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원회는 13일 오전 회의를 열고 4조8000억원 규모의 정부 예비비 중 절반인 2조4000억원을 감액한 안을 강행 처리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예비비 삭감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표결에 참여하지 않고 회의장에서 퇴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재위 예결소위 관계자는 아주경제와 통화에서 "민주당은 국민의힘과 협상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며 "예비비 여야 협상이 지연될 경우 조세소위도 뒤로 밀릴 가능성이 높아 걱정된다"고 말했다.
앞서 기획재정부는 올해 예비비를 증액하면서 미국 대통령 선거 등 국제정세 변화와 재난·재해 등 불확실성 확대, 감염병 유행 가능성 등을 이유로 들었다. 야당은 코로나19 이전 예비비 규모가 3조원 수준이고, 지난해 예비비 4조6000억원 중 3조3000억원이 불용된 점을 고려해 예비비 감액 조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예비비는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 지출 등을 충당하기 위해 일정 한도에서 미리 책정하는 금액을 말한다. 사업 예산과 달리 구체적인 심의 없이 총액에 대해서만 국회의 승인을 받는다. 그러나 예비비는 다른 일반 예산과 달리 국회가 사용 내역을 사전에 검증할 수 없기 때문에 정부의 '쌈짓돈'이라고 불리고 있다.
기재위 소속 민주당 한 의원도 "예비비가 너무 방만하게 쓰이고 불용액이 많다"며 "민생 경제가 어려운데 '쌈짓돈'인 예비비를 많이 편성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2조4000억원을 줄여도 충분하다"며 "보통 1조4000억원 정도 쓰는데, 향후 (재원이) 부족하면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기재부가 민주당의 이 같은 예비비 삭감 규모에 반대하면서, 여야가 그간 합의한 증액 예산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민주당 소속 기재위 예결소위 의원들은 "증액은 이미 여야 합의가 된 사항인데, 예비비 때문에 (합의 사항도) 뒤집는 게 어디있느냐"고 당혹스러운 반응을 내놨다.
다만 여야 합의 없는 예비비 삭감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어렵다. 기재부 소관 예산안의 기재위 처리가 불발되면, 야당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자체 심사로 기재부 소관 예산안을 논의할 가능성도 있다. 기재위 위원장은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지만, 예결특위 위원장은 박정 민주당 의원이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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