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이 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우리 무력에 있어서 제일 중요하고 사활적인 과업은 전쟁, 전쟁에 대처한 준비다…. 공화국 무력은 우리 주권이 행사되는 모든 곳에서 적들의 온갖 침해행위를 강력한 군사적 행동으로 제압할 수 있게, 유사시 부과된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게 철저히 준비돼 있어야 한다.”(노동신문, 24. 11. 18.)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1월 14~15일 평양에서 열린 ‘조선인민군 제4차 대대장, 대대 정치지도원대회’ 마지막 날, “전쟁준비 완성에 총력을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핵 무력 강화 노선은 이미 우리에게 있어서 불가역적인 정책으로 된 지 오래며 이제 남은 것은 지금 당장이라도 핵 무력이 전쟁억제의 사명과 제2의 사명(유사시 선제공격)을 수행할 수 있게 더욱 완벽한 가동 태세를 갖추는 것뿐”이라며 전쟁준비 태세 확립을 지시했다.
올해 6월 19일 열렸던 ‘푸틴-김정은 회담’ 이후 북한과 러시아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고, 북한은 ‘러시아와의 동맹’ ‘고도화된 핵 무력’이라는 두 개의 강력한 지렛대를 배경으로 전쟁 불사를 공공연히 외치고 있다. 이어 10월 중순 이후, 북한은 4개 여단 병력 10,000여 명을 러시아에 파병해 대(對)우크라이나와 전쟁에 참전, 전쟁 양상은 새로운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푸틴은 한국산 포탄의 미국 수출이 확인된 2022년 10월 27일, 모스크바 발다이 국제회의 석상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나 포탄을 제공하면, 한러 관계는 파탄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했고, 북・러의 ‘전략적 협력 강화’ 빌미가 되어 우크라이나 전쟁의 불길이 한반도로 번지고 있다.
지난 11월 17일,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북한의 러시아 파병에 대응, 지금까지의 정책을 바꿔 사거리가 약 300km인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해 러시아 본토 공격을 허가했다. 미국 관리들은 러시아군이 북한군 1만 명이 포함된 5만 병력으로 쿠르스크 탈환전에 나선 것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8월 기습 점령한 자국의 서쪽 영토인 쿠르스크의 일부 지역을 되찾기 위한 대규모 작전을 시작했고, 미국은 북한군도 이 전투에 가담하고 있다고 밝혔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11월 11일, 우크라이나군이 쿠르스크에서 적군 약 5만 명과 교전 중이며 1만1천여 명의 북한군이 배치됐다고 주장했다. 북・러 간에 군사 밀착, 무기 지원뿐만 아니라 파병까지 이뤄줘 우크라이나에서 남북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미사일 사거리 제한 해제에 대해 러시아는 ‘3차 세계대전’을 경고하는 등 북한 파병으로 우크라이나 상황은 미・러 관계 뿐 아니라 미・중 경쟁 및 동북아시아 역내 질서에 영향을 미치는 도화선(trigger)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미 미・중 경쟁이 첨예한 가운데 미・러 갈등도 심화하는 등 정권 교체기의 미국의 혼란스러운 리더십으로 한반도 관련 안보 상황에 ‘전략적 공백’이나 ‘틈새’가 발생할 것으로 북한이 인식할 경우 예측불허의 상황이 전개될 개연성이 높아지고 있다.
아울러 러시아의 의도가 현상 변경 시도에 있고, 중국 역시 이를 미・중 경쟁에 활용할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김정은은 도발이나 무력시위를 벌이더라도 중・러가 이를 옹호할 것이라고 인식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북・중・러와 연대해 무력시위의 강도를 높여 현 상황을 시험하거나 미국의 관심을 유도해 한・미・일 구도를 흔들며 대미 협상력을 높이고자 할 가능성 등 한반도의 정세가 위기로 치닫고 있다.
“한국 괴뢰 족속들을 우리의 전정에 가장 위해로운 제1의 적대국가, 불변의 주적으로 규정하고 (남한 영토를) 점령, 평정하는 것을 국시(國是)로 결정한 것은 우리 국가의 영원한 안전과 장래의 평화를 위한 천만 지당한 조치로…, 평화는 구걸하거나 협상으로 맞바꿔 챙기는 게 아니고. 전쟁은 사전에 광고를 내지 않는다. 적들이 무력을 사용하려 든다면 우리 수중의 모든 초강력을 동원해 적들을 끝내버릴 것이다.” (북한 대외 관영 ‘조선중앙통신’과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2024.2.9.)
김정은 위원장은 조선인민군 창건일 즉 건군절인 지난 2월 8일, 딸 주애와 함께 국방성을 방문, 한국을 괴뢰(傀儡)라면서 헌법을 고쳐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이자, ‘불변의 주적’으로 명기, 남한 점령이 국시, 국가의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선언했다. 지난해 12월 26일부터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조선반도에서 압도적 힘에 의한 대사변을 일방적으로 결정하지는 않겠지만 전쟁을 피할 생각 또한 전혀 없다”며 전원회의에서 남측을 ‘적’이라고 처음 표현했다. 당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사업 부문의 기구들도 정리, 개편하기 위한 대책도 세우라고 지시했다.
이런 발언은 북한이 최근 남조선이란 명칭을 ‘대한민국’으로 변경한 것의 일환으로, 남북 관계를 동족·민족 관계가 아니라 ‘적대적(敵對的) 두 국가’, ‘교전 중 두 국가’ 체제로 보고 ‘대남 방침의 근본적 방향 전환”을 분명히 한 것이다.
지난날 김일성이 ‘남조선 해방’을 명분으로 6.25를 일으킨 시점(時點)이 집권 2년 차인 38세(1912년생)였던 점을 상기하면 올해 40세로 집권 12년 차를 맞는 김정은이 조부 김일성과 ‘이미지 과잉경쟁’ 상태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특히 김일성이 생전에 그토록 염원했던 ‘핵폭탄’이라는 절대무기를 확보한 그의 야망(野望)은 최근의 호전적 발언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대한민국이 우리 국가를 상대로 감히 무력 사용을 기도하려 들거나 우리의 주권과 안전을 위협하려 든다면, 주저 없이 수중의 모든 수단과 역량을 총동원해 대한민국을 완전히 초토화해버릴 것”이라며 “우리와의 대결 자세를 고취하며 군사력 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적대국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제일로 중시해야 할 것은 첫째도, 둘째도 자위적 국방력과 ‘핵전쟁 억제력 강화’”라고 역설했다.
올해 들어 ‘제150탱크사단’을 시작으로 군부대를 집중 방문, 현지 지도하고 있는 그는 ‘김정은식 무력통일’로 “전쟁이 나면 미군 도착 전에 대한민국을 완전 점령·평정·수복해 북한에 편입한다”며 ‘7일 전쟁’ 작전계획을 점검하고 있다. 경의선의 북측 구간도 완전히 끊어버리겠다는 그는 통일, 화해, 동족 개념을 아예 없애고, 80년간 이어온 남북 관계에 종지부를 찍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한반도 전쟁 가능성,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최고조
미국· 중국 등 한반도 전문가들의 ‘전쟁 위기’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 센터의 로버트 매닝 선임연구원은 지난 10월 7일 ‘한반도 전쟁 가능성이 1950년 한국전쟁 이후 가장 높다’고 분석했다. 현대 국제정치의 대가(大家) 한스 모겐소(Hans J. Morgenthau) 교수는 ‘핵보유국’과 ‘그렇지 않은 나라’의 관계를 “일본이 미국의 핵폭탄 공격을 대책 없이 맞고 있었던 것처럼, 핵을 보유하지 않는 나라는 핵을 보유한 적국에 ‘대들다 죽거나, 항복하거나’ 양자택일(兩者擇一)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1월 11일, 북한 전문가로 명성을 쌓아온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해커 교수는 “한반도 상황은 1950년 6월 초반 이후,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하다. 김정은이 1950년에 할아버지가 그랬듯이 전쟁을 하겠다는 전략적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북한 전문매체 38노스)
할아버지 김일성은 전쟁준비가 덜된 상태였지만, 김정은은 6차례나 실험한 핵과 미국까지 사정권에 둔 미사일까지 갖춘 상태다. 한반도 유사시 국제정세상 유엔 개입이나 미국 지원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국토완정(國土完整)’을 주장한 김일성을 모방, ‘영토완정(領土完整)’으로 표현을 바꾼 그가 제2의 6·25를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작년 말 김정은의 ‘영토완정’ 발언은 6·25 1년 전 김일성이 1949년 신년사에서 ‘국토완정’을 주장하면서 소련·중공과 결탁해 남침(南侵)했던 역사적 사실을 연상케 한다.
김정은이 지난해 8월 29일, 한국과의 전면전을 가상한 ‘남(南) 점령’ 전군 지휘 훈련을 하는 지휘소를 방문, 작전 상황을 보고받는 등 그의 계속되는 미사일 실험과 전투부대 점검 행보는 철저한 ‘전쟁준비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이스라엘과 하마스-이란 간의 전쟁이 계속되고, 중국이 ‘대만 점령’을 목표로 전쟁준비를 끝낸 국제 정세가 유엔 개입이나 미국 지원 어려운 한반도의 ‘전략적 공백’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면, 김정은이 선언한 대로 ‘대한민국의 완전한 점령ㆍ평정ㆍ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을 위해 무모한 전쟁을 시도할 개연성이 높다는 점이다.
김정은이 “유사시 핵 무력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수단과 역량을 동원해 남조선 전 영토를 평정하기 위한 대사변 준비에 박차를 가해나가겠다”는 선언, ‘영토완정’을 2023년 ‘수정 헌법’에 명시해 놓아 단순한 허장성세(虛張聲勢)가 아니라는 것이다.
“국력은 방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침략에 있다”(Stärke liegt nicht in der Verteidigung, sondern im Angriff)며 2개월 이내에 승리로 이끈다는 환상에 젖어 당시 동맹국이었던 소련을 독일의 180만 대병력으로 기습 공격했다 패망했던 히틀러. 그를 우상으로 신봉하는 김정은이 ‘조부 김일성’이 못다 한 ‘한반도 영토완정’을 위해 기습적으로 불장난을 벌일지 모른다는 우려가 기우(杞憂)이기를 바란다.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을 뿐 그 패턴·운율을 반복한다는 말처럼 한반도의 전운(戰雲)은 시시각각 짙어지고 있다.
탄핵과 방탄으로 영일(寧日) 없이 정쟁만 일삼는 정치판을 바라보면 전략이 없는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한 선택은 과연 무엇인지 한심하다. 구한말 일본 주재 중국 외교관 황준헌이 <조선책략>에서 당시 망국(亡國) 전야의 조선 상황을 “집이 불타고 있는 줄도 모르고 처마 밑에서 한가로이 노는 제비와 참새가 바로 조선의 처지를 ‘연작처당(燕雀處堂)’”으로 빗된 과거가 상기된다.
박종렬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철학과 ▷중앙대 정치학 박사 ▷동아방송·신동아 기자 ▷EBS 이사 ▷연합통신 이사 ▷언론중재위원 ▷가천대 신방과 명예교수 ▷가천대 CEO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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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한 분석입니다. 여야는 정쟁을 그치고, 특히 야당은 위헌적이고 불필요한 폭주를 멈추고 풍전등화의 국가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나기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