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 여의도 등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린 전국 주요 지역에서는 'K-POP'(케이-팝)이 울려 퍼졌다. 집회에 참여한 20~30대 젊은 세대들은 촛불 대신 아이돌 응원봉을 든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방탄소년단, 여자친구, 세븐틴, NCT, 블랙핑크, 스트레이 키즈, 에스파, 뉴진스, 아이브, 빅뱅, 아이유, 소녀시대 등 각종 응원봉이 한자리에 모여 촛불집회 현장을 빛냈다.
가수 응원봉 들고 K팝 노래도 등장
'K팝'이 집회·시위 문화를 바꿔놓고 있다. 이는 팬덤 문화를 이끄는 20~30대들이 '탄핵 촛불집회'의 주축을 이루면서 과거와는 다른 풍경을 만들어내면서 부터다. 과거에는 '임은 위한 행진곡'등 민중가요가 주를 이뤘다면, 최근 열리는 집회 현장에서는 K팝 아이돌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이돌밴드 데이식스의 '웰컴투더쇼',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세븐틴 유닛 부석순의 ‘파이팅 해야지!’, god의 ‘촛불하나'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다같이 부를 수 있는 떼창 파트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의 경우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이 시작될 때 이화여대 학생들이 학내 시위를 벌이면서 부른 곡이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의 노랫말 중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제 안녕' 등이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는 이들에게 힘을 복돋아 준다는 평을 지니고 있다.
응원봉은 우선 집회문화에서 촛불을 대신할 수 있는 효율성을 가지고 있다. 응원봉은 배터리를 완충하면 7~8시간 안팎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바람이 부는 겨울에 촛불은 쉽게 꺼지거나 위험한데 응원봉은 그럴 걱정이 없다. 또 응원봉에 원하는 문구를 붙여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네모 디자인을 가진 모 팬덤 응원봉에 '탄핵'이라는 글자를 붙여 흔들고 있는 팬도 있었다.
친구와 함께 응원봉을 들고 촛불집회에 참가했다는 30대 A씨는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나가자는 다른 팬의 연락을 받았다. 촛불이 아닌 응원봉을 가지고 나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10대 B씨는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뤘다. 촛불 집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집에서 응원봉을 챙겨서 나왔다"고 했다.
외신들도 'K-집회' 주목
AFP통신은 7일(현지시간) "윤 대통령이 국회에 군을 투입해 의원들을 체포함으로써 '시민의 지배'를 중단시키려 한 이후 서울의 중심부 광장부터 국회의사당에 이르기까지 시위가 일어났다"며 "K팝 속에서 참가자들이 즐겁게 뛰어다니고, 형형색색의 응원봉과 LED 촛불을 흔드는 등 일부 시위는 댄스파티를 연상케 했다"고 전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도 7일(현지시간) 국회 집회 상황에 대해 "국회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커다란 스크린과 음향 장비들이 설치됐고, 연사들과 공연자들이 구호와 노래를 부르며 군중을 이끌었다"며 "노랫말들은 윤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고 전했다.
NYT는 "국회 주변 세 곳의 지하철역이 폐쇄됐지만, 사람들은 계속 몰려들었다"며 "사람들은 거의 일주일간 이어진 추운 날씨에 대비해 담요를 두르고 손팻말을 들었고, 멀리서부터 음악과 구호가 들려왔다"고 묘사했다.
K팝 가수들도 직접적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내기보다는 집회에 참여한 팬들에게 조용한 응원을 전하고 있다.
B1A4 공찬도 "날씨 많이 추운데 따뜻하게 입었지? 추운데 주말인데 너무 고생했다. 집에 조심히 돌아가고, 들어가면 따뜻한 물 마시고 따뜻하게 쉬어.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샤이니 온유는 팬 커뮤니티를 통해 "너무 춥지 않게 따뜻하게 입고 핫팩도 꼭 챙겼으면 좋겠다"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제로베이스원 박건욱도 "다치지 말고 핫팩 주머니에 꼭 넣고 다니라"면서 "잔소리는 미안하지만 그래도 걱정되니까"라고 전했다.
원위 강현은 팬 플랫폼 메시지를 통해 "유난히 더 춥고 밥은 먹었는지 한 번 더 물어보고 싶은 하루"라며 팬들의 안부를 물었고, 엔믹스 규진은 "따뜻하게 입었지? 핫팩 필수, 장갑도 꼭"이라고 팬들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이색 깃발'까지 등장
응원봉 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이색 깃발'도 들고 나왔다. 이런 '이색 깃발'을 들고 있는 이들은 대체로 젊은 세대들이다. '얼죽아 협회 서울지부', '걷는 버섯 동호회', '걸을때 휴대폰 안 보기 운동본부', '눈사람을 안아주세요', '이미 선택된 좌석입니다'등 집회와의 연관성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깃발들이 거리를 뒤덮었다.
이 밖에도 '전국 수족냉증 연합', '전국 혈당 스파이크 방지 협회'등의 깃발을 든 이들도 국회 주변을 행진하며 "탄핵하자"라고 외쳤다.
이러한 '아무말 깃발 대잔치'는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 특정 단체와 무관한 시민들까지 거리로 나서면서 노동·시민단체나 노조 이름 등을 패러디한 깃발을 만들고 시위에 참여한 것이 시작이었다.
눈길을 끌었던 깃발로는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패러디한 '전견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을 패러디한 '전국화분안죽이기실천시민연합', 민주노총을 따라한 '민주묘(猫)총' '만두노총 새우만두노조'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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