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기차여행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전국 각지에서 청량리역으로 모여든 사람들. 피곤할 법도 한데 이들의 얼굴은 기대감과 설렘으로 가득 차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올해 세 번째 '여기로' 기차여행을 시작했다. 지난 1일 청량리에서 안동행으로 떠나는 관광열차에는 총 240명의 승객이 몸을 실었다. 안동 80명, 의성 80명, 예천 80명. 모두 10대 1 수준의 경쟁률을 뚫고 선발된 사람들이다.
기차여행을 떠나는 여행층은 다양하다. 할머니와 엄마, 손녀까지 3대가 손잡고 기차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은 기차에서 샌드위치도 먹고 선물을 받기 위해 열심히 게임에 참여한다. 승객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안동 가는 기차 안을 가득 채운다.
◆ 육지 속 작은 섬마을 '회룡포마을'
안동역에서 예천으로 이동해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회룡포다. 낙동강으로 합류되는 물길인 내성천이 감입곡류 해 만든 전형적인 충적지인 회룡포는 내성천이 350도 가까이 휘돌아 나가는 지형이다.
이러한 모습은 마치 용이 비룡산을 끌어안고 비상하듯 물을 휘감아 도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여 '회룡포'라는 이름이 붙었다.
육지 속에 있는 작은 섬마을인 회룡포마을.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이 마을에 40인승 관광버스 두 대가 들어서자, 마을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내성천 건너 회룡포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보행교를 건너야 한다. 동네 사람들이 아르방다리로 부르는 간이 다리인데 다리에 구멍이 '뿅뿅' 뚫려 있다. 80명의 관광객이 줄지어 서서 뿅뿅다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마을 입구에는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수호신처럼 지키고 있다. 바다도 아닌 이곳에는 고운 모래가 마을 길을 따라 둘러있어 맨발 걷기 체험도 가능하다. 회룡포마을을 빙 둘러 조성된 회룡포 백사장 맨발 걷기 코스는 1.2㎞에 달한다.
관광객들은 마을 앞 비석에서 사진을 찍고 회룡포 정원을 거닐며 활짝 핀 꽃들을 감상하기도 한다. 푸른 풀밭과 늠름한 자태를 뽐내는 소나무, 작은 호수까지 동화 같은 섬마을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추억을 만드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금당실마을에서 직접 만드는 고추장과 인절미
이번 가을 기차여행의 주제는 '가을 상차림' 식도락 여행이다. 금당실마을에서 예천 고추를 활용해 담그는 고추장과 손수 떡메치기 해서 만든 쫄깃한 인절미는 이번 여행의 별미 중 하나다.
예천 금당실마을은 조선 후기 고택과 문화재가 잘 보존된 곳이다. 마을 이름은 '금빛 연못'이라는 뜻으로 마을을 둘러싼 고즈넉한 돌담길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마을에는 7㎞에 걸쳐 복원된 돌담길이 있으며, 돌담 아래에는 백일홍과 채송화 등 다양한 꽃들을 만날 수 있다.
금당실마을의 첫 번째 프로그램은 전국 주요 고추 재배지인 예천에서 수확한 고추로 만드는 찹쌀고추장 만들기다.
먼저 엿질금(엿기름)과 멥쌀, 찹쌀 등이 들어간 찹쌀발효조청에 소금을 넣어 잘 섞어준 뒤 콩 메줏가루와 예천청결고춧가루를 잘 풀어준다. 가루가 뭉치지 않게 잘 저어주고 2주 숙성하면 맛있는 찹쌀고추장이 완성된다.
간단한 고추장 만들기 체험 후, 이번에는 인절미를 만들러 나선다. 나무절구로 한 명씩 돌아가면서 떡메치기를 한다. 쫄깃한 인절미를 먹겠다는 일념 하나로 다들 떡메에 온 힘을 싣는다. 나무 책상이 쪼개질 정도로 열심히 떡메치기를 한 뒤 떡을 잘라 콩고물을 입힌다. 즉석에서 먹어보는 인절미는 말 그대로 '꿀맛'이다. 온몸에 콩고물이 묻어도 다들 아랑곳하지 않고 인절미 만들기 체험을 즐긴다.
◆가을 입은 용문사에서 만난 윤장대
시내에서 산속으로 굽이굽이 한참을 달려 한적한 산속에서 만난 예천 용문사. 이곳은 소백산 자락에 자리한 천년고찰이다.
용문사 입구에 들어서면 거대한 사천왕상이 지키고 있는 회전문이 나온다. 회전문을 넘어가면 해운루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용문사의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빨간 기둥과 푸른 단청 사이로 용문사의 가을 풍경이 한눈에 담긴다.
용문사는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왕실의 태실을 보호하는 사찰이었다. 태실은 왕실에서 자손을 출산하면 나오는 태를 보관하는 장소를 일컫는다.
용문사에 왔다면 예천의 유일한 국보 '대장전'과 '윤장대'를 꼭 들러야 한다. 대장전과 윤장대는 2019년 12월 2일 국보로 지정됐다.
대장전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기 위해 조성된 곳으로 김보당의 난이 있던 1173년(고려 명종 3년)에 처음 지어진 후 8차례의 중건에도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대장전 불단 앞 좌우에는 국보 제328호인 불교 경전을 보관하는 회전식 경장 '윤장대'가 자리하고 있다. 윤장대의 경장을 한 번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은 것과 같은 공덕이 생긴다고 하여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귀중한 종교활동의 도구로 쓰였다.
윤장대는 고려 때 다섯 개가 만들어졌는데 그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 이곳 용문사의 윤장대다. 좌우에 있는 윤장대 사이에는 보물제989호인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목각탱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예천의 또 다른 풍광을 담으려 '하늘자락 전망대'로 향한다. 하늘자락 전망대 입구에서 23.5m 높이의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360도 돌아가면서 전망대 아래 풍경을 파노라마 뷰로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어림호 전망대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소백산 자락의 자연경관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전망대 근처에는 산책로와 쉼터가 마련돼 있어 전망대에 오르지 않더라도 숲속에서 천천히 산책하며 자연을 즐길 수 있다.
◆'가을엔, 여기로' 11개 테마별 여행
'2024년 여행가는 가을'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여행 비수기인 10월에서 12월까지 추진하는 캠페인이다. 4분기는 여행 비수기로 연중 국민여행일수가 가장 저조하다. 여행가는 가을은 이러한 여행 비수기에 국내여행 활성화를 통해 여행 분위기를 조성하고 국내여행 수요 촉진과 내수 진작 도모를 위해 추진하게 됐다.
이 기간 정기관광열차 5개 노선 운임 50% 할인과 내일로 패스 1만원 정액 할인 등 '철도 할인'은 물론, 숙박세일 페스타를 통한 숙박 할인과 여행상품 할인을 진행한다.
그중에서도 대국민 이벤트 '여기로'는 2000명의 시민을 추첨해 24개 지역으로 떠나는 여행상품이다. '여기로'의 명칭은 '여행가는 가을, 기차로 떠나는 로컬여행'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들어졌다. 여기로는 노랑풍선이 협력사로 참여한다.
인당 4만9000원의 참가비만 내면 당일치기 가을여행을 즐길 수 있다. 다자녀가구의 미성년자녀 참가비는 인당 2만원이다.
회차당 240명을 선발하는 여기로는 저렴한 비용에 운영되는 만큼 경쟁률도 치열하다. 이번 가을 여행에는 2만여 명이 참가 신청을 했다. 가장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 24일 산청, 함양, 장수 프로그램에는 5378명이 지원했다. '로컬 스토리'를 주제로 하는 24일 회차에는 22.41:1의 경쟁률을 뚫고 240명이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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