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내놓은 비상계엄 사태 수습 방안을 두고 정치권에 후폭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위헌 여부에 대해 해석이 갈려 '책임총리제'는 당분간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한 총리와 한 대표는 지난 7일 대국민 공동담화를 통해 "윤 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으로 혼란을 최소화하겠다"며 "당 대표와 총리 회동을 주 1회 정례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총리가 국정운영을 책임지는 '책임총리제'를 시사한 것이다. 책임총리제는 대통령에 집중된 권한을 국무총리에게 위임함으로써 총리가 보다 실질적 권한을 행사하고 책임을 지도록 하는 정치제도다.
책임총리제하에서는 대통령이 아닌 총리가 국무위원 임명·제청권, 각료 해임권 등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한다. '박근혜 탄핵' 국면 등 정치적 혼란 상황에서 주로 거론되는 제도이나, 사실상 이행된 적은 없어 정치적 용어로만 존재해왔다.
그렇다 보니 관련 법 규정 또한 미비한 상태다. 헌법 제71조는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는 국무총리 등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여기서 궐위란 대통령 사망 또는 사임으로 직위가 공석이 된 경우를, 사고란 '질병·해외 체류 또는 기타 사유로 대통령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를 뜻한다.
대통령 자리가 공석일 경우 혹은 불가피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에만 권한을 대행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대통령 자리가 유지되고 있을 경우에는 책임총리제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주장이 나온다.
헌법재판소 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는 아주경제와의 통화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거나 위임받는 경우는 궐위되거나 사고가 있는 때"라며 "윤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유지하되 직무를 집행하지 않는다고 하며 총리와 여당 대표에게 권한을 일임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노 변호사는 "대통령 자신이 직을 수행하지 않을 것이면 아예 사임을 해야 한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통령 권한 행사에 공백이 생긴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라며 "개헌을 하지 않았는데 대통령이 사임하지 않는 상태에서 총리가 권한 대행을 하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한 총리와 한 대표의 공동 국정운영에 대해 '2차 내란'으로 규정하고 "대통령이 유고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슨 근거로 여당 대표와 총리가 국정을 (담당)하겠다는 것인가"라며 "책임총리제 운운은 현행 헌법을 완전 무시하고 나라를 완벽한 비정상으로 끌고 가자는 위헌적·무정부적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현행 헌법 체계하에서도 책임총리제가 가능하다는 반론도 있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7일 아주경제와의 통화에서 "개헌을 하지 않고도 책임총리제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차 교수는 "예컨대 대통령제하에서는 헌법재판소장 자리가 공석일 경우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장을 A로 정한다. 이후 국무회의에서 국무총리와 관계 장관들과의 논의를 거쳐 A를 지명하고 인사청문회를 거친 뒤 국회 동의를 받아 임명된다"며 "책임총리제하에서는 국무총리가 관계 장관들과 협의해 A를 추천하면 대통령이 사인만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어 "쉽게 말해 총리와 대통령의 역할이 바뀐 것"이라며 "주요 결정을 할 때 대통령실이 집권 여당 지도부와 협의하는 '당정협의' 형태와 비슷한 형식의 국정 운영이다. 대통령은 말 그대로 직위만 유지하는 것"이라고 했다.
차 교수의 해석은 한 대표의 발언과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 한동훈 대표는 8일 기자들과 만나 "당 대표는 국정을 행사할 권한이 없고, 총리가 직접 국정 운영을 챙기는 것"이라며 "당 대표가 총리와 함께 국정 운영을 한다는 것은 어폐가 있다. 당은 적극적으로 협의하겠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다만 헌법재판소장이 공석이라 실제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이날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책임총리제의 위헌 논란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답하기 위해서는 헌법재판소가 완성됐을 때 신속하고 공정한 답이 가능하다"고 답했다.
문 권한대행은 "어떤 주장이 헌법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따지려면 발언 당사자가 헌법(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그런 주장에 대한 위헌 여부를 따질 수 있다"며 "다시 한번 입법부와 행정부에 헌재를 조속히 완성시켜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현재 헌법재판관은 지난 10월 이종석 전 헌재소장 등 재판관 3명이 퇴임한 뒤 국회 몫 추천이 미뤄지면서 정원인 9명에 미치지 못하는 '6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민주당은 헌법재판관 후보로 정계선 서울서부지방법원장(55·27기)과 마은혁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61·29기)를 추천하기로 한 상태다.
헌법재판관 선출을 위해서는 인사청문 절차 등을 거쳐야 한다. 결국 '12·3 비상계엄 사태'를 둘러싼 정국 수습 혼란은 쉽게 마무리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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