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쌀로 기울어진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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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물류학부 교수
입력 2024-12-1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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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물류학부 교수사진농림축산식품부
김종인 인천대 동북아국제통상물류학부 교수[사진=농림축산식품부]

21대 국회에서 재의요구권 행사로 재표결 과정을 거친 후 결과적으로 폐기됐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수정돼 국회로 돌아왔다. 현행 양곡관리법과 비교하면 쌀이 수요량 대비 초과됐을 때나 과잉으로 쌀 가격이 과거 대비 하락했을 때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규정한 것이 핵심이다. 

또한 이번 개정안에서는 쌀 공정가격(평년 가격을 기준으로 하되 생산비 등을 고려해 산정)을 신설하고, 쌀값이 공정가격 이하로 하락할 때 정부가 그 차액을 지급하는 ‘양곡가격안정제도’가 추가돼 11월 말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쌀 소비량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변함없는 주식인 쌀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법안이 왜 이렇게 반대에 부딪히고 또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이 법안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을 먼저 명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쌀이 과잉 생산 등으로 가격 하락 현상을 보일 때 정부가 매입하도록 하는 것이 개정안의 핵심이기 때문에 기존에는 이러한 규정이 마련돼 있지 않다고 오해할 수 있다. 

그러나 쌀 과잉 생산 시 매입 기준은 이미 현행 양곡관리법에도 상세하게 규정돼 있다. 다만 개정안은 매입 기준에 부합할 때 정부 매입을 의무화한 것이고 현행 양곡관리법에서는 매입 기준은 규정하되 매입 여부는 정부가 쌀 수급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정하도록 했다. 개정안을 발의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배경 역시 정부 매입의 의무화 여부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매입 기준까지 상세하게 규정했으면서도 매입 의무화에 난색을 표하는 것일까. 아마도 정부는 쌀 매입 의무화가 기존의 구조적 쌀 과잉 구조를 더욱 고착화시킬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에는 논 타작물 재배 지원 계획 수립도 의무화하도록 했으나 이미 여러 해 과잉 생산으로 정부 매입을 실시하고 있는 쌀에 대해 매입까지 의무화하면 타작물 전환이 더욱 감소해 쌀 과잉 생산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 

이미 쌀은 거의 100% 기계화되어 있는 등 재배가 타작물 대비 간편해  쌀과 타작물 간 공정한 경쟁이 어려운 상황으로 소위 기울어진 운동장이 형성되어 있는데, 쌀에 대한 가격 보전 정책을 강화하면 쌀 편중은 더욱 심화되고 과잉 생산은 증대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개정안에는 공정가격이라는 개념을 토대로 ‘양곡가격안정제도’가 추가됐는데 2019년을 마지막으로 폐지된 쌀 변동직불제와 유사한 제도여서 정부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쌀 편중 현상을 더욱 부채질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물론 쌀 생산비가 상승하는 추세 속에서 쌀농가의 수익성은 악화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은 분명히 필요한 상황이다. 그렇지만 쌀도 농산물로서 시장에서 거래되어야 하는 만큼 시장을 배제하고 정책을 펼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쌀 소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상황 속에서 쌀의 수익성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쌀 소비 감소를 최소화하면서도 수요 감소에 대응한 적정 생산을 유도하는 정책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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