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수 칼럼]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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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입력 2024-11-22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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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

 
정치는 민주주의의 영역이고, 사법은 법치주의의 영역이다. 양자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각자의 본질이 다르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정치의 사법화나 사법의 정치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가 그 본질을 잃고 사법적 판단에 의존하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여야의 정치적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끝내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사법적 판단에 의해 해결하게 되는 것이 사법의 정치화이며, 위헌적인 법률을 국회에서 자율적으로 개정 또는 폐지하지 못하고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맡기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사법의 정치화는 공정한 재판을 본질로 하는 사법이 정치의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 그 본질이 훼손되는 것을 말한다. 공정한 재판은 사법부의 독립성 및 중립성을 전제하는데, 정치화된 사법은 중립성과 공정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 최근까지 논란을 빚고 있는 법관선거제, 김명수 사법부에서 도입된 법원장추천제 등이 이에 해당하며, 나아가 정치권의 사법부에 대한 영향력이 과도하게 작용하는 것도 사법의 정치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는 정반대 현상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매우 유사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할 정치와 사법이 서로 섞이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민주화되기 이전의 권위주의 정부에서는 정치가 사법을 지배하는 현상이 주로 문제가 되었다. 이승만 정권 말기 조봉암 사건에 대한 법원의 사형 판결은 사법살인으로 지칭되었으며, 박정희 정권 당시 인혁당 사건도 이와 유사하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정치가 사법을 압박하였던 사례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단서에 대한 1971년 대법원의 위헌판결 이후의 반작용을 들 수 있다. 당시에는 오늘날과 달리 대법관의 재임용이 일반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위헌판결에 찬성했던 대법관이 전원 재임용에서 탈락했고, 1972년 유신헌법을 만들면서 대법원의 위헌법률심판권을 박탈하여 헌법위원회로 이관하였다. 그리고 위헌판결을 받았던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단서를 헌법에 삽입하여 더 이상 위헌이라는 주장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후 대법원은 정치권력에 굴종하였으며, 1972년부터 1987년까지 15년 동안 헌법위원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었다. 이러한 대법원의 소극적 태도로 인하여 1987년 개정된 현행헌법에서는 헌법재판소를 새로 도입했으며, 법원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계속 기피할 것을 우려하여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2항에 위헌소원제도를 규정함으로써 법원이 위헌법률심판제청을 하지 않을 경우에 당사자가 직접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 심판을 청구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가 사법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았다. 그러나 삼권분립이 강화되면서 사법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도 커졌다.
전자의 예로는 대통령의 사법 수뇌부 인사권을 비롯하여, 입법을 통해 사법부의 조직과 활동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사법부 예산의 심의⋅확정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 나아가 판사들이 정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반면에 후자의 예로는 법원이 선거재판 등을 통해 국회의원의 당선 무효에 영향을 미치는 것, 헌법재판소가 위헌법률심판권을 통해 국회의 입법을 통제하는 것, 그 밖에 국회가 탄핵소추한 사건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결정하는 것, 국회 및 국회의원의 권한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 위헌정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해산결정 등이 있다.
이러한 정치와 사법의 상호 영향, 상호 통제는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정치의 영역은 결국 국회를 중심으로 한 입법의 영역이며, 입법과 사법은 삼권분립의 틀 안에서 상호 독립을 전제로 한 견제와 균형의 메커니즘 속에서 작동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정권 당시처럼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민주적 정당성을 앞세워 사법부를 압박하려는 경향이 크다. 반면에 사법부는 법치와 인권의 최후 보루로서 사법부의 위상을 강조하면서 사법부의 독립을 주장한다. 그러나 헌법상의 삼권분립원칙은 입법과 사법의 대등성을 전제로 견제와 균형을 강조한다.
현행헌법상의 권력구조를 제왕적 대통령제라 지칭하는 것은 삼권의 균형추가 대통령과 정부에 쏠려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사법 수뇌부 임명권 등 권한을 축소하는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치(입법)와 사법의 관계는 현행 헌법하에서도 최대한 대등성을 갖추도록 해석되어야 하며. 이를 전제로 한 견제와 균형이 제대로 작동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는 정치다워야 하며, 사법은 사법다워야 한다. 민주정치의 본질은 국민의 다양한 의사를 최대한 수렴하고 이를 조직화하는 가운데 국가 의사를 결정하고, 국가 정책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다. 사법의 본질은 공정한 재판을 통해 법치와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며, 다수결을 앞세운 포퓰리즘으로부터 근본가치를 수호하는 것이다.
양자의 대등성은 상호 존중을 통해 실현되어야 하며, 이를 전제로 한 견제와 균형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 우위를 배척한다. 국회는 사법부의 적절한 활동을 지원해야 하며, 사법부는 예컨대 위헌법률심판의 경우에도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입법)와 사법은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되 적절한 상호통제의 메커니즘을 존중해야 한다. 위헌법률심판에서 강조되는 합헌성 추정의 원칙이나 헌법재판의 기능법적 한계 등은 과도한 통제가 낳을 수 있는 문제점 때문이다.
그러나 거꾸로 불충분한 통제의 문제점은 더욱 심각할 수 있다. 통제되지 않는 입법, 통제되지 않은 사법은 삼권분립을 붕괴시키고, 나아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균형을 무너뜨림으로써 대한민국 헌법질서를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치도 사법도 균형과 절제의 미덕을 갖춰야 한다. 더욱이 상호 존중이 사라지고, 여야의 진영 전쟁과 유사한 일이 정치와 사법 사이에 벌어져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재판을 둘러싼 여야의 법원에 대한 압력은 매우 우려스러운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 ▷경찰청 인권위원회 위원장 ▷전 국회 개헌특위·정개특위 등 자문위원 ▷전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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