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인공지능(AI) 반도체 투자가 지속되는데 삼성전자는 부진한 주가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제2의 엔비디아로 급부상한 브로드컴이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을 견인하더라도, AI 반도체 핵심 구성요소인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 주도권 경쟁에서 밀려난 삼성전자는 수혜 대상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관측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삼성전자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2.52% 내린 5만4200원에 마감했다. 이날 외국인들이 코스피에선 총 7127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1.29% 끌어내렸는데, 2325억원 순매도를 기록한 삼성전자가 하락세를 주도했다.
지난 11월 26일 종가 기준 5만8300원이던 삼성전자 주가는 7.03% 떨어졌다. 외국인들이 11월 27일부터 15거래일 연속 순매도하면서 상승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 기간에 외국인이 순매도한 삼성전자 주식은 2조1402억원어치에 이른다.
앞서 IT매체 디인포메이션 보도로 통신용 반도체 제조사 브로드컴이 '애플과 자체 AI 칩 개발에 나섰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미 증시에서는 전 거래일 대비 11.21% 급등한 25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국내 증시에서도 SK하이닉스(2.62%), 한미반도체(3.46%), 피에스케이홀딩스(4.62%) 등 반도체 대형주와 장비주가 올랐지만, 삼성전자는 훈풍을 받지 못한 것이다.
이날 주가 상승세를 나타낸 종목들의 공통점은 HBM 밸류체인에 속해 있다는 점이다. HBM 밸류체인에 속한 종목들은 올해 AI 반도체 대장주 엔비디아와 동조하는 움직임을 보여 왔다. 삼성전자도 상반기까지는 엔비디아 AI 반도체용 5세대 HBM(HBM3E) 납품을 위한 품질 검증 테스트를 통과할 것이란 기대로 주가가 올랐지만, 연내 통과가 어려워지자 이러한 흐름에서 소외됐다.
삼성전자가 장기적으로 부진한 실적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면서 주가도 당분간 박스권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중국 업체의 범용 메모리 공급 확대로 판매 가격 하락과 실적 위축 우려가 제기된 가운데, 브로드컴 발 HBM 밸류체인 훈풍에 또 '열외' 당한 삼성전자는 이러한 리스크를 상쇄할 수단이 부족한 것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AI 반도체용 HBM3E 공급 기회를 선점한 SK하이닉스가 투자자들의 관심을 끄는 반면 삼성전자는 수혜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HBM 분야 기술력을 입증해 시장 신뢰를 회복하지 않는 한, 향후 브로드컴이나 다른 기업이 새 AI 반도체 주도주로 떠올라도 실적 부진을 벗어나 주가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미 증권가에선 삼성전자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있다.
고영민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목표 주가를 기존 9만3000원에서 17% 낮춘 7만7000원으로 조정하면서 "향후 유의미한 주가 반등은 경기에 대한 반등 시그널 확인과 함께 업황 회복 기대감이 형성되고, HBM3E, HBM4 등 개별적인 고부가 제품 경쟁력이 확인될 때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화투자증권도 삼성전자 목표 주가를 기존 9만원에서 7만3000원으로 19% 내렸다. 김광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전통 수요처 부진이 심화되는 구간으로 진입하고 있고, AI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새롭게 확인되는 부분도 없는 만큼 본격적인 주가 반등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하다"며 "내년 수요 변화가 없다면 D램과 낸드 가격 하락 압력이 더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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