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전날 부서장급(국·실장) 75명 가운데 금융시장안정국장을 제외한 74명을 바꾸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이 가운데 절반인 36명은 새로 승진했고, 부서장 가운데 32명은 평사원으로 강등됐다.
기수별로는 국·실장급을 기존권역·공채1기에서 공채 1~4기(2000년~2003년 입사) 및 경력직원으로 대폭 하향하고 공채 5기(2005년)까지 본부 부서장을 배출했다.
이복현 원장이 그동안 '성과중심'의 인사기조를 강조해온 만큼 이번 인사 역시 성과를 중심으로 한 세대교체에 방점이 찍혔다. 지금까지 금감원 국장들은 71~75년생이 주를 이뤘던 가운데, 77년생까지 확대되며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대규모 물갈이었다. 비상계엄 사태 여파가 금융투자쪽에도 이어지고 있지만, 이복현 금감원장은 오히려 인사 시기를 앞당겼다. 인사 발표 직전 금감원 한 관계자는 “이복현 원장은 금융시장과 별개로 인사는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회의에서 언급했다”면서 “최일선에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가장 최우선이라고 판단한 듯하다”고 전했다.
이 원장의 인사 뒤에는 늘 파격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번 인사에서도 같은 권역별이 아닌, 가상자산·은행·금융투자 등 간의 대규모 국장급 이동이기 때문이다. 이 원장이 처음 취임했던 2022년 정기 인사에서도 국장급 70%가 교체됐고, 60년대생 국장의 용퇴가 이뤄지는 등 당시에도 대규모 조직개편이 있었다.
이 원장의 잦은 인사로 금감원 내부에서는 국·실장급 인력의 업무 연속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직원들은 이미 익숙하다는 반응이다. 한 관계자는 “이번 인사에서 가장 파격은 77년생 부서장 등용이다”면서 “검사 노하우는 각 권역별 부서장과 검사역을 이동시켜 사안들이 공유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부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타 부서로 이동한 한 금감원 관계자는 전날 인사와 관련해 오히려 외부의 시각은 어떤지 되물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해당 관계자는 따로 부연은 하지 않았지만, 현 체제가 얼마나 갈 수 있을지 후임 원장이 온다면 또 어떻게 조직이 바뀔지, 짧은 한숨으로부터 복잡한 심경이 느껴졌다.
금감원 내부에서는 이번 인사로 이복현 원장의 친정 체제가 더 강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임기 막바지에는 후임을 고려해 변화보다는 안정을 택하지만, 이 원장은 대규모 수술을 단행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은 “최근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 확대와 관련해 조직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 총력 대응하기 위해 조직개편과 국실장 인사를 시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외부에서는 우려 섞인 시각이 팽배하다. 현 정권이 계엄령 사태에 이어 탄핵으로 치닫고 있는데, 인사 개편이 조직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당장의 인사는 미뤄도 되지 않았느냐는 의견이 나온다.
이 원장은 취임 이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와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등 수천억원대의 금융사고가 잇따랐다. 임기가 반년이 남았지만 자본시장법 개정, 가계대출, 티메프 사태, 우리금융지주 부당대출, 금융사 내부통제 리스크, 고려아연 유상증자 이슈 등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산적해 있다.
이 원장은 "반드시 직을 걸고 완수하겠다"고 밝혔지만, 새로 인사 배치된 담당자들이 얼마나 빠르게 업무를 파악·적응하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지 업계에선 걱정한다. 아울러 임기 만료 후 원장직이 바뀐다면, 업무 담당자들은 1년도 안돼 또 다시 조직 개편으로 인한 인사 이동 대상자에 오르게 된다.
시장은 현 정치 상황에 더 깊은 침체기에 빠졌다. 1년 가까이 금융당국이 공들였던 밸류업 정책은 개인의 ‘국장 탈출’에 이어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까지 이어지면서 더욱 어려워졌다. 감독원장도 외신 인터뷰까지 나서며 국내 증권 시장은 건재하다고 말하지만, 개인 투자자들의 패닉셀로도 이어졌다. 외인과 개인의 이탈 이유는 명확하다. 기업의 펀더멘탈이 아닌 정치 문제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소임을 다하려는 감독원장에 박수를 보낸다. 그럼에도 시장은 말한다. 당장 인사는 급하지 않다고, 정치 문제로 멈춘 경제 시계는 결국 정치적으로 풀리는게 가장 급선무라고 말이다. 그래야 감독원장이 바꾼 파격 혹은 혁신적인 조직 개편도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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