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호 소동파가 조정에 출사(出仕)하던 무렵, 송나라는 신법파와 구법파의 알력으로 심한 내홍을 겪고 있었다. 황제의 신임을 등에 업은 신법파의 과격한 개혁을 비판적으로 쓴 글이 빌미가 되어 체포된 소동파는 혹독한 심문 끝에 간신히 사형을 면하고 황주(黃州, 후베이성 우한 남쪽)로 좌천되었다. 봉급도 없고 황주를 벗어날 수도 없었으니 사실상의 유배생활이었다. 황주에서 다섯 해를 보내며 동파육 등 숱한 일화와 천고의 명작 '적벽부'를 후세에 남긴 소동파는 1084년 3월, 그의 글재주를 아낀 황제의 배려로 도성에서 가까운 곳인 여주(汝州, 지금의 허난성 루저우)로 거처를 옮겼다.
여주로 가는 도중 소동파는 여산(廬山)을 구경했다. 강서성(江西省) 최북단 구강(九江)에 있는 여산은 북쪽으로 장강을 끼고 있고 동남쪽으로 중국 최대의 담수호인 파양호(鄱陽湖)를 굽어보고 있다. 170여 개의 봉우리와 14개의 호수, 깎아지른 절벽과 기암괴석... 여산은 중국 10대 명산 중의 하나다.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이란 구절로 널리 알려진 이백의 연작시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의 무대이기도 하다. 여산의 서북쪽 기슭에 동림사(東林寺)와 서림사(西林寺) 두 절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10여일 동안 여산의 여기저기를 둘러본 소동파는 마지막 일정으로 서림사를 관람한 후 여산에 대한 총체적 소감을 절 한쪽 벽에 시 한 수로 남겼다. 이 시가 '제서림벽(題西林壁, 서림사 벽에 쓰다)'이다.
橫看成嶺側成峯 횡간성령측성봉
遠近高低各不同 원근고저각부동
不識廬山眞面目 불식여산진면목
只緣身在此山中 지연신재차산중
가로로 보면 산줄기요 세로로 보면 우뚝 솟은 봉우리라
멀고 가까움, 높고 낮음에 따라 모습이 제각각이네.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함은
단지 이 몸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리.
여산의 모습, 앞에서 보니 굽이굽이 산줄기가 이어지고 옆에서 보니 홀로 우뚝 솟은 산봉우리다. 멀리서 보고 가까이에서 보고 보는 장소에 따라서 그 모습이 다 다르다.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여산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비롯된 성어 '여산진면목'은 '사물이나 정황의 진정한 모습을 쉽게 파악하기 어려움'을 비유한다. '제서림벽'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하나의 보편적인 진리를 추출해 내는 '철리시(哲理詩)'의 대표작이다
갈수록 도를 더해가는 여야의 정쟁이 조선을 망국으로 이끈 당파싸움을 떠올리게 한다. 급기야 거야의 의회권력 남용에 분노한 대통령이 자해적 비상계엄 사태를 야기했고 나라는 혼란에 빠졌다. 우리가 과연 이럴 때인가. 나라가 망하는 이유가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 요인 때문이라는 건 고금의 진리다.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을 애써 달래면서 시선을 잠시 밖으로 돌려보자. 북•러 군사 밀착을 비롯해서 세상은 급박하게 돌아간다. 트럼프 관련 뉴스도 우리가 챙겨야 할 중대 사안이다.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운 트럼프의 일거수일투족에 전세계가 전전긍긍한다. 인사(人事)는 차기 미국 정부의 성격을 파악하는 가늠자다. 그런데 트럼프의 파격 인사가 논란의 연속이다. 인사의 잣대는 오로지 충성심과 사적 인연. 이를 충족하기만 하면 후보자의 자질이나 경륜 부족, 범죄 이력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
파격과 논란의 와중에 이례적으로 후한 평가를 받고 있는 인사가 있으니 일론 머스크를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발탁한 일이다. 트럼프가 신설한 정부효율부는 연방정부 예산 삭감과 규제 철폐 등을 다룬다. 이는 트럼프가 주창해 온 ‘세이브 아메리카(Save America)' 캠페인의 핵심이다. 예측 불허의 상상력과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동력으로 삼아 천문학적 부를 일군 혁신의 아이콘 머스크 지명만큼은 비판보다 찬사가 뒤따른다. 그만큼 미국 국민들이 연방정부의 방만한 운영과 과도한 규제에 비판적이라는 의미다. 머스크는 인사 발표 직후 SNS에 "연방기관 99개면 충분하고도 남는다"는 게시물을 올렸다. 428개에 달하는 연방기관을 1/4로 대폭 줄이고 뿌리 깊은 관료주의를 혁파하겠다는 폭탄선언이다.
머스크의 발언이 과연 미국에만 해당되는 얘기일까? 어느 나라나 공무원은 유사한 속성을 띤다. '각종 규제로 조직을 보호하고 복지부동하는 관료주의와 그로 인한 비효율'이 거대 공룡 공무원 조직을 상징한다. 규제는 경제의 걸림돌이요 암세포다. 우리나라도 역대 정부마다 규제 혁파를 외쳤지만 성과는 기대 이하다. 규제 하나를 없애면 되려 새로운 규제 두 개가 생겨났다. 역대 정권 출범 때마다 요란스레 벌인 규제 개혁은 보여주기 쇼로 전락하고 이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유가 뭘까?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이왕이면 친숙한 내부 인사를 쓰는 관행을 우선 들 수 있겠다. 내부에서 찾은 인사는 조직 이기주의에 함몰되기 쉽다.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국방부를 향해 "드론 시대에 F-35 같은 거 만드는 멍청이들"이라고 비난하는 머스크식 도발은 하지 못한다. 주식백지신탁제도라든가 망신주기 청문회 같은 법적 제도적 시스템 역시 머스크와 같은 외부 인사를 쓰고 싶어도 쓰기 어렵게 만드는 장애요인이다.
TV 리얼리티 쇼로 전국적 지명도를 높인 트럼프는 쇼맨십에 능하다. 허나 설사 쇼일지언정 트럼프의 머스크 기용은 '여산진면목'의 철리와 상통한다. 숲속에 있는 사람은 숲을 볼 수 없다. 산속에 있는 사람은 산 전체의 모습을 알기 어렵다. 숲을 벗어나야 숲이 보이고, 산을 벗어나야 산이 보인다. 세상사 역시 그렇다. 벗어나고 거리를 두어야 보인다. 조직의 병폐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내가 그 조직 안에 있기 때문이다. 소동파를 알 리 없는 트럼프도 하는 걸 우리가 못할 까닭은 없다. 인재는 도처에 있으니 소폭의 인사 시스템 개선에 대한 여야 합의만으로도 당장 실행이 가능하다. 망국적 무한정쟁의 질곡에서 허우적대는 우리 처지에 그 간단한 합의조차도 백년하청 아니겠냐만.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여주로 가는 도중 소동파는 여산(廬山)을 구경했다. 강서성(江西省) 최북단 구강(九江)에 있는 여산은 북쪽으로 장강을 끼고 있고 동남쪽으로 중국 최대의 담수호인 파양호(鄱陽湖)를 굽어보고 있다. 170여 개의 봉우리와 14개의 호수, 깎아지른 절벽과 기암괴석... 여산은 중국 10대 명산 중의 하나다. '비류직하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이란 구절로 널리 알려진 이백의 연작시 '망여산폭포(望廬山瀑布)'의 무대이기도 하다. 여산의 서북쪽 기슭에 동림사(東林寺)와 서림사(西林寺) 두 절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10여일 동안 여산의 여기저기를 둘러본 소동파는 마지막 일정으로 서림사를 관람한 후 여산에 대한 총체적 소감을 절 한쪽 벽에 시 한 수로 남겼다. 이 시가 '제서림벽(題西林壁, 서림사 벽에 쓰다)'이다.
橫看成嶺側成峯 횡간성령측성봉
遠近高低各不同 원근고저각부동
不識廬山眞面目 불식여산진면목
只緣身在此山中 지연신재차산중
가로로 보면 산줄기요 세로로 보면 우뚝 솟은 봉우리라
멀고 가까움, 높고 낮음에 따라 모습이 제각각이네.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함은
단지 이 몸이 산속에 있기 때문이리.
여산의 모습, 앞에서 보니 굽이굽이 산줄기가 이어지고 옆에서 보니 홀로 우뚝 솟은 산봉우리다. 멀리서 보고 가까이에서 보고 보는 장소에 따라서 그 모습이 다 다르다. 여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내가 여산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비롯된 성어 '여산진면목'은 '사물이나 정황의 진정한 모습을 쉽게 파악하기 어려움'을 비유한다. '제서림벽'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하여 하나의 보편적인 진리를 추출해 내는 '철리시(哲理詩)'의 대표작이다
갈수록 도를 더해가는 여야의 정쟁이 조선을 망국으로 이끈 당파싸움을 떠올리게 한다. 급기야 거야의 의회권력 남용에 분노한 대통령이 자해적 비상계엄 사태를 야기했고 나라는 혼란에 빠졌다. 우리가 과연 이럴 때인가. 나라가 망하는 이유가 외부의 적이 아닌 내부 요인 때문이라는 건 고금의 진리다. 답답하고 우울한 마음을 애써 달래면서 시선을 잠시 밖으로 돌려보자. 북•러 군사 밀착을 비롯해서 세상은 급박하게 돌아간다. 트럼프 관련 뉴스도 우리가 챙겨야 할 중대 사안이다.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운 트럼프의 일거수일투족에 전세계가 전전긍긍한다. 인사(人事)는 차기 미국 정부의 성격을 파악하는 가늠자다. 그런데 트럼프의 파격 인사가 논란의 연속이다. 인사의 잣대는 오로지 충성심과 사적 인연. 이를 충족하기만 하면 후보자의 자질이나 경륜 부족, 범죄 이력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
파격과 논란의 와중에 이례적으로 후한 평가를 받고 있는 인사가 있으니 일론 머스크를 정부효율부 수장으로 발탁한 일이다. 트럼프가 신설한 정부효율부는 연방정부 예산 삭감과 규제 철폐 등을 다룬다. 이는 트럼프가 주창해 온 ‘세이브 아메리카(Save America)' 캠페인의 핵심이다. 예측 불허의 상상력과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동력으로 삼아 천문학적 부를 일군 혁신의 아이콘 머스크 지명만큼은 비판보다 찬사가 뒤따른다. 그만큼 미국 국민들이 연방정부의 방만한 운영과 과도한 규제에 비판적이라는 의미다. 머스크는 인사 발표 직후 SNS에 "연방기관 99개면 충분하고도 남는다"는 게시물을 올렸다. 428개에 달하는 연방기관을 1/4로 대폭 줄이고 뿌리 깊은 관료주의를 혁파하겠다는 폭탄선언이다.
머스크의 발언이 과연 미국에만 해당되는 얘기일까? 어느 나라나 공무원은 유사한 속성을 띤다. '각종 규제로 조직을 보호하고 복지부동하는 관료주의와 그로 인한 비효율'이 거대 공룡 공무원 조직을 상징한다. 규제는 경제의 걸림돌이요 암세포다. 우리나라도 역대 정부마다 규제 혁파를 외쳤지만 성과는 기대 이하다. 규제 하나를 없애면 되려 새로운 규제 두 개가 생겨났다. 역대 정권 출범 때마다 요란스레 벌인 규제 개혁은 보여주기 쇼로 전락하고 이내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유가 뭘까?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이왕이면 친숙한 내부 인사를 쓰는 관행을 우선 들 수 있겠다. 내부에서 찾은 인사는 조직 이기주의에 함몰되기 쉽다. 백번 죽었다 깨어나도 국방부를 향해 "드론 시대에 F-35 같은 거 만드는 멍청이들"이라고 비난하는 머스크식 도발은 하지 못한다. 주식백지신탁제도라든가 망신주기 청문회 같은 법적 제도적 시스템 역시 머스크와 같은 외부 인사를 쓰고 싶어도 쓰기 어렵게 만드는 장애요인이다.
TV 리얼리티 쇼로 전국적 지명도를 높인 트럼프는 쇼맨십에 능하다. 허나 설사 쇼일지언정 트럼프의 머스크 기용은 '여산진면목'의 철리와 상통한다. 숲속에 있는 사람은 숲을 볼 수 없다. 산속에 있는 사람은 산 전체의 모습을 알기 어렵다. 숲을 벗어나야 숲이 보이고, 산을 벗어나야 산이 보인다. 세상사 역시 그렇다. 벗어나고 거리를 두어야 보인다. 조직의 병폐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내가 그 조직 안에 있기 때문이다. 소동파를 알 리 없는 트럼프도 하는 걸 우리가 못할 까닭은 없다. 인재는 도처에 있으니 소폭의 인사 시스템 개선에 대한 여야 합의만으로도 당장 실행이 가능하다. 망국적 무한정쟁의 질곡에서 허우적대는 우리 처지에 그 간단한 합의조차도 백년하청 아니겠냐만.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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