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공언한 관세 정책이 차츰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이 취임하면 상호주의에 입각한 관세 정책을 시행함과 동시에 관세를 협상 도구로 사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16일(이하 현지시간) CNN, 폴리티코 등 외신들에 따르면 트럼프는 이날 플로리다에 있는 자신의 저택 마러라고에서 대선 후 첫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외교, 국경, 관세 등 다방면에 걸쳐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지명자와 함께 한 이번 기자회견에서 "관세가 우리 나라를 부유하게 할 것"이라며 관세를 재차 강조했다.
트럼프는 "우리는 다른 나라들을 매우 공정하게 대우할 것"이라며, 만일 인도가 미국산 자전거에 100%의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역시 인도산 자전거에 같은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예시를 들어 말했다. 그는 또 관세를 도구로 활용해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며 "우리는 훌륭한 협상을 할 것이고, 우리는 모든 카드를 쥐고 있다"고 언급했다.
트럼프가 관세 정책을 주도할 인물로 지목한 러트닉 역시 이날 "상호주의가 우리의 주안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상대방은 우리를 대하는 태도만큼 대접받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중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관세를 부과하고 중국 수입품에 대해서는 6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뿐만 아니라 대선 승리 후 지난달에는 마약류와 불법 이민자의 미국 유입을 막기 위해 멕시코와 캐나다의 모든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에는 별도로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에 미국 기업가들과 경제 전문가들은 고관세 실행 시, 상품 가격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재점화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해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가 상호주의를 강조함과 동시에 관세를 협상 도구로 사용하겠다고 밝히면서 한층 유연한 관세 정책을 취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8일 NBC와의 인터뷰에서 관세 부과에 따른 소비자 부담 증가에 대한 질문에 "시장이 대처할 것"이라면서도 "시장이 못한다면 우리가 그것을 다소 조정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 역시 트럼프가 멕시코와 캐나다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할 때 이민과 마약이라는 무역 외 이슈를 거론한 것은 관세 집행보다는 장기 관세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함이라고 진단했다.
트럼프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최근 애플을 비롯해 주요 빅테크 총수들이 잇따라 자신을 찾고 있는 것과 관련한 언급도 내놓았다. 그는 "1기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1기 때는 모두가 나와 싸웠다"며 "지금은 모두가 내 친구가 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이날 트럼프를 찾은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앞으로 4년간 미국에 1000억 달러(약 143조600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고, 트럼프는 손 회장을 “위대한 지도자이자 투자자”라고 추켜세웠다.
한편 이날 로이터가 내부 문건을 입수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트럼프 정권인수팀은 전기차 보조금을 폐지하는 것을 비롯해 조 바이든 정부의 전기차 및 충전소 지원 정책을 대폭 축소하는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인수팀은 배터리 및 소재에 대해서는 "방산 생산에 핵심적"이라고 평가하면서, 미국 내 생산 촉진을 위해 먼저 관세를 부과한 후 동맹국들과 개별적인 협상을 통해 세부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자동차업계의 전기차 전환과 탈중국 배터리 공급망 확립을 함께 추진했던 바이든 정부의 접근 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것으로, 로이터는 "인수팀의 많은 방안은 미국 내 배터리, 특히 방산용 생산을 장려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했다. 이어 "다른 방안들은 전기차 생산업체까지 포함해 미국 내 자동차업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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