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이 의결되면서 갈 곳을 잃었던 대기 자금의 '머니 무브'가 빨라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트레이드'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미국 주식과 가상자산으로 자금이 대거 이동할 것으로 내다봤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비상계엄 사태 이후 시장에 불안감이 커지면서 5대 은행(신한·국민·하나·우리·NH농협)의 요구불예금은 비상계엄 선포 직전인 이달 3일 600조2615억원에서 지난 13일 618조9623억원으로 열흘 만에 20조원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탄핵 직후인 4일에는 하루 만에 8조원대 급증했고 9일 단 하루를 제외하고는 매일 증가세를 기록했다. 수시입출금계좌인 요구불예금은 연 이자가 1% 미만으로 매우 낮지만 언제든 꺼낼 수 있기 때문에 통상 대기성 자금으로 분류된다.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이어지는 탄핵정국으로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요구불예금 계정으로 몰린 것이다.
지난 14일 탄핵안 가결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개인예금은 주로 미국 주식과 가상자산 등으로 이동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나스닥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2만선을 돌파하는 등 미국 증시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17일 열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회의 결과에 따라 미국 증시는 더욱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비트코인 역시 이날 한때 10만6500달러를 돌파하는 등 고점을 높여가고 있다. 미 대선 당일 7만 달러 아래에서 거래되던 비트코인은 이후 50% 넘는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주말 미 경제 매체 CNBC 방송과 인터뷰하면서 "미국이 석유 비축 기금과 같이 비트코인 전략적 비축 기금을 추진할 계획이 있다"고 밝힌 것이 비트코인 가격을 끌어올렸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당선자의 재집권 확정으로 달러 가치와 미국채 금리가 급등하면서 미국 펀드 역시 최선호 투자처로 꼽히고 있다. 연말 세액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 연금저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으로도 자금이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증시에 대해서는 당분간 강한 반등 랠리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다만 코스피 지수가 과거 금융위기 수준인 주가순자산비율(PBR) 0.85배 수준까지 떨어지는 과정에서 국정 혼란 리스크 상당 부분이 주가에 반영된 만큼 장기적으로는 분할 매수하는 수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난주까지만 하더라도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고객들이 갖고 있는 자산을 지키고 관망하는 분위기가 짙었다"면서 "주말이 지나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된 만큼 예금 대신 고수익 기대 상품으로 자금이 본격적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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