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8시경 출근길은 전날 밤의 비상계엄 여파로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시민들의 피곤한 표정에는 전날 밤 10시 30분경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발표한 순간부터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 모습이 엿보였다. 시민들은 간밤에 얼마나 떨었는지 토로하면서도 아직 불안함을 떨치치 못했다.
영등포구 2호선 영등포역에서 만난 최다은씨(28)는 "계엄령 선포에 대해 믿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며 "새벽에 고향에 있는 부모님과 살아있는지 안부전화를 나누고 꼴딱 밤을 샜다. 내가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오전 8시 50분께 마포구 5호선 애오개역을 지나는 지하철에서는 탑승객 대부분이 굳은 표정으로 계엄 관련 뉴스나 유튜브를 정독하고 있었다. 일부는 9시가 되자마자 주가창을 확인했다.
3시간여만에 끝날 상황에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뾰족한 이유가 나오지 않아 불안은 더 컸다. 박모씨(31)는 “타당한 이유가 없는 계엄령을 국회에서 당연히 반대할 테니 선포하더라도 금새 해제될 거란 걸 짐작하고 있었을 텐데 왜 선포한 건지 이해가 안 되고 국력 낭비였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시민들은 아직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면서도 간밤에 계엄령이 해제돼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이모씨(31)는 "한 시민의 입장에서는 명확한 사유 없이 계엄령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내린 대통령에게 또 한번 실망한 날이었다"며 "어찌보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의 마지막 수단인 계엄령 또한 큰 영향이 없다는게 보여진 사례인 것 같아 역사적인 순간이기도 했다"고 했다.
밤새 국회에서 계엄군과 시민들의 대치 상황을 지켜본 시민들은 '독재 트라우마'를 언급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박경선씨(58)는 "80년대 민주항쟁같은 불행한 역사가 다시 생기나 걱정했다. 그 당시 중1이었다"며 "87년 민주항쟁때는 직장 다녔는데 독재타도, 호헌철폐 시위에 가정사 때문에 참여하지 못했다. 항상 겁이 나서 안한 걸 후회했는데 이번엔 앞장서겠다 다짐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하야하는 게 맞다 탄핵은 복잡해서 본인 하야가 맞고 내란에 준한다 이유없이 군인이 국회를 깨부순 건 내란이다"고 덧붙였다.
대학생 권모씨(25)는 "영화 1987, 서울의 봄에서 볼법한 장면들이 나와서 어이가 없었다"며 "국회에 무장 군인들이 들어오고 통제하는 장면을 보는데 조마조마했다. 광주 출신 시민들이면 알 것이다. 이 장면이 뭘 의미하는지. 윤 대통령은 뭘 믿고 선포한건지 자세히 알고 싶다"고 했다.
신인애씨(59세)는 "계엄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한테 계엄을 꺼냈다. 독재자로 가겠다는 것 아니냐"며 "지 마누라 지키자고 이러는 건가 싶어서 어이가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쏟아내는 시민이 적잖았다. 오전 8시 28분께 서초구 2호선 교대역 인근에서 출근 중인 70대 박모씨는 "탄핵시켜서 국가정상화, 새로운 지도자 뽑아야지"라며 단호히 말했다. 이어 "윤석열이 정상적 사고·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여지껏도 국정운영 심각했는데 이제서야 터졌다"고 비난했다.
특히 경제·사회적 여파는 상관않고 계엄을 선포했다는 데 분노가 컸다. 증권업계 김모씨(27)는 "새벽 3시까지 거래소 상황을 확인하고 잤다. 오늘 열리는 장이 얼마나 요동칠지 걱정된다"며 "대통령이 밸류업이 하고 싶으신거 맞나. 어제 계엄으로 밸류다운 수준이 아닌 국장탈출에 기름 부은 격"이라고 쏘아 붙였다.
광고대행사에 다니는 이모씨(26)는 계엄령 선포 직후 행사가 그대로 진행되는지 술렁였던 회사 분위기를 되짚었다. 서울역에서 오산행 열차를 기다리던 이씨는 "국회에 군인들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잠들었다"며 "퇴근하고 나서도 스트레스와 불안을 주는 게 대통령인가 싶다. 자진 하야가 최선이다"고 했다.
김모씨(35)는 "야근 후 가족과 늦은 저녁 먹는 도중 뉴스 확인했는데 거짓말인 줄 알았다"며 "회사 카톡방에서도 출근 걱정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은 회의 등 잡혀있는 상황이라 뉴스만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고 했다. 김씨는 "회사 정상 출근했지만 분위기는 뒤숭숭하다"며 "경기도 안좋은데 정치 상황까지 예고 없이 터지니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야당 독주가 윤 대통령을 계엄령으로 몰아넣었다는 시각도 있었다.
오전 8시께 교대역에서 출근하던 이혜순씨(66)는 "너무 놀라고 잠을 못잤다.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안타깝다"며 "늦게 자서 출근길이 피곤한 건 상관없다.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몰라 걱정이 더 크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국민 잘못이다. 여야표를 비등하게 주지 못해서 그렇다"며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에게 초점 맞추고 일처리 하는 게 국민 눈에 보인다. 야당의 검사, 감사원장 탄핵도 이해가 안가긴 마찬가지다"고 했다.
마포구 여의도에서 만난 택시운전사 76세 김모씨는 밤새 상황을 지켜보느라 한숨도 못잤다고 했다. 그는 "새벽 4시 반에 나왔는데 국회 앞에선 사람들이 왔다갔다 했었다"고 했다. 김씨는 "여야 떠나 야당이 입법 폭주 하는 거 아닌가. 입법폭주랑 과반의석 때문에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나"라며 "계엄하니 80년대를 떠올리는 것 같은데 그때랑 달리 윤 대통령은 강력한 메세지를 주려 한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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