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내달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본격 대비에 나섰다. 미국과의 무역 갈등 심화로 인한 수출 둔화를 고려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통화정책을 완화 기조로 전환하고, 내수진작을 내년 경제 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꼽으며 대대적인 부양책을 예고했다.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에 대한 보복성 조치도 내놓으며 맞불 대응을 시사했다.
10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은 전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주재로 회의를 열고 내년 경제 정책 기조 역시 ‘온중구진(穩中求進·안정 속 성장 추구), 이진촉온(以進促穩·성장을 통한 안정 촉진)을 견지한다고 밝혔다. 핵심은 이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재정 정책과 적절히 온건한 통화정책을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한 데 있다. 이는 통화정책 기조를 올해 '신중한'에서 내년에는 '적절히 온건한'으로 전환해 경기를 띄우겠다는 뜻이다. 아울러 ‘보다 적극적인 재정 정책’은 재정 적자율 목표치를 3%(올해 목표치) 이상으로 상향 조정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블룸버그 통신은 짚었다.
중국이 통화정책 완화 기조를 채택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발발 직후인 2009년이 마지막으로, 2011년에 '신중' 기조로 전환한 이후 올해까지 유지해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중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10%인 4조 위안에 달하는 대규모 부양책을 펼치며 경기 안정화에 나섰지만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았고, 이에 지방정부 부채 급증 등의 부작용을 겪으면서 대규모 부양책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부동산 침체,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압박 등으로 경기가 좀처럼 회복세를 타지 못하자 칼을 빼든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국은 이날 회의에서 '소비 진작'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지난해 '기술 혁신'에 밀려 두 번째로 언급됐던 것과 대비된다. 트럼프가 중국산 제품에 60%의 폭탄 관세를 예고한 데다 유럽연합(EU)도 중국의 과잉생산 문제를 지적하며 관세 장벽을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내수를 진작해 수출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호주뉴질랜드은행(ANZ)의 싱 자오펑 중국 수석 전략가는 "이번 정책 기조는 트럼프의 관세 위협에 맞선 강력한 자신감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 안정화 필요성도 언급됐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되지 않았다. 이날 논의된 내용은 11∼12일 예상되는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확정되며 이 회의를 통해 설정된 내년도 성장률 목표 등 경제 정책 방향은 내년 초 전국인민대표대회 정부 보고에서 공식 발표된다.
다만 통화정책 완화 등으로 인한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는 중국 정부가 실제 이 같은 정책을 어느 정도로 이행할지는 미지수다. 모건스탠리의 로빈 싱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정치국 회의에 대해 “10년 만에 가장 적극적인 부양 톤을 발산했다”면서도 “(톤은) 매우 긍정적이지만 실행은 여전히 불확실하다”고 짚었다.
美 반도체 수출 통제에 보복 조치...기술전쟁 대비
한편 이번 정치국 회의에서 작년 최우선 과제로 꼽았던 과학기술 혁신은 뒤로 밀려났지만, 중국은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에 대한 보복 조치를 잇따라 내놓으며 미국과의 기술전쟁에도 대비하고 있다.중국은 중국산 갈륨, 게르마늄 등의 미국 수출을 금지한 데 이어 9일 엔비디아의 반독점법 위반 혐의 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핵심 전력인 드론 부품의 미국, 유럽 판매 제한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10일 블룸버그는 익명의 관계자들을 인용해 최근 중국 제조업체들이 드론 제작에 사용되는 주요 부품들의 미국, 유럽 판매를 제한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는 중국 정부의 드론 수출 통제 조치의 예고편 성격으로 중국은 빠르면 내년 1월 드론 부품들에 대한 더 강력한 통제 조치를 실시할 것으로 블룸버그는 내다봤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