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이 빠른 속도로 위축되고 있다. 제조업 생산지수는 2021년 4분기 115.1에서 2023년 4분기 112.7 그리고 2024년 3분기 109.4로 낮아졌다. 3년 사이에 지수가 5%(5.7포인트) 내려앉은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2021년부터 2024년까지 3년 동안 약 8% 이상 실질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실질생산은 5% 뒷걸음쳤다. 제조업 생산이 위축되고 붕괴되면서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제조업 비중도 꾸준히 내려왔다. 2011년에는 그 비율이 거의 30%에 달하였으나 2021년에는 26.2%로 떨어졌고 2023년에는 25.6%로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한국 제조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폐업 통계를 봐도 나타난다. 2023년 폐업자 수는 4만2280명으로 최근 4년 중 가장 많았다. 신규 사업자에 대한 폐업자 비율은 91.7%로 2011년 이후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2024년 통계는 이보다 훨씬 높을 것이 확실하다.
그러나 제조업생산 하락은 제조업 전체의 그림일 뿐 개별 제조업종으로 들어가 보면 상황은 너무 판이하다. 2021년 4분기를 기준인 100으로 놓고 볼 때 2024년 3분기 현재 제조업 생산지수가 100을 넘는 제조업 업종은 25개 업종 중 20%인 5개 업종에 불과하다. 음료(108.7), 담배(119.9), 의약 및 의료용품(140.5), 자동차(104.3), 기타운송장비(124.8) 등이 2021년 4분기에 비해 2024년 3분기 생산량이 더 많은 제조업종이다. 나머지 80%인 20개 제조업의 생산 규모는 2021년 4분기에 미치지 못한다. 2024년 3분기 생산이 가장 저조한 8개 제조업은 가죽가방 65.8, 가구 67.8, 목재 70.4, 의복 76.1, 비금속광물 76.4, 인쇄 78.2, 전기장비 79.0, 그리고 섬유 79.3으로 이들 8대 제조업 생산은 지난 3년 동안 생산이 20% 이상 축소되었다. 이런 제조업종을 '초위기 제조업(A-TIER)'이라 부르기로 하자. 2021년에 비하여 2024년 생산이 100에 못 미치는 12개 제조업 업종으로는 화학물질, 일차금속, 식료품, 종이, 전기가스, 의료기기, 플라스틱, 전자컴퓨터, 금속가공, 석유제품 등이며 이들 제조업은 '위기 제조업(B-TIER)'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2024년 생산지수가 2021년보다 높으므로 위기에 처했다고 보기는 어려운 나머지 5개 제조업, 즉 의약품, 조선 등 기타 운송장비, 담배, 음료, 자동차는 '정상 제조업(C-TIER)'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제조업을 위기의 정도에 따라 초위기 제조업과 위기 제조업, 그리고 정상 제조업으로 구분하는 이유는 제조업이 모두 같은 상황에 처해 있지 않기 때문에 대응 방안이 달라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제조업은 국제적 경쟁력이 있어서 생산과 영업이 활발한 반면 그렇지 못한 제조업도 있으므로 이를 구분하여 원인을 구분하여 분석하고 대처 방안을 구별하여 모색해야 한다.
제조업 위기의 가장 근본적인 외부 원인은 중국 등 경쟁국 제조업의 추격이다. 우리나라 제조업체들은 국내 시장뿐만 아니라 수출시장에서도 중국 등 경쟁국 제품 때문에 수출이나 수주에 심각한 영향을 받고 있다. 2228개 제조업체에 대한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총 제조업체 중 69.7%가 중국산 제품 때문에 실적에 영향을 받고 있거나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수출 제조업체 중에서는 77.7%가 중국 제품에 의해 타격을 받고 있으며 내수 제조업체들도 67.5%가 영향을 받고 있거나 받을 공산이 크다고 했다. 중국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응답한 제조업체는 30.3%에 불과했고 특히 수출기업은 그 비율이 22.6%로 낮았다. 제조업 위기의 결정적인 원인은 중국 요인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제조업 위기의 내부적 원인은 초저임금 구조, 고령화, 취약한 자본력과 열악한 작업환경 등이다. 의류제조, 의료기기, 인쇄, 가구, 가죽구두, 기계금속, 가방, 가발, 기타 제조업 등은 최악의 작업환경과 낮은 임금 속에서 갈수록 경쟁력을 잃고 도태되어 가고 있다. 도심 제조업의 대표 격인 의류봉제업은 2020년 1만6000개에서 1만4000개로 약 2000개(11.6%) 사라졌다.
제조업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은 위기 군별로 다르게 적용되어야 한다. 초위기 제조업체에는 구조조정 정책을 위주로 적용하고, 위기 제조업체에는 경쟁력 회복 정책 중심으로 적용하며, 정상 제조업에는 경쟁력을 유지 선도하기 위한 정책을 중심으로 적용해야 한다. 즉, 자립생존이 거의 불가능한 제조업체는 구조조정 대상 업체(A-TIER업체)로 지정한 뒤 필요한 지원정책을 적극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구조조정 대상 업체(A-TIER) 지원 정책으로는 M&A를 통하여 대형화나 겸업화를 통하여 경쟁력을 보강하게 하거나 이종 혹은 유사 업종으로 업종 전환을 유도하도록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동종 유사업종 업체 다수가 합병하여 대형화하려고 할 때 정부가 매칭 펀드를 조성하여 지원할 수도 있고 금융 지원을 제공할 수도 있다. 제조업체 운영자가 전업을 하고자 할 때에는 필요한 직업교육을 지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쟁력 회복 지원업체(B-TIER)에는 기술개발(R&D) 투자 지원, 설비투자 지원, 신규 시장 개척 지원, 그리고 인적자원 교육투자 지원으로 나누어 필요한 수준에 맞추어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제조업의 선도력을 유지하고 있는 제조업체(C-TIER)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으로는 개발투자, 기술투자, 설비투자, 인력교육지원, 신규 시장 개척 등을 들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전통 뿌리산업의 중요성이다. 미국은 2008년부터 제조업의 중요성을 인식했지만 첨단 제조업과 기초과학 연구에만 집중한 결과 지난 10년간 가시적 성과가 없었다. 이런 반성에 입각하여 미국은 2001년부터 전통제조업, 즉 뿌리산업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정부 차원에서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전통 소부장 제조업은 당장의 실적이 아니라 먼 안목을 보고 평가·판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경쟁력은 한류라기보다는 제조업이며, 특히 전통제조업이 도태되면 한국에는 미래가 없다.
구조조정 대상 업체(A-TIER)에 대한 지원 정책으로 M&A를 통해 대형화나 겸업화함으로써 경쟁력을 보강하게 하거나 이종 혹은 유사 업종으로 업종 전환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경영자문과 함께 법률적인 자문지원이 필수적이므로 경영자문기관과 법률자문기관의 제도적인 참여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인적교육이 필요할 때에는 경영전문 교육기관의 협조도 동원해야 한다. 대형화나 겸업화를 유도하기 위한 매칭펀드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재정자금이나 금융기관 혹은 투자기관의 협력도 필요하다.
경쟁력 회복 지원업체(B-TIER)나 선도력을 유지하고 있는 제조업체(C-TIER)에는 기술개발(R&D) 투자 지원과 설비투자 지원을 위한 막대한 자금 수요가 발생하므로 펀드를 조성하거나 아니면 특수목적의 투자기구를 설립하거나 제2의 기업은행 설립과 같이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금융기관을 설립하여 대처할 수도 있다. 인력교육과 관련해서는 경영전문교육기관의 협조를 받게 하고 신규 시장 개척은 코트라 혹은 외교기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야 할 것이다. 제조업의 위기 극복은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막대한 자금과 정부 당국의 굳은 결의가 필요할뿐더러 오랜 기간을 필요로 하는 과업이다. 정부의 강한 집념 없이는 성공하기 어려우므로 대통령 직속으로 위원회가 구성되어야 하지만 현존하는 소부장 경쟁력강화위원회로는 광범위한 제조업 구조조정정책을 수행할 수 없다. 또 입법부를 통해 '제조업 위기극복 5개년 계획'과 같은 중장기 플랜이 꼭 수립되어야 성공할 수 있다.
신세돈 필자 주요 이력
▷UCLA 경제학 박사 ▷한국은행 조사제1부 전문연구위원 ▷삼성경제연구소 금융연구실 실장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