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에 미륵은 무엇을 만날까. 인간은 사라지고 쓰레기와 만나지 않을까.”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 산수(山水)’ 속에서 미륵이 미소를 띠고 있다. 석가모니 입멸 56억7000만년이 되는 때 인간세계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할 것이란 미륵. 이 미륵이 사람들의 눈을 피해 폐허 속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미래를 기다리고 있다.
2일 아트선재센터에서 이끼바위쿠르르의 첫 개인전 ‘이끼바위쿠르르: 거꾸로 사는 돌’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과거 미륵은 현실의 고단함에 지쳤던 민중에게 위안을 주며, 일상 속 풍경에 항상 자리했다. 사람들은 길을 오가며 자연스레 미륵에 인사하는 등 미륵을 가까이에서 느꼈다. 삶의 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미륵은 일상 속에서 사라져, 길을 헤매야 겨우겨우 찾을 수 있는 존재가 됐다. 도시 개발은 미륵들이 앉아 있을 자그마한 자리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수도권 외곽, 논, 밭, 시골 등 인적이 드문 곳에서나 간신히 볼 수 있는 이유다. 미륵을 둘러쌌던 풍경 역시 산이나 강, 마을이 아닌 쓰레기로 바뀌었다.
이끼바위쿠르르의 조지은, 고결, 김중원 세 사람은 돌인지 부처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된 미륵 조각상을 찾기 위해 배회했다. 소위 B급이었던 미륵과 관련된 제대로 된 기록조차 없기 때문에 책과 블로그 등 온갖 것에서 단서를 모아 미륵을 찾기 위한 발길을 옮겼다.
그렇게 힘들게 찾아낸 미륵과 주변 풍경들을 산수화처럼 재해석했다. 조지은 작가는 “불교적인 것보다 마을에 가까운 미륵들을 찾아다녔다. 머리만 바닥에 있는 등 사연이 많아 보이는 것들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조 작가는 마을의 수호신이었던 미륵이 이제는 스스로를 지키고 있는 듯 보였다고 한다. “인간의 손길이 뻗치지 않은 장소들에 있었기에, 오히려 (미륵이) 시간을 버티며 자신을 지키는 것처럼 보였다. (미륵이 남아 있는 곳들을 보면) 허름한 축사 옆이나 공장 등 마을 원형이 해체된 곳들이 많다.” 이끼바위쿠르르는 쇠락한 풍경 속에 있는 미륵의 존재를 영상 <거꾸로 사는 돌>에 담아냈다.
전시장 입구와 출구에는 부처님의 손바닥을 표현한 <부처님 하이파이브>(2024)가 있다. 부처님의 손바닥을 형상화한 조형물로, 종교적 이유로 잘리거나 방치돼 훼손된 미륵의 손이 전시장에 불시착한 모습이다. 이끼바위쿠르르는 관람객이 부처와 손바닥을 마주치는 ‘접촉’을 통해 ‘거꾸로 사는 돌’의 풍경으로 접속하게 된다고 생각했다.
<더듬기>(2024)는 미륵 석상의 손과 귀, 의상, 표정 등을 더듬듯 탁본한 것이다. 한지 위에 베낀 숯의 흔적은 미륵을 훑고 어루만진 결과물이다. 조 작가는 더듬기를 “일종의 스킨십”이라고 표현했다. “오래된 어떤 것들을 접촉하거나 일상적으로 친숙하게 느낄 수 있는 경험이 부족하다. 스킨십하면서 이게 무엇일까, 우리의 전통을 어떻게 더듬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평면적이지만 다이나믹한 굴곡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끼바위쿠르르는 미륵이 방치된 채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생명력을 가지게 됐다고 봤다. “생명력을 가지려면 버려져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연결이라는 건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할 수 없다. 이성적으로 환경보전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것. 미륵이 그걸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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