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은 국민께 큰 충격과 실망을 안겨 주었고 외환과 금융시장의 동요를 가져왔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최상목 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팀이 재빨리 대응하면서 환율과 주가는 안정을 되찾아 가는 모습이다. 이보다 더 큰 과제는 나라의 리더십 부재에 따른 통상 대응 역량의 저하와 대외적 이미지(K-image) 손상의 복원이다.
먼저 리더십 부재는 통상대응력 부족과 타이밍의 실기로 나타나고 있다. 왜 하필이면 자국 이익 극대화를 위해 보호무역을 주 무기로 삼고 있는 미국의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을 앞둔 지금인가. 취임하기도 전에 흘러나오는 트럼프 진영의 정책 발표에 여러 나라가 쩔쩔매고 있다. 정책 메뉴의 가성비를 따지는 트럼프로서는 가장 약한 상대(weakest link)를 먼저 골라 시범 케이스로 항복을 받거나 임팩트가 큰 상대를 치는 전략을 과시하면서 정책 효과를 끌어 올리고자 한다. 트럼프는 취임 즉시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모든 제품 25% 관세부과와 중국에 대한 60% 관세에 더해 10% 추가 관세부과 방침을 밝히고 있다. 이들 나라들과 유럽 등의 대응과 수 싸움도 치열한 상황이다.
먼저 미국 정책의 임팩트가 큰 중국을 살펴보자. 미국의 총 무역적자의 30% 정도를 차지하고 미국을 누른 후 글로벌 리더가 되려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공격은 임팩트는 물론 향후 리더십 유지의 관건이기 때문에 트럼프 진영에서는 선제공격에 나서고 있다. 덩치가 크고 대응 수단도 갖고 있는 중국이 그냥 당할 리 없다. 중국에 투자한 미국 기업들이 볼모가 될 가능성이 있는 가운데 중국은 엔비디아의 반독점 조사 카드를 쓰고 있고 갈륨 등 핵심 광물 수출 규제로 맞불을 놓고 있다. 미·중 간의 갈등은 앞으로도 공격과 반격, 타협의 라운드가 끝없이 전개될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다. 안보 측면에서 한국을 지지하는 나라들이 한반도 주변에 거의 없는 상황에서 한국은 안보는 물론 경제적으로도 미국에 대한 의존이 절대적이다. 2024.1~11월 미국의 한국에 의한 적자 규모는 550억 달러의 수준으로 7위인 일본과 9위인 캐나다 사이에 있다. 9위인 캐나다도 타겟으로 삼는 마당에 8위인 한국이 타겟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같은 기간, 한국 통계 기준으로, 한국의 대미 흑자는 493억 달러로서 한국의 총무역흑자 453억 달러보다 크다. 게다가 한국이 2번째 무역흑자 대상국인 베트남에 대한 흑자 규모가 27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 미국의 대베트남 적자가 1천억 달러에 이른 상황에서 대베트남 흑자가 5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는 중국에 이어 한국이 베트남 경우 적자에 한몫하고 있다고 미국이 따져볼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의 직간접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방위비 분담과 주한미군 주둔 문제 등과 연계하여 한국을 약한 고리로 삼을 것으로 우려된다. 한국은 바이든 행정부까지 줄곧 대미 투자를 늘리면서 양국 간 경제협력 기반을 다져 왔다. 중국은 한국의 가장 큰 수출 대상국이기 때문에 한국은 미국의 대중 수출 규제에서 제외 받기 쉽지 않다. 한편 대중국 상대적 경쟁력이 밀리고 있고 대중 무역적자를 보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미국이 압박한다고 중국으로 되돌아가기도 어렵다. 진퇴양난의 한국은 약한 고리로서 트럼프의 쉬운 타겟이 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는 당선 이후 여러 나라 정상이 달려가고 있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트럼프를 만나 딜을 할 사령탑이 흔들린 실정이고 트럼프도 그런 한국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리더십 부재에 따른 문제는 정치적 일정에 따라 메워질 것이다. 다만 통상 대응 역량의 저하와 대외적 K-Image의 손상은 더 심각한 문제이다. K-팝, K-컬쳐, K-푸드, K-스포츠 등에 앞서 제일 중요한 K-Image는 K-컴퍼니, K-상품이었다. 오랜 세월 복합적으로 형성된 K-Image는 한국의 국제경쟁력을 높여 수출 증가와 외국인 투자 확대로 이어졌다. 이제 한순간에 손상을 입은 K-Image의 복원을 위해서 정치권에서는 우리 기업들이 마음 놓고 국제무역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선언하여야 한다. 후속 조치로 정치권은 규제를 새로 만들기보다 수많은 규제 법령을 단순화하는 혁신적인 작업에 착수하여야 한다. 기업이 쌓아 놓은 국제적 네트워크에 정치권이 힘을 보태면 통상 대응 능력의 틈새도 메워질 수 있다.
금 모으기로 온 국민이 정성을 모았던 IMF 외환위기 극복의 중요한 동력도 실물경제의 회복이었다. K-Image 하락은 수출경쟁력 저하로, 외국인 투자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환율 안정을 위해 쓸 수 있는 외화의 획득은 국제적 비즈니스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바로, 상품과 서비스의 수출이고 외국인의 증권시장을 통한 우리 기업에 대한 주식투자이다. 그 주체는 모두 기업이다. 실물경제의 활력을 높이고 국제경쟁력이 다시 올라오도록 정치권이 힘을 모아야 한다. 내수가 부진한 상황에서 최근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도는 거의 100%에 이른다고 한다. 이번 사태가 일어나기 이전부터 국제경쟁력의 하락은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이번 비상계엄 사태가 그 문제를 더욱 부각했을 따름이다. 반도체, 배터리, AI, 바이오 등 주요 분야의 산업경쟁력 제고, 대미·대중 등 국제통상 대응력의 제고, 전력망 등 에너지 문제의 해결은 모든 부처가 힘을 합쳐야 한다. 그러나 역시 주무 부처는 산업통상자원부라고 할 수 있다. 일이 많으니, 몸은 고달프달까. 정치적 격변기에 블랙리스트니, 탈원전이니 늘 수난을 겪은 부처가 산업통상자원부가 아닌가 한다. 이들이 또 다른 두려움에 움츠러들지 않고 기업을 지원해서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궁극적으로는 K-Image를 복원하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국정을 운영하는 주체가 달라진다고 해서 요술 방망이처럼 신통한 방법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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