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14일) 실시된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서 나타난 일명 '사탐런' 현상으로 과학 탐구 2개를 선택한 이과생들이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윤석열 정부의 파격적인 의대 증원 정책 발표로 인해 올해 역대급 '수능 N수 열풍'이 분 가운데, 주요 상위권 대학 의·약학 등 자연 계열 입시에서 지정 과목 제한이 대폭 완화되며 '사탐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사탐런'은 과학 탐구 대신 사회 탐구 영역을 택하는 경우를 뜻하는 신조어다. 최근 자연계 학생들이 난이도가 높은 과학 탐구 2개에 응시하는 대신 사회 탐구 2개 또는 사회 탐구 1개+과학 탐구 1개를 조합해 시험을 치르는 경우가 늘어나자 이 단어가 생겨났다.
사회 탐구 영역에 응시해도 의과 대학 등 상위권 대학 자연 계열 학과 진학이 가능해진 상황 속에서 과학 탐구 과목 2개를 선택한 수험생이 역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상위권 대학들은 지난해와 달리, 선택 과목 제한을 대폭 폐지하고 통합변표 등을 도입해 사회 탐구 영역을 선택하더라도 지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이에 2025학년도 수능에서는 사회 탐구와 과학 탐구를 각각 1개씩 선택한 수험생이 지난해 1만9188명보다 3배 가까이 증가한 5만2195명으로 집계됐다. 이뿐 아니라 사회 탐구 영역만 선택한 지원자는 약 26만명으로 지난해 23만명에 비해 3만명이나 늘었다. 반면 과학 탐구만 선택한 지원자는 약 19만명으로 지난해 약 23만명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줄었다.
"엄마가 과탐 응시자 수 채워줄게"…학부모 수능 응시 효과 있나?
과학 탐구 영역을 2개 선택한 이들이 크게 준 탓에 일각에서는 학부모들이 응시자 수를 채워야 한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
앞서 수험생 자녀를 뒀다는 학부모 A씨는 입시 관련 카페에 지난 8월 '4교시만 수능 원서 접수했다'는 글을 올렸다. 공개된 접수 내역서에는 A씨가 공통 과목인 한국사를 포함해 화학1, 생명과학1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는 "같이 수능 보기로 한 엄마들이 당뇨가 있다고 배신을 해서 혼자 씩씩하게 다녀왔다. 우리 아이들 화학1, 생명과학1 표준점수는 엄마가 지켜줄 거야"라면서 "망설이고 계신 학부모님들 함께 하자"고 권유했다. 이 글은 많은 학부모들의 지지를 받았다.
과학 탐구를 2개 선택한 응시생을 둔 학부모들이 수능을 보겠다고 자처하는 이유는 수능이 원점수가 아닌 표준점수를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고 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수능 만점자라도 수험생이 응시한 선택 과목의 난이도에 따라 점수가 차등 분배되도록 설계돼서다. 과학 탐구 응시자를 1명이라도 더 늘려 상대평가로 점수를 매기는 표준점수에서 자녀가 1점이라도 더 높게 받도록 하겠다는게 학부모들 전략이다.
그렇다면 이 전략은 정말 과학 탐구 응시자에게 도움이 될까. 지난 9월 SBS와 김태윤 계명대 통계학과 명예교수가 진행한 모의실험에서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당시 실험 모델에는 응시자가 1000명인 과학 탐구 선택 과목에 학부모 200명이 전원 0점으로 깔아줄 경우를 가정해 통계를 매겼다. 그 결과 의대 지원에 나설 1등급과 2등급 학생들의 표준점수는 변동이 없거나, 1점 더 낮아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김 교수는 "평균 점수를 낮춰서 상대적으로 학생들의 점수가 높아지게 하려는 의도겠지만, 그만큼 표준편차가 커진다. 이러한 점이 서로 상쇄돼 10~20점 상승하기보다는 오히려 소폭 오르거나 떨어지게 된다"고 분석했다. 학부모들이 원하는 대로 상위권 표준점수 1점을 더 높아지게 하려면, 학부모 500명이 같은 과목에 응시해 전원 0점을 맞아야 가능했다.
다만 이승우 변호사는 SBS와 인터뷰에서 이러한 행위에 대해 "다양한 형태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단체방을 만들어서 의논하고, 회의하면서 접수까지 가는 행위까지 가면 조직적으로 조작하는 거다. 처벌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사탐런' 현상에 입시 전문가 "수능 난이도 살펴봐야"
김 교수 발언을 살펴보면 결국 표준편차가 핵심이다. 더 큰 점수를 얻기 위해선 변별력을 통한 적절한 난이도 형성이 중요하다.
이를 참고하기 위해 지난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확정 등급 컷에 따른 표준점수를 살펴봤다. 과학 탐구 영역 1등급 컷에 따른 표준점수가 가장 높았던 과목은 물리2였다. 물리2의 1등급 구분 표준점수는 71점으로 나타났고, 화학2(70점), 지구과학2(70점), 생명과학2(69점)가 뒤를 이었다. 공부 난도가 높다고 평가받는 2과목을 제외한 1과목만 살펴보면 물리1과 화학1이 67점으로 1위였고, 생명과학1(66점), 지구과학1(65점) 순이었다.
사회 탐구 영역의 경우 경제가 68점으로 최고점을 기록했다. 정치와법(67점), 사회문화(66점), 세계지리(66점), 한국지리(65점), 생활과 윤리(65점), 동아시아사(64점), 세계사(63점), 윤리와사상(63점)이 순서대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점수만 따져보면 과학 탐구 2과목을 선택하지 않는 경우 1과목 선택자와 사회 탐구 응시자 배점이 큰 차이가 없다.
심지어 경제, 정치와법 배점이 생명과학1, 지구과학1보다 더 높다. 이러한 연유로 과학 탐구 선택자들은 더 많은 공부량에도 불구하고 표준점수 배점에서 큰 이득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과학 탐구 대신 상대적으로 공부 난도가 더 낮고 공부량이 적다고 알려진 사회 탐구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이유로 추측됐다.
입시 전문가로 활동 중인 B씨는 아주경제에 과학 탐구 영역 2개를 선택하는 방법과 사회 탐구 영역을 섞어 지원하는 것 중 무엇이 더 나은 선택 같냐는 질문에 "해당 문제는 지원하는 학교 제도에 따라 달라진다. '사탐런'이라는 한 가지 문제로 접근하기 어렵다. 이 부분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특이한 경우가 나올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상위권 학생 '과탐 가산점제' 유리하지만…반영 비율 큰 국어·수학 성적이 더 중요
그래도 과학 탐구를 2개 선택한 학생들이 이득을 볼 수 있는 부분도 있다. 바로 주요 상위권 대학 의대를 포함한 자연 계열 등에서 과학 탐구 대상자들에게 가산점을 부여하는 제도다. B씨는 과학 탐구 가산점 제도가 '사탐런' 효과를 억제할 것 같지 않겠냐고 묻자 "당연히 상위권 학생들은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과학 탐구를 2개를 선택하는 게 무조건 유리하다"고 말했다.
다만 B씨는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화제가 되고 있는 의대 입시에 과학 탐구 가산점제와 '사탐런' 현상이 어떤 효과를 나타낼 것 같냐는 물음에 "39개 전국 의대 입시를 일반화할 순 없다"며 "오히려 사회 탐구 선택자가 국어, 수학에서 만점을 받는다면 과학 탐구 2개를 선택해 가산점을 모두 획득하는 수험생들을 제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즉 사회 탐구 영역보다는 반영 비율이 더 큰 국어, 수학 등의 결과가 더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봤다.
現 중학교 3학년이 응시할 2028학년도 수능엔 이런 논란 없다…왜?
수험생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는 선택 과목 논란은 현재 중학교 3학년생들이 치르게 될 오는 2028학년도 수능에서는 사라질 예정이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2028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 확정안을 지난해 12월 발표했다. 이 장관은 "2028 수능은 전국 고등학교에서 공통으로 가르치는 핵심 과목을 출제하고, 모든 학생이 동등한 조건에서 시험을 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 장관은 "통합사회, 통합과학을 출제해 사회·과학 탐구 영역 선택 과목으로 발생할 수 있는 수능 점수 유불리를 해소하고, 실질적인 문·이과 통합을 구현해 사회·과학 분야의 기초 소양을 바탕으로 한 융합적인 학습을 유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렇기에 올해 수능이 끝나도 앞으로 2년 동안은 선택 과목 논란이 계속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예비 수험생들은 통합수능 도입 전까지 자신의 희망 및 학과를 정하고, 맞춤형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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