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슈퍼 선거의 해'였다. 미국, EU, 영국, 인도 등 세계 70여 개국에서 선거가 치러지며 리더십이 변화했다. 이 중 단연코 가장 많은 이목이 집중되었던 미국 대선이 트럼프 후보의 승리로 끝나며 마무리 되었다. 리더십이 확정된 각국에서는 내년부터 정책 방향을 확정하고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이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던 정책 불확실성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반가운 일이다.
IMF는 현재 세계 경제가 세 가지 전환(pivot)의 기로에 서 있다고 언급했다. 통화정책, 재정정책, 구조개혁이 그것이다. 더불어 전 세계가 동일하게 겪고 있는 고령화, 인구감소, 기후변화에 따른 리스크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바로 구조 개혁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필수적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트럼프 2.0 시대의 시작과 함께 미국, EU, 중국 등은 내년에도 자국 중심의 정책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성장세가 둔화되는 상황에서 이제는 모든 산업을 자국 안에서 집중하고 키우겠다는 것이다.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 첨단 제조 기업을 육성하고 공급망 내재화를 위한 움직임이 확대되면서 공급망 재편도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얼마 전 EU의 3대 산업협회도 미국을 벤치마킹해서 유럽만의 산업경쟁력을 확대하자고 촉구한 바 있다.
이 가운데 베트남, 인도 등 신흥국에서도 제조업과 첨단 산업 유치를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CIS(독립국가연합)에서는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글로벌 기업의 투자가 몰리며 새로운 공급망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러한 기회를 틈타 역내 공급망 허브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각국의 눈치싸움도 계속된다. 올해 5개의 대선을 치르고 리더십이 바뀐 중남미의 신정부들도 적극적인 개혁 정책과 인프라 투자 등의 경기부양책을 발표하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신흥국에서도 반도체 기업 혹은 AI센터 등 첨단 산업 유치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크다. AI 육성과 디지털 전환이야말로 신흥국들이 빠르게 성장을 달성할 수 있는 성공 방정식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Nvidia)에서는 올해만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 투자 계획을 발표했고, 메타(Meta)와 마이크로소프트(MS)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 클라우드 컴퓨팅과 AI인프라 시설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칠레, 브라질 등에서도 유사한 투자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모든 조치들의 저변에는 자국의 생산성을 높이고자 하는 각 정부들의 바람이 깔려있다. 정부의 의지는 높지만, 그것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기술경쟁력 등 단기간 내 확보할 수 없는 요인들로 인하여 기회가 창출될 수도 있다. 각국이 장벽을 세우는 와중에도 가장 필요한 부분을 제공해 주는 국가와 기업에게는 손을 내밀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많은 국가에서 자국산 우선 사용과 같은 강력한 정책을 발표했으나, 자급국 내 수급이 어려운 분야에 대해서는 해외 기업과 협업하고 있다.
현지에 도움을 주는 기업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연방정부나 주정부가 언제나 우호적인 자세를 취해왔던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특히나 미국은 연방정부의 힘 못지않게 주정부 차원의 정책도 다양하기 때문에 각 주별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면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코트라로 찾아오는 미국 주정부 관계자와 다른 국가의 고위급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부분이 있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우선순위이며, 이 부분에서 한국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를 희망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주정부들은 연방정부의 리더십 변동과 무관하게 주정부 차원의 지원정책이 계속될 것이라고 강력하게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최근 우리 기업들의 투자가 급증한 미국 조지아주에서는 사실상 무상 임차에 가깝게 토지를 제공하며 투자를 유치했다. 로봇 공학, 자율주행 등 첨단기술 공급망을 미국 내에 만들어 준 기업에게는 주정부 차원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인센티브를 주기도 했다. 당파를 떠나서 가장 중요한 점은 본인의 지역구나 국민들에게 이득이 되는지 여부다. 그렇기 때문에 현지의 일자리 창출이나 기술 경쟁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부분은 환영할 수밖에 없다. 다른 예로, 문턱이 높을 것만 보였던 브라질의 경우도 우리 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을 때 대통령까지 나와서 환대를 해준 바 있다. 경쟁상대가 아닌 상생할 수 있는 협업의 파트너로 인식될 때 더 많은 기회가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전력과 인프라 수요가 높아지는 것은 또 다른 기회요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전력분야 초호황기(슈퍼사이클)가 수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급증한 수요 대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라고 한다. 이에 더해 미국의 전력 변압기와 송전선로의 상당수가 노후한 상황으로 이러한 교체 수요가 쏟아져 나올 예정이다. 미국 외 다른 지역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이후로 에너지 안보 필요가 높아진 유럽과, 대규모 전력 프로젝트가 많은 중동 지역의 수요도 높다. 또한 인도와 멕시코 등 역내 제조업 허브로 성장을 꿈꾸며 글로벌 기업 투자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는 국가들에서도 전력 인프라 해결은 정부 최대 과제다.
다가오는 트럼프 2.0시대, 글로벌 시장을 대하기 위한 우리의 자세는 “그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를 면밀히 살펴보고 이 부분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KOTRA는 오는 12월 4일 ‘세계시장진출전략설명회’를 개최한다. 전 세계 84개국 129개 해외 무역관에서 수집한 현장 정보를 통해 우리 기업이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KOTRA의 해외 10대 권역 본부장이 직접 입국해 우리가 나아갈 길을 함께 고민하는 장을 마련할 예정이다.
2025년, 대전환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펼쳐질 것이다. 전환의 과정에서 기존의 틀이 흔들리며 새로운 기회가 펼쳐질 수 있다. 준비된 기업만이 변화의 틈 속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경제통상협력본부장(상임이사) ▷뉴욕주립대(스토니브룩) 테크노경영학 석사▷ ▷KOTRA아카데미 아카데미DX담당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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