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위원회가 AI(인공지능) 전문가 4명에게 노벨 물리학·화학상을 수여하면서 전 세계에 AI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임을 선포했다.
특히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와 화학상을 수상한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 존 점퍼 딥마인드 이사가 전·현직 구글 연구원인 점은 전 세계 투자자와 IT기업들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기초과학 및 학문적 이론 연구가 아닌 AI에 대한 투자가 미래 산업은 물론 국가, 기업 등 집단의 경쟁력과 인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노벨위원회가 확인시키면서다.
한국은 세계 6위의 AI 역량을 갖추고 있음에도 운영 환경 및 투자에서 아쉬운 평가가 나오는데, 전문가들은 한국이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한 우물 파기’와 이를 뒷받침할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이 AI 기술, 정책, 인프라에서 주요국과 비교해 우위를 차지했음에도 운영 환경, 투자 등에서 뒤진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글로벌 기업 간 AI 하드웨어 및 인프라 확보 전쟁에서 한국이 비교 열위에 있는 점을 두고 관련 예산 확보에 힘쓰는 것으로 파악된다.
영국 조사기관 토터스 미디어(Tortoise Media)가 발표한 ‘2024년 글로벌 AI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종합점수 27.26점을 받아 전 세계 6위를 기록했다. 한국은 특히 운영 환경에서 35위, 인재·연구에서 13위, 상업상태계에서 12위를 차지하면서 주요국과 비교해 저조한 성적을 보였다.
민간투자 부문도 저조한데, 스탠퍼드대 ‘인공지능 지수 2024’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국의 AI 민간투자액은 13억9000만 달러(약 1조9000억원)로 세계 9위에 머물렀다. 2022년에는 민간투자 31억 달러를 유치해 6위에 오른 바 있다.
정부 예산에도 차이가 난다. 미국은 내년 정부 예산으로만 50조원 이상을 AI에 투자할 것으로 전망되며, 민간투자를 포함하면 그 규모가 12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중국 투자액 역시 20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0년간 미국의 AI 투자액은 300조원, 중국은 80조원, 한국은 4조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정부 차원의 장기적인 대규모 투자가 민간투자를 이끌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혁신기술 개발이 가능했다고 국내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특히 연구자가 한 분야에서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연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과기부는 사업비로 연 2억원을 지원하고 5년 단위로 성과를 검토하는 ‘한 우물 파기 과제’ 사업을 시작했다. 힌튼 교수, 허사비스 CEO와 같이 10년 단위 연구를 지원하면서 노벨상 수상을 목표로 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열악한 예산으로 인해 그 규모가 크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가 내년도 AI 예산 확대를 검토하는 이유다.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는 “이번 노벨상 수상자들은 AI에 평생을 바쳤다. 과학 분야에서는 한 우물을 팔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이 높아지면서 연구자들도 해외에서 명성이 높다. 이들 연구자가 자기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며, 노벨상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