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일치일까? 8년 전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었을 때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이었다. 이번 비상계엄 선포 여파로 윤석열 대통령이 식물 대통령이 된 지금도 트럼프는 미 대통령 당선자이다. 자유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지도자로 한국의 운명을 쥐락펴락할 미국 대통령이 새로 등장하는데 한국의 외교 정점에는 아무도 없다. 게다가 트럼프는 어떤 인물인가? 대외 정책에 있어 누구보다도 개인적인 관계나 친분을 중요시하지 않는가? 그를 만나 얼굴을 맞대고 환심을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한국 외교에 짙은 먹구름이 몰려온다.
다시 8년 전을 돌아보자. 당시 황교안 대통령 대행은 당선자 트럼프와 두어 번 전화 통화는 했지만 직접 만날 수는 없었다. 윤 대통령이 2선으로 물러났고 외교를 포함한 전권을 포기한 지금 상황에서 한덕수 국무총리가 책임 총리로 외교 수장의 역할을 맡을 수는 있다. 그러나 이를 외국에서 얼마나 인정해 줄까? 한국 정국의 혼란 속에 외국 정상의 방문이나 주요 정상회의가 취소나 연기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으로 보인다. 아마 한국의 새로운 지도자가 들어설 때까지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가 개인적인 인간 관계, 나아가서 지도자들과 브로맨스를 얼마나 중요시하는지는 전 일본 총리 아베와의 관계에서 잘 나타난다. 자기 도취적 나르시시스트라고 불리는 트럼프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아베 총리는 트럼프가 취임하기도 전에 뉴욕 자택을 방문해 환심을 샀다. 여전히 집권하고 있던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는 내심 못 마땅해 했지만 아베는 개의치 않았다. 일본의 안보와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미국이 그만큼 중요했기 때문이다. 뉴욕 방문 시에는 골프광인 트럼프의 마음을 얻기 위해 금장 골프채 한 세트를 선물하는 제스처도 보였다.
아베의 전략은 적중했다. 취임 전 많은 대미 무역흑자를 기록하던 일본을 손보겠다고 엄포를 넣던 트럼프는 취임 후 아베를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공식 초청했다. 자신의 플로리다 골프장에서는 거의 하루종일 골프를 같이 치며 깊은 대화까지 나눴다. 아베 총리는 벙커에서 나오다 넘어져 수모를 당했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바야흐로 양 지도자 간에 브로맨스가 싹텄고 그 이후 트럼프의 대일본 정책은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일본 내 큰 이슈인 납북자 문제에 있어 일본 편을 들어 북한에 행동을 요구했다. 통상 문제에 있어서도 일본에는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트럼프는 아베 총리뿐 아니라 다른 지도자들과도 특별히 깊은 친분 관계를 유지하며 이것이 정책에 반영되기도 했다.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인 그로서는 사업상 거래에 있어 개인적 관계가 중요하다는 믿음 아래 외교에 있어서도 이를 적용하려 했다. 특히 자신이 탁월한 협상가라고 믿고 있는 그는 독재자들과 인간 관계를 통해 협상을 타결하려 했다.
대표적인 경우는 역시 북한 김정은과의 브로맨스이다. 임기 초 김정은을 작은 ‘로켓맨’이라고 놀리며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를 통해 북한의 핵 개발을 제압하겠다고 공언하던 그는 곧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통해 문제 해결을 위한 담판을 지으려 했다. 김정은과 햄버거를 같이 먹으며 협상한다면 단번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그는 실제로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양국 간 상당한 협의를 이루어 냈다. 두 번째 하노이 정상회담 파국으로 모든 것은 원점으로 돌아갔지만 트럼프는 아직까지도 김정은과의 브로맨스를 과시한다. 이번 선거 유세 중에는 김정은이 자신을 ‘사랑’하고 ‘그리워'한다는 공언까지 한 바 있다.
그 밖에도 트럼프는 유독 독재자나 권위적인 지도자들과의 친분 관계를 자랑한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한때 ‘천재’라고까지 불렀으며 이번에도 자신이 당선되면 푸틴과의 개인적 관계를 이용해 하루 안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또 자신처럼 대중영합적 극우주의자인 헝가리의 빅트로 오르반 총리에 대한 찬사가 끊이지 않았고 최근 당선 후에는 아르헨티나의 스트롱맨이자 극우주의자인 밀레이 대통령을 자신의 플로리다 리조트에서 만나 새로운 브로맨스를 키워나갔다.
그러나 현재 트럼프와 가장 깊은 브로맨스를 맺고 있는 사람은 역시 테슬라 창업주 일론 머스크이다. 엄청난 정치 자금을 기부하며 트럼프 선거 운동을 열렬히 지원한 머스크를 트럼프는 뜨거운 브로맨스로 보답하고 있다. 선거 후 머스크는 트럼프의 플로리다 자택에 며칠 같이 머물며 새 정부의 정책 구상은 물론 주요 내각 인사 선정에도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런 마당에 한국에서 트럼프와 브로맨스를 키울 사람이 없다는 것은 곧 외교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우방이고 적이고 가리지 않고 관세 폭탄을 매기겠다는 트럼프의 엄포가 현실화되면 이를 막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 경제에는 치명타가 될 것이다. 주한미군 방위 분담금 문제는 어떠한가? 임기 말인 바이든 행정부와 소폭 인상 합의를 받아낸 한국이지만 트럼프는 이를 무효화하고 평소 주장대로 열 배 인상을 통해 한국 측에서 100억 달러를 받아내겠다고 압력을 넣고 있다. 외교 공백을 맞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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