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에 '빨간불'이 켜졌다. 주가가 급락하면서 주식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이 어려운데 회사채 시장까지 막혀 발만 동동 구르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1주간 유상증자 일정을 미루거나 유상증자 결정을 철회한 상장사는 32곳 중 11곳이다. 일정을 변경한 곳은 모두 코스닥 상장사로 자금 조달이 마땅치 않은 모습이다.
채권 발행시장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4일부터 10일까지 회사채 발행액은 -2920억원으로 집계됐다. 순상환 기조다. 지난달부터 이달 3일까지 회사채 발행규모는 4조1024억원으로 순발행을 기록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순상환 기조로 돌아섰다.
이달 초까지만 해도 금리가 내려가면서 이례적으로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수요가 높았다. 지난달 11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와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각각 인하하면서 시장금리가 빠르게 하락했다. 1개월 전 AA-급 3년물 회사채 금리는 3.468%에서 이달 10일 3.175%까지 낮아졌다.
채권시장은 금융당국의 유동성 무제한 공급, 채권시장안정펀드 등 시장 조치로 안정세를 보였지만 기업들은 순발행에서 순상환으로 돌아섰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에도 국내 채권시장은 정치 리스크보다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후 기대 인플레 상승, FOMC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정치적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영향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는 정치 리스크가 장기화할 경우 한국의 신용도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무디스도 한국의 정치적 긴장으로 경제에 지장을 초래하는 상황이 장기화하면 국가 신용도에 부정적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불황 업종, 비우량물 등에 대한 투자자들의 외면도 지속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올해 시장에선 업종별로 차별화가 나타났다. 건설·화학업종은 부진한 성적표를 받았다. 효성화학은 올해에만 세 차례 공모채 시장을 두드렸으나 모두 미매각을 기록했다. 여천NCC, GS건설, 동화기업, 롯데건설 등도 목표자금을 채우지 못했다.
김상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시장 참가자들은 어떤 것을 받고 어떤 것을 받지 말고 연말을 넘겨야 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 이외에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의 대응전략은 초우량물은 일단 받고 비초우량물은 관망하자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1분기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는 약 27조원이다. 내년 1월 한진칼(BBB, 100억원)을 시작으로 CJ프레시웨이(A, 1000억원), 대한항공(A-, 1360억원), HD현대케미칼(A, 2080억원), SK렌터카(A, 1310억원) 등 비우량 등급 기업도 만기가 도래한다.
공사채가 투자 수요를 흡수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내년 만기가 돌아오는 공사채는 총 65조4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AAA급 우량 공사채 발행이 늘어나면 신용도가 낮은 기업의 회사채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떨어질 수 있다.
김명실 iM증권 연구원은 "정치적 불안정의 확대는 국가 신인도의 하락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며 "롯데케미칼 등 기업 펀더멘털 이슈가 현재 가세해 있어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 국내 펀더멘털에 의해 회사채 시장이 좌우된다는 점으로 미뤄보면 현재는 약세 재료가 우세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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