책 등으로 당분간 환율이 1400원대 안팎에서 오르내릴 것으로 내다봤다.
원·달러 환율 상승은 단기적으로는 수출 실적에 유리하나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대금 지급 등 현금 운용 측면에서 불확실성이 큰 이슈다. 특히 반도체는 판매 대금을 대부분 달러로 받기에 당장은 돈을 더 벌지만, 해외에서 구매하는 웨이퍼나 원자재 가격이 오를 수 있기에 리스크 중 하나로 손꼽힌다.
미국에서 반도체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450억 달러(약 63조원)를 들여 첨단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이곳에 4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미터)와 2나노 공정을 위한 생산시설 2곳과 R&D(연구·개발) 팹, 3D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2.5D 패키징을 위한 패키징 시설이 들어선다.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주 서부 웨스트 라피엣에 38억 7000만 달러(약 5조 4000억원)를 투자해 인공지능(AI) 반도체용 어드밴드스드 패키징 생산 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다. 오는 2028년 차세대 HBM 양산 체제를 목표하고 있다.
강달러 현상이 지속될 경우 삼성전자는 공장 설비 반입이나 공사 과정에 부담이 예상된다. SK하이닉스는 공장 건설 계획부터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아울러 모바일과 가전도 다루는 삼성전자와 달리 반도체가 주업종인 SK하이닉스는 환율이 오를수록 당기손익에 손실이 커 환율 상승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환율이 10% 오를 경우 법인세비용차감전순이익에 미치는 영향은 마이너스(-) 3321억원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말 기준 달러 자산보다 달러 부채가 많은 만큼 강달러에 따른 순이익 악영향은 불가피하다.
업계 관계자는 "양사 모두 통화스왑 및 통화이자율스왑 등 헷지 전략을 펼쳐 환율 변동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증권가에서는 향후 원·달러 환율 향방에 대해 트럼프 당선에 따른 강달러와 엔화, 유로화, 위안화 등 글로벌 통화 약세가 맞물려 당분간 1400원대를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당분간 1350원대던 환율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구체화 전까지 1400원대에서 등락할 것으로 보인다"며 "여기에 내년 상반기 관세 부과, 무역 성장률 둔화, 미·중 갈등 격화 등 불확실성이 커지면 1450원대도 가능할 것이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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